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국내 대학 등록금 부당 사용 ‘적발’
정부, 교육 지원…OECD 국가 중 최하위
사립대 적립금 17.6%만 학생에게 쓰여
등록금 책정 주체,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바꿔야
A씨는 4년 동안 학자금대출을 이용,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졸업과 동시에 A씨가 떠안는 빚은 얼마일까? ‘대학생사람연대’에 따르면, 물가를 감안할 때 ‘3392만1천원’이다. 이처럼 등록금 때문에 많은 대학생들이 빚쟁이 삶을 살고 있다. 생색만 내는 ‘대학등록금 인하’. 무엇이 문제인지 전반적인 현황을 담아봤다.
지난해 6월 여주대학의 등록금 사용내역이 공개되면서 일부 사립대학들의 등록금 부정사용에 대한 비난이 등록금인하와 맞물려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법인카드가 음식점·백화점·유흥업소에서 사용되고, 등록금 일부가 재단 이사장의 개인계좌로 송금된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부족한 재정…
횡령과 적립금은 어디서?
감사원은 사립대학 29곳과 국·공립대학 8곳의 등록금을 상승시키는 주요인으로 ‘편의적 예산편성’, ‘학교수입 누수’, ‘교비의 방만한 지출’, ‘법인의 의무이행 해태’를 꼽았다.
실제로 2010년 2곳의 국립대에서는 ‘교직원 처우개선’이라는 명목 하에 급여보조성 인건비를 과다하게 인상한 사실이 감사원에 의해 적발됐다. 2009년 168억 원이었던 급여보조성 인건비가 1년 만에 248억으로 35.9% 증가한 것이다. 이는 등록금을 부당하게 사용함으로써 학생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대학의 ‘적립금’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왜 적립금을 쌓아놓기만 할까. 한국대학신문이 공개한 ‘사립대학 누적 적립금 현황(2011년 2월기준)’에 따르면, 대학들의 누적 적립금은 이화여대가 6,57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홍익대 5,560억원, 연세대 4,58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한 41개의 사립대 중 1년 동안 적립금이 증가한 대학은 29개였으며, 그 중에서도 17개의 대학이 1년 새 100억 원 이상의 적립금을 추가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대학의 모순 때문에 ‘반값 등록금’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대학이 학생을 위해 설립됐다는 본질을 망각하고, 사적 이익만을 챙기는 공간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9년 전남대에서는 기존 두 개 수당을 52.7% 인상하고, 2010년 ‘경쟁력 제고 성과급’ 등을 신설해 부당한 방법으로 23억1,000만원을 챙긴 것이 감사원에 의해 적발됐다.
국내대학 등록금 현황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수업료·입학금으로, 국·공립대의 등록금은 수업료·입학금·기성회비로 각각 구성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2011년기준), 대학의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은 사립대가 767만원, 국공립대가 444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립대학의 등록금을 계열별로 보면, 인문계열이 653만원, 사회계열이 669만원, 교육계열이 698만원, 자연계열이 799만원, 공학계열이 849만원, 의약계열이 843만원, 예체능계열이 850만원이며, 등록금 인상률은 평균 2.16%였다.
이어 국·공립대학의 등록금은 인문계열이 375만원, 사회계열이 387만원, 교육계열이 408만원, 자연계열이 464만원, 공학계열이 482만원, 의약계열이 502만원, 예체능계열이 490만원이었고, 등록금 인상률은 평균 0.34%였다. 국·공립대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등록금의 84.6%(감사원. 2010년기준)를 차지하는 기성회비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학생 1인당 고등공교육비가 한국은 908만원, OECD국가 평균은 1천372만원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등공교육비에 대한 한국정부의 지원이 OECD국가 평균의 66.2%에 불과한 것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은 OECD국가 중에서도 학생 1인당 고등공교육비가 최하위다. 또한 GDP대비 교육비구성에서 민감부담(1.9)이 정부부담(0.6)보다 3배 이상인 구조를 보여, 민간부담(0.5)이 정부부담(1.0)의 1/2배인 OECD국가 평균과 차이가 크다. 때문에 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과거 대비 많이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OECD국가들 보다 한국정부의 투자 수준이 매우 열악함을 알 수 있다.
등록금, 현재의 문제는
감사원은 “표본 29개 사립대학의 적립금 적립액 및 이월자금이 2006년 7,604억원에서 2010년 1조1,907억원으로 연평균 11.9% 증가했다”고 밝혔다. 국·공립대도 별반 다를 게 없다. 표본 6개 국·공립대학의 기성회비 징수액은 2006년 이후 연평균 6.2%로 증가해 2010년 5,338억원에 달했고, 기성회회계 세입규모도 연평균 6.0%로 증가해 2010년 7,256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대학생사람연대’의 장일영(경희대4)씨는 “사립대의 경우 많게는 몇 천억에 달하는 재단 적립금이 실질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면서 “어마한 적립금을 쌓아두고도 돈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대학 측 입장은 다르다. 전국대학교기획처장협의회 김선희 회장은 “감사원에서 ‘대학이 등록금을 12.5%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한 것은 등록금을 크게 낮출 경우 발생할 대학의 어려운 상황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며 “등록금을 급격히 인하하면 그동안 진행해 왔던 학생 교육과 실습 등의 투자가 급감되고, 이는 또 대학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우수인재 양성이라는 대학의 기본 소임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당한 규모로 쌓인 대학의 적립금과 기성회비가 학생들만을 위해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감사원에 따르면, 사립대 적립금의 17.6% 만이 연구기금, 장학기금으로 사용돼 정작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분야에 대한 대학의 지원은 소홀한 것으로 드러났다.
적립금과 기성회비의 증가가 교육여건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일반대 기준 전임교원 1인당 재학생수가 2000년 32.2명에서 2010년 36.2명으로, 도서관 좌석당 재학생수가 2002년 3.9명에서 2010년 4.1명으로 각각 증가했다. 이는 오히려 교육의 질이 퇴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의 기타 경상지출은 46.5%로, OECD국가 평균인 31.5%를 넘어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는 시설 및 환경개선을 위한 지출이 높았다는 것으로 현재 대학이 교육의 질(Software)보다는 건물과 같은 외형(Hardware)의 개선을 우선시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더욱이 정부의 낮은 지원도 문제로 지적됐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등교육단계의 공교육비에 한국 정부부담은 민간부담 대비 1/3배 수준으로, 정부부담이 민간부담의 2배인 OECD국가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따라서 등록금 부담은 대학만의 잘못이 아니란 견해도 나온다.
거센 ‘등록금 인하’ 요구
끌려오는 정부와 대학
등록금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이 증폭되자 정부는 각종 정책을 발표하면서 ‘등록금 인하’에 나섰다. 당초 교육과학기술부는 “정부 예산 1조5천억 원과 대학 자구노력 7천500억 원을 투입, 대학 등록금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연말 국회 심의과정에서 정부가 국가 장학금에 2천500억 원의 예산을 추가하기로 결정하면서, 총 2조5천억에 달하는 예산이 ‘대학 등록금’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는데 쓰이게 됐다.
교과부에서는 또 지난해 9월 한나라당과의 당정협의를 통해 등록금의 5%를 인하하는 ‘대학 등록금 부담 완화 방안’을 제시하면서 “등록금을 내리지 않거나 장학금을 확충하지 않는 대학은 국가 장학금을 축소 지급 하겠다”고 밝혔고, ‘대교협’에서도 등록금 5% 인하에 동의했다. 또한 교과부는 지난 30일 “오는 2월2일 열리는 국·공립대총장협의회 정기총회에 이주호 장관이 참석해 올해 등록금 인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기성회비 인하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대학을 압박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자 국내 334개 대학 중 등록금 수준을 결정한 186개의 대학에서 109개의 대학이 등록금 인하에 동참했다. 한국장학재단의 발표에 따르면, 부산대, 경남대, 명지대, 인하대, 서울여대 등 75개 대학이 등록금을 5% 이상 내리기로 했다. 또한 대구가톨릭대, 동양미래대학 등 20개 대학은 3~5% 수준으로, 고려대, 한국교원대, 숙명여대, 광운대 등 14개 대학은 3% 미만 수준으로 등록금을 인하하기로 결정해 이들 대학들의 평균 인하율은 작년 대비 4.8%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일부 대학들은 장학금 확충 계획안도 내놓고 있다. 배재대는 지난 18일 장학금을 작년 대비 26억 원을 증액, 107억 규모로 늘리기로 했다. 배재대 임종보 기획처장은 “이는 실질 등록금 17% 인하에 해당된다”면서 “여유있는 학생과 어려운 학생은 일률적인 등록금 인하에 대해 각각 달리 체감한다. 보다 다양한 학생들이 등록금 인하를 체감할 수 있도록 이를 장학금으로 충족시키고자 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 외에도 고려대, 경주대, 한남대, 혜천대 등이 장학금 확충을 확정한 대학에 합류한 것으로 드러났다.
‘등록금 인하’에 대한 정부와 대학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노력이 단지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이는 ‘등록금 인하’ 나아가 ‘반값 등록금’까지 실현하기 위해서는 등록금을 책정하는 주체가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등록금 책정의 주체가 달라지면 대학운영 방향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정부와 대학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에서는 교육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늘려야하고, 대학에서는 목적이 불분명한 적립금 축적을 경계하면서 불필요한 예산낭비를 줄여야할 것이다.
이번 ‘등록금 인하’는 대학생들의 운동이 단초가 돼 정부와 대학을 끌어들인 경우다. 이들의 합작물인 이번 ‘등록금 인하’가 향후에도 계속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