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브랜드 치장, 범죄 표적?
고가 브랜드 치장, 범죄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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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십만원 달하는 브랜드 입어야 동질감 형성”
고가 브랜드만 노리는 10대 범죄 갈수록 기승

얼마 전 중·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해 떼로 몰려다니며 학교 주변에서 수십만 원대 노스페이스 점퍼를 포함, 1,000여만 원대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청소년 20명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학교와 학원, 쇼핑몰 주변 등에서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박모(17)군 등 4명을 구속하고, 권모(17)군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이들과 함께 금품 등을 빼앗은 김모(17)군 등 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 1월 서울 구의동 M여고 인근 골목에서 홍모(17)군을 협박해 47만원 상당 노스페이스 점퍼와 현금 20만원, 손목시계 등 160여만 원 상당 금품을 빼앗는 등 작년 11월부터 최근까지 또래 학생 20여명을 위협해 금품 1,000여만 원을 빼앗고 오토바이 등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등골 브레이커’ 신조어 등장

이들이 노린 표적은 중고생 사이에서 소위 ‘제2의 교복’이라고 불리는 노스페이스 점퍼를 입고, ‘뉴밸런스’, ‘나이키’, ‘컨버스’와 같은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고, ‘빈폴’, ‘이엑스알’, ‘키플링’과 같은 가방을 맨 학생들이다. 중고생사이에서 이 같은 브랜드의 제품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 우리 중고생들 대부분을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외형만을 놓고 볼 때 실제로 학생들이 걸치고 있는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교복을 제외하고도 50만원에서 일부는 100만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나 모든 학생들이 다 부자로 보인다.
학생들이 많이 입는 모델인 ‘눕시 재킷’은 25만원, ‘써밋 카켓’은 47만원이다. 일부 학생은 가격이 69만원에 이르는 ‘히말라야 파카’를 입기도 한다.
신발은 ‘뉴밸런스’와 ‘나이키’, ‘컨버스’ 등이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품인데, 뉴밸런스와 나이키는 10만 원대 초중반, 컨버스는 5만~6만 원대 제품이 많다.
가방은 ‘빈폴’이나 ‘이엑스알’(EXR), ‘키플링’ 등 브랜드가 다양하다. 가격은 대개 10만~30만원선이다.
이들 브랜드 제품으로 등교 복장을 꾸밀 때 최소 70만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부는 100만원 대도 훌쩍 뛰어넘는다. 여기에 스마트폰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요즘 학생들은 움직이는 ‘돈덩이’였다.
고가의 교복과 점퍼를 두고 ‘등골 브레이커’(비싼 가격 때문에 부모의 등골이 휜다는 뜻)라는 말이 나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브랜드의 제품을 입거나 신어야만 친구로서 대화나 모임에 낄 수 있다고 한다. “친구끼리 모이면 연예인과 이런 브랜드 이야기가 전부예요. 그러다보면 서로 자기가 입고 있는 옷자랑을 하게 되죠”라고 말하는 박수연(15, 중2)양도 점퍼와 신발 그리고 가방이 유명 브랜드였다.

“브랜드 입어야 창피하지 않아”

김승희(15, 중2)양은 “설날 세뱃돈과 아빠차 세차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 그리고 모자란 것은 엄마가 도와줘서 점퍼를 샀어요”라고 말하면서 “이제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창피하지 않아 좋아요”라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김 양의 엄마인 황인숙(43세)씨는 “저는 시장에서 구입한 싼 옷을 입지만, 우리 애기만은 좋은 옷 입혀야죠”라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청소년들의 유행추구 행동을 굳이 비난만 할 일은 아니라고 한다. ‘청소년들 의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모임’의 김양은 박사는 “청소년시기에 친구들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동질감 형성인데, 외형적인 면에서 가장 먼저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나쁘게 볼 수만은 없죠”라며, “또 지나치지만 않다면 그들만의 문화형성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기의 욕심만을 내세우고,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적절한 대화나 교육을 통해서 바로 잡을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고가 브랜드의 제품만을 선호하는 학생들의 행동에 대해 부모의 책임도 지적하고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자기 자식만이 최고다’라는 의식을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한 청소년들의 사치풍조를 쉽게 없애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은 범죄의 표적이 될 뿐 아니라 ‘부모의존률’이 높아져 성인이 되었을 때 자기 스스로의 경제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또래문화’형성이라는 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경제와 범죄라는 면에서 볼 때는 학생들의 고가브랜드 추구현상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
 

박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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