
페미니스트 문화운동단체가 발행하는 주간웹진 '이프'(if)에 게제된 전직 여기자의 글이 화제다. 전직 고문기술자인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한 경험을 회고한 이 특별기고는 이프의 공동대표인 유숙열씨가 30년 만에 작성한 글이다.
스포츠서울에 따르면, 유 대표는 17일 웹진에 '내게 팬티를 사준 남자, 이근안에게'라는 제하의 특별기고 형식으로 쓴 글을 통해 "30 여년전 나를 물고문한 당신이 목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느낀 황당함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며 "내가 '아무리 간첩을 잡는 일이라도 왜 사람을 고문하는 일을 하냐? '직업을 바꾸라'고 했는데 당시 듣는 당신이 더 황당했을지 모르지만 정말로 직업을 바꾸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건 합동통신사 2년차 기자 시절로 1980년 7월17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며 "가벼운 티셔츠와 바지차림으로 있던 난 안대로 눈이 가리운채 승용차에 태워졌고 내가 끌려간 곳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이었다"고 이 목사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또한 그는 "그때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5.18 계엄확대 발표 이후 지명수재자 김태홍 한국기자협회 회장의 피신처를 소개해준 것 때문인 줄 알았기 때문"이라며 "솔직히 사람 하나 숨긴 것이 무슨 그리 큰 죄이며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느냐는 생각이었다"고 담당하게 밝혔다.
하지만 당시 '욕설'로 시작해 '기자 대접'을 하다 물이 담긴 욕조에 머리를 쑤셔박았다가 하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작전'에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가를 뒤늦게 깨달았다고 소회했다.
특히 자신을 칠성판 위로 올라가라고 한 다음 버클이 채워지며 육중한 몸집의 남자가 올라탔는데 그게 바로 이근안이었다. 그리고 바로 얼굴위로 수건이 덮어 씌워졌고 다음 순간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 대표는 당시 가장 괴로웠던 일은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쇼크'에 '탈진'으로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자 놀란 고문 수사관들은 수도육군병원 군의원을 데리고와 링거를 처방받게 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이 그렇게 싫었던 때가 없었다'고 밝혔다. 때도 아닌데 생리가 터진 것. 그때 이근안이 그에게 생리대와 팬티를 사다 주면서 "내가 생전 여자 속옷을 사봤어야지. 가게 가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아냐?"면서 마치 무용담을 털어놓듯이 동료앞에서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고 언급했다.
유 대표는 그렇게 5일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보냈고 용산경찰서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20일만에 검사의 기소유예 결정으로 석방됐다. 그녀는 '당신이 성직자가 됐다니요?'라는 질문과 함께 "사람의 목숨을 쥐고 흔들었던 고문기술자가 성직자가 됐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별기고를 한 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피력했다. 유 대표는 "내가 이제 와서,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후인 지금에 새삼 이런 편지를 쓰는 것은 과거에 내가 이랬다고 자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며 "당신이 스스로 목사직을 내놓으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고 밝혔다.
글 말미에 유 대표는 재차 목사직을 관둘 것을 종용하며 "차라리 청소부가 되어서 묵묵하게 자신의 죄를 씻고 또 씻어라. 아니면 당신이 일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경비원으로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사죄하라"고 강조했다
불행하게도 당시 고문기술자로 유명했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버젖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