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과 동일시 취급, 다문화가정서 ‘샌드위치’
자녀교육,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학교에서 왕따
안정적 사회정착 위해 북한이탈주민 지역적응센터 관리
정착 과정서 생기는 잘못된 사건·부작용 책임져야할 몫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탈북으로 현재 우리 사회에 정착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혹은 새터민이 현재 2만3000여명에 달한다. 그들은 모두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했고,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은 끝에 우리 품에 안긴 소중한 우리 민족들이다. 한국에만 가면 그간 겪었던 모든 고통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이 땅에 들어 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기대와는 차이가 너무 컸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이탈주민 대부분은 한국 사회에 도착한 직후부터 ‘삶의 어려움’을 경험해야 하는 또 다른 생활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착금지원, 주거지원, 취업지원, 교육지원 등 우리 정부에서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 남한 사람들과의 상대적인 빈곤감이 그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하나원’서 12주간 사회 적응교육
현재 정부에서는 탈북자 수의 증가에 대비해 정착지원제도의 정비 등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탈북자는 탈북동기, 신원, 위장입국 여부 등을 수사당국으로부터 조사받은 뒤 탈북자 지원조사기관인 하나원에 보내져 12주 동안 사회적응 교육을 받고 이후에 취직, 주민등록, 임대주택알선 및 정착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하나원은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사무소로 1999년 7월 개원되어 보호대상자에 대한 보호 및 정착지원을 하고 있다.
정부지원을 받고 하나원을 나온 이후에는 그들 스스로가 우리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탈북자들은 가장 큰 장벽에 부딪친다. 보호기관에 있을 때와 현실로 나왔을 때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이 과정에서 알게 된다. 국내에는 이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많은 민간단체가 있음에도 이들이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의 ‘배급제’에 익숙해 있는 이들의 생활습관 즉 경제체제에 관한 것들이다.
북한이탈주민 출신인 김현희(가명, 공무원)씨는 “북한에서 의식주는 걱정하지 않는다. 풍요롭진 않지만 국가가 이런 것들을 책임져 주기 때문에 이런 부문이 남한생활 적응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 그녀의 가장 큰 업무 중 하나가 의식주해결에 대한 문제를 상담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경쟁이 없는 삶에서 경쟁이 있는 삶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의식주를 직접 해결하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인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최근 북한에서 배급이 원활치 않아 많이 굶었는데 그때 어떻게 해결했느냐? 북한에서는 해결에 한계가 있지만 남한에서는 해결의 의지만 있으면 해결되지 않느냐?” 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설득시킨다고 했다.
이탈주민 상대 각종 사기 극성
그 다음 북한이탈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은 일부 몰지각한 남한 사람들의 이들을 상대로 한 사기다. 우리 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점을 이용, 공갈과 협박 그리고 회유를 통해 갖가지 사기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체류신분에는 하자가 없지만 북에서 왔다는 약점(?)을 이용한 사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서 지원해준 정착금까지 순간에 날린다는 것이다. 북에서 버림받고, 남에서 사기를 당해 우리 사회에 적응이 힘들자 일부는 해외로 망명을 신청하는 사례(2011년 3월22일 부산에 정착했던 8명이 신청)까지 일어났다.
북한이탈주민의 또 다른 어려운 점은 중국의 조선족과 동일시 한다는 점이다. 외모나 언어가 거의 조선족과 일치하다보니 중국인으로 오해돼 남한 사람으로부터는 많은 무시를 당하고, 조선족으로부터도 소위 ‘왕따’당하는 ‘샌드위치신세’가 되다보니 사회적응이 그 만큼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다문화가정들이 모여 있는 새터민들의 모임에서도 이런 현상이 이어지다보니 스스로 소외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녀 교육문제 시급
북한이탈주민들의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자녀들의 교육문제이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입국한 탈북자들의 특징을 보면 20∼30대의 젊은 층이었다는 점과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즉 입국당시 결혼과 자녀들을 모두 갖추다보니 대략 10년 정도가 지난 지금에 와서는 모두가 학부모가 되었다는 점이 교육문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이들은 학교입학이나 진학에 제도나 법률적인 문제는 없는데, 학교에서 친구들의 인식이 이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탈북자녀들은 상대적으로 친구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왕따’의 대열에 끼어들어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북한이탈주민자녀 중 아직도 소외의 대상이 된 청소년들이 있다. ‘비보호’청소년들이다. 이들은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정착금, 대학입학 등 각종 지원을 받는 탈북청소년과는 달리 법률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비보호 청소년들은 어머니와 동반 입국한 경우가 아니면 탈북자 정착지원기관인 하나원 입소가 거의 불가능하고, 입소하더라도 법적 지원근거가 미비해 생활비 등 여러 면에서 차등 지원을 받게 된다. 또 이들은 중국 등 제3국에서 오래 살아 우리말에 익숙하지 않은 점을 비롯해 다문화가정 자녀의 문제까지 안고 있다. 지난해 4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탈북자 자녀를 조사한 결과, 비보호 청소년 비율이 36.2%에 달했으며, 초등학생은 57.4%나 차지했다.
북한 이탈주민들의 또 다른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새터민들의 쉼터’에 올라온 ‘북에서 온 게 죄 입니다’라는 글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가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차별의식을 알 수 있다. 그 글에서 대학의 한 교수는 학생에게 “놀수 코리아 일어나봐”라는 표현을 했다. 그 표현이 비록 실수였다 할지라도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심한 차별감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기자도 북한이탈주민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언어사용에 있어 실수를 했고, 고향을 묻는 질문에 그가 ‘함경도’라는 말을 할 때 놀란 표정을 함으로써 그를 당황하게 한 적이 있었다. 사전에 나름대로 준비를 했지만 자연스럽게 나온 표정이나 언어 자체가 우리가 이탈주민에게 갖는 잠재된 의식이었던 같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괜찮다’라는 말을 계속하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했다. 그들의 생활에서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에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현실에서 느끼는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경제적인 부분이다. 지금의 생활을 북한에서 생활과 비교할 때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빈곤이나 어려운 점은 상대적인 것을 고려할 때 이탈주민 대부분은 아직 빈곤층에 해당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기침체에 따라 이들의 생활이 앞으로 더 나아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정부의 다각적인 지원책 효과?
정부에서는 탈북이탈주민들의 이 같은 삶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자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자체별로 볼 때 가장 많은 탈북자들이 모여 있는 곳은 경기도다. 현재 경기도에는 5,478명(전국 27%)에 달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의 안정적 사회정착을 위해 북한이탈주민 지역적응센터(하나센터) 관리, 북한이탈주민 돌봄상담센터 운영, 맞춤형 취업전문교육, 북한이탈주민 문예창작대회 등 다양한 사업들을 시행중이다. 이밖에 북한이탈주민 14명을 공무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각 자치단체별들도 경기도의 지원 대책을 벤치마킹해 이와 유사한 정책을 수립, 시행중에 있다. 게다가 전국 단위의 많은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및 동아리들이 설립돼 탈북자들의 우리사회 적응에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자녀교육을 위한 새로운 학교도 개설돼 청소년들의 우리 사회적응에 한걸음 쉽게 다가서게 됐다.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한겨레 중·고등학교는 북한이탈 청소년들의 남한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정부지원으로 설립되었으며, 학생들이 일반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필요한 교과학습과정과 기본소양을 교육한다. 북한이탈 청소년교육을 전담하는 특성화 중·고교로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자율학교로 지정받아 학생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06년 개교이후 12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현재 205명의 학생이 재학중이다. G뉴스플러스에 따르면,
이 학교 곽종문 교장은 “한겨레 중·고교는 일명 ‘올 코트 프레싱’으로 근무를 자원한 교사가 학생들과 365일 24시간 함께 먹고 자며 생활한다”며 “졸업 후에도 새터민들의 지속적인 사회 적응을 도울 수 있는 탈북자직업교육센터 설립을 국가나 도에서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전교생 모두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특수성을 고려해 학생 8명당 교사 1명이 같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수업료를 비롯해 체험 학습비, 기숙사비, 교복구입비 등 모든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북한에서와 마찬가지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이 학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가가 학력을 인정하는 탈북주민 대상정규학교다.
비록 지금의 모습은 어렵지만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아무리 못 살아도 북한의 당 간부보다 훨씬 좋은 곳에서 잘 산다’고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들 스스로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증거다. 탈북자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일부 생기는 잘못된 사건이나 부작용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국민 모두의 잘못이고 책임져야 할 몫이다.
탈북자는 통일에 대한 희망이자 훌륭한 자원이다. 진심으로 통일을 원한다면, 그리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꿈꾼다면 이젠 마음을 열고 주저 없이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통일은 어느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문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