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위한 대책 마련한다며 엉뚱한 정책 불쑥 발표
정부 땜질식 처방 ‘뒷북치기 행정’ 농민 분노 절정
축산농가 직면한 현실 외면…반농업·반농민적 처사 비난
정책입안 과정 농민과 관련단체들 참여 반드시 이뤄져야
정부와 축산 농가와의 지루한 논쟁과 갈등은 언제 끝날 것인가? 미국과의 FTA체결과 중국과의 준비단계, 외부환경을 볼 때 우리 축산 농가의 미래는 밝지 않다. 기회는 위기 속에서 찾아온다. 내수시장 활성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축산업을 위한 적극적인 대안마련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최근 대형마트와 전문식당을 중심으로 오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03년 AI, 조류인플루엔자 발병 당시 급격히 줄었던 오리고기 소비가 최근 7년 사이 7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오리가 건강식품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20여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메뉴개발로 새롭게 소비심리를 만들어 낸 것이 주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규모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오리를 재배하고 있는 중국과 FTA 체결로 완전 개방되면 영세한 국내 오리 사육농가의 미래는 더 이상 설자리를 잃게 된다. 우리 축산농가의 현재와 미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재개로
축산업계 분노 또 다시 폭발
얼마 전 광우병 발생으로 2003년 이후 전면금지 됐던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재개 발표에 사면초가에 몰린 축산업계의 분노가 또 다시 폭발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20일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고시했다. 이로써 캐나다에서 우리나라까지의 운송과 검역 절차 등을 감안할 때 다음 달 중순이후 캐나다산 쇠고기가 시중에 풀릴 것으로 보인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지난 20일 ‘소 값 폭락, 농가도산에도 굴하지 않는 정부의 수입망령 축산 농가는 두 번 죽는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 축산업말살정책인 BSE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재개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전국한우협회도 ‘한우소비 외치더니 캐나다 쇠고기 수입재개?’ 제하의 성명서를 통해 “한우값 폭락으로 정부는 특단의 소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어떻게 명절을 앞두고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재개를 발표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성토했다.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도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재개 시기에 대한 일절의 대화도 없이 이 시점에 수입재개를 하겠다는 것은 축산농가가 직면한 어려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반농업·반농민적 처사”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사실 정부는 줄곧 캐나다와 쇠고기 수입재개 협상을 추진하며 한·캐나다 세계무역기구(WTO) 쇠고기 분쟁해소패널(DSP)이 끝까지 가게 될 경우 쇠고기의 모든 부위를 개방해야 하는 위험이 따르며, 이후 제 3국과 유사한 문제가 발생해도 우리로서는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해 왔다.
정부, 물가안정 이유로
수급조절 수입산으로?
올 초 축산생산자단체가 정부의 돈육 무관세 수입에 대해 한육우·가금산업 등 타 축종산업을 말살하는 탁상공론 정책이라며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연초부터 삼겹살 5만 톤, 육가공원료육 2만 톤 등 돼지고기 7만 톤을 무관세로 수입할 방침인 가운데 축산생산자단체들은 지난 12월 29일 성명서를 통해 정부 대책의 즉각 중단과 함께 축산물 가격폭락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축산생산자들은 “정부의 이번 정책은 축산물 값의 폭락 도미노 현상을 불러와 한·미 FTA, 한·EU FTA의 일방적 타결로 어려움에 처한 축산업을 아예 말살하겠다는 음모로 볼 수밖에 없다”며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축산생산자단체들은 정부가 끝내 무관세 수입을 강행시킬 경우 전국 320만 농민들과 연대해 강력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계획이다.
닭고기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금 당장은 베트남을 비롯해 일부 지역에 수출이 진행돼 조금은 숨통이 트였지만, 안정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외에도 젖소, 산란계, 육계(肉鷄), 오리 등도 일시적인 안정을 보이다가 수급불균형에 따른 또는 정부정책의 실수에 따라 언제든지 가격폭락과 폭등을 경험할 소지를 안고 있다.
위의 사안들은 최근 축산 농가와 정부와의 갈등을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이다.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와 같다. 하지만 주무기관인 농림식품수산부와 농협 등 관련기관에서는 축산 농가들의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갖가지 정책과 제도들을 쏟아내고 있고, 그에 따른 예산확보를 위해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그 노력들이 항상 ‘사후약방문’격이 된다는 점이 문제다.
일례로 농림부는 최근 ‘쇠고기유통구조 합리화방안’을 마련하고, 협동조합형 패커 육성, 도축장 구조조정 등을 통해 판매액의 37.7%에 달하는 유통비용을 줄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생산자에게는 가격보전을, 소비자에게는 적정한 가격으로 소비촉진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소고기의 복잡한 유통과정을 몰랐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WTO문제가 대두되던 20년 전에도 이 같은 문제점이 제기된 적이 있었고, FTA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던 10년 전에도 이 같은 논의가 있었다.
또 지난달 4일 정부는 소값 안정대책을 발표하고, 중장기적으로 한우 암소 도태와 송아지생산을 억제해 전체 사육마릿수를 감축해 나가는 동시에 쇠고기 소비 및 수요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책도 마찬가지다. 수년전에 제기됐던 것을 이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문제가 된 축산 농가들의 어려움과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장기적인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볼 때 제도와 법령이 없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거의 없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해결책은 ‘발빠르게’ 나온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 실제로 실효성을 지닌 것은 거의 없다. ‘땜질식 처방’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그리고 남의 탓을 한다. 법안을 마련했지만 국회에서 통과가 되지 않아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판에 박힌 표현. 우리 정부의 농업 및 축산에 관련된 정책을 수행하는 현주소를 제대로 나타내고 있는 표현이다.
민간차원 소비확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일까? 정책을 입안하고 수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를 키우는 것은 축산 농가이고, 유통과 소비를 담당하는 사람은 유통업자와 일반 소비자들이다. 이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무원들이 제대로 된 정책을 마련하리라고 믿지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으로 볼 때 현실성과 효율성이 매우 떨어진 것으로 보여 진다.
특히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탁상행정의 표상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고, 축산 농가들이 막대한 부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보조사업자금을 융자로 전환하면 빚더미에 앉아 있는 축산농가 중 어느 누가 융자를 받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또한 당장 내년부터 해양투기 금지에 대한 축사분뇨처리시설 확충을 위한 지원사업도 폐지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현장 실정을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제는 축산 농가가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정책입안 과정에 농민과 관련단체들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 땜질식 정책 수행과정이 반복되다보니 정부에서는 정책수행에 따른 예산과 인력이 예상외로 많이 들어가지만, 그것을 받는 농민과 단체들 입장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정부는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 주어야만 하고, 농민들은 피해보전을 정부에만 의존할 것인가? 조금은 늦더라도 지금부터는 중·장기대책을 차근차근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의 축산업은 그 규모면에서 13조원이 넘는 거대 시장이자 중요한 식량산업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물론 이 규모를 유지하고,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지속적인 소비를 창출시키기 위해서는 육류에 대한 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FTA에 따른 여러 문제점과 사료문제 등 정부의 정책적 필요가 있는 측면은 정부에서 장기적인 대안을 제시해야겠지만, 민간에서는 또 다른 수요를 창출시켜야 할 것으로 본다.
얼마 전 농협에서는 한우 농가를 보호하고, 한우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수입산 쇠고기를 사용하고 있는 군납을 한우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일 뿐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소비차원에서 볼 때 민간차원의 소비확대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먼저, 쇠고기의 지속적인 소비를 창출시키기 위해서는 유통구조를 개혁,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 농림부는 이를 위해 농협의 안심축산을 생산·도축·가공·판매를 일관 추진하는 협동조합형 패커로 육성, 2015년까지 시장점유율을 50%까지 높임으로써 유통단계를 생산자→안심축산사업→유통업체→소비자로 축소시켜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도축장 역시 도축·가공·유통이 연계된 통합 경영체로 육성해 2015년까지 현재 83개 도축장을 36개로 줄이고 부분육 유통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다행스런 일이다. 소비자들이 육류를 꾸준히 소비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안정돼야 한다.
둘째, 소비 장소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쇠고기를 비롯 대부분의 축산물을 소비하는 장소로 일반 식당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식당에서 소비하는 축산물의 양은 한계가 있다. 전체적으로 소비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유럽과 같이 일반 가정에서 소비하는 양이 많아져야 한다. 미국의 경우 가정에서 소비하는 축산물의 양은 일반적으로 레스토랑에서 소비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41.4kg이다. 계란은 236개, 우유는 62.8kg을 먹었다. 일본이나 중국보다 적다. 미국은 우리의 세배를 먹는다. OECD 국가 중 터키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육류 소비량은 최하위 수준이다.
게다가 대부분 미국 가정에서는 생고기와 고기 그 자체를 구워 먹는다. 우리도 88서울올림픽 이후 고기를 구워먹는 문화가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고기를 구워먹는 문화가 일반화되진 않았다. 따라서 많은 고기의 수요를 창출시키기 위해서는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고기에 대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최근 일고 있는 ‘웰빙’ 문화와 함께 채식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학박사)는 “영양섭취에 대해 제대로 알면 균형 잡힌 식단을 얘기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육류 섭취는 아직 부족하다. 대부분의 의사들도 여기에 공감할 것이다. 일부 의사들이 국민들의 환경생태주의에 편승해 채식을 주장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극단적인 채식을 주장하거나 고기를 먹으면 큰 병에 걸릴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육류의 소비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고기 소비방법(요리방법)다변화 필요
셋째, 고기 자체를 소비하는 방법의 변화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만 하다. 일반적으로 ‘구운 고기’는 고기가 타는 과정에 발암물질을 많이 발생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굽는 과정에 ‘타지 않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하다. 최근 한 중소업체에서 발명, 특허를 낸 제품의 경우 불에 직접 굽지 않기 때문에 발암물질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기 자체의 맛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불에 직접 굽지 않기 때문에 고기가 타질 않는다. 고기 소비를 촉진하고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고기요리방법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가 민간단체에서 이뤄져야 한다.
넷째, 축산 농가들도 고기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농협에서 판매하고 있는 ‘한우’와 ‘한돈’ 그리고 다양한 육류제품들의 질(quality)을 볼 때 미국제품과 비교할 때 아직은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까지 애국심에 호소할 순 없다.
마지막으로 유통구조개선과 수급안정 그리고 마케팅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구성, 외국 제품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 농산물과 축산물이 우리 몸에 맞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다. 상식은 쉬운 것일 수도 있지만 매우 어려울 수도 있다. 실의에 빠진 축산 농가를 위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현재 쇠고기 유통경로를 살펴보면 생산자→수집상→공판장(도축장)→도매상→유통업체→소비자 단계를 거치면서 높은 유통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 농식품부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쇠고기의 유통단계별 비용률이 출하 0.3%, 도매 7%, 소매 30.4% 등 37.7%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농식품부는 농협의 안심축산을 생산·도축·가공·판매를 일관 추진하는 협동조합형 패커로 육성해 2015년까지 시장점유율을 50%까지 높임으로써 유통단계를 생산자→안심축산사업→유통업체→소비자로 축소시켜 나갈 방침이다.
또 도축장 역시 도축·가공·유통이 연계된 통합 경영체로 육성해 2015년까지 현재 83개 도축장을 36개로 줄이고 부분육 유통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축산물 거래가격 결정체계도 올해부터 경락가격 집계·조사기관을 축산물품질평가원으로 일원화하고 생체중량, 지급율을 적용하는 가격 결정체계를 지육중량, 품질(등급)을 적용하는 지육·등급별 정산체계로 개선키로 했다.
문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