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정권 행사 숫자만 230만명…향후 선거판도 변화?
“총선 재외국민선거 등록률 4~5%에 그칠 것” 예상
낮은 등록률·비례대표만 선출 등 각가지 문제점 대두
유권자 명단파악 미비 및 불법 선거운동 만연할 가능성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민족이 70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대한민국의 참정권을 가질 수 있는 숫자는 230만 명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지방의 한 도(道)가 해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의 정치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을까? 재외국민 투표권은 ‘보기에는 먹음직하지만 따먹기가 참으로 어려운 감’으로 표현되고 있다. 애정으로 그들을 끌어 앉지만 자칫 ‘돈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현실이다.
4.11 총선에 도입되는 재외국민선거 등록률이 4~5%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외교통상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해 11월 13일부터 시작된 재외국민선거가 등록마감(2월 11일)을 6일 앞둔 5일까지 등록한 사람은 8만 5519명으로 나타났다. 전체 선거인 223만 6819명의 3.83%에 불과한 숫자다.
느긋한 정치권
대륙별로 아시아주(洲)가 45개 공관에 4만7176명(4.34%), 미주(洲)가 2만 4305명(2.35%), 유럽은 9626명, 중동은 2678명, 아프리카는 1634명이 등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총유권자 중 등록을 마칠 사람은 대략 5%내외인 10만여 명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동안 중앙선관위에서는 9개 정부기관이 참여하는 ‘재외선거관계기관협의회’를 구성·운영하면서 158개 재외공관에 재외선관위를 설치했고, 선관위직원은 55개 재외공관에 한명씩 모두 55명이 파견돼 있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국회의원과 담당자들이 지난 1년 동안 해외의 주요지역을 돌며 자기 정당에 유리한 산하단체를 조직·운영하다가 공직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진 1월 이후 최근에 와서 특별한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유권자 등록에 협조를 당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위처럼 유권자의 등록이 낮은 문제에 대해 정치권과 정부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해외투표는 영주권자의 경우 정당(비례대표)만을 선택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정치권과 정부에서는 마치 담합한 것처럼 매우 느긋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재외선거 홍보를 위해 지난 해 80억 원을 썼고, 올해 국회의원 선거에 213억 원의 예산이 책정된 상태이다. 물론 국민의 세금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에서 적극적인 곳은 없다.
‘탁상행정’의 전형
헌법재판소에서는 2007년 6월 재외동포에게도 우리 헌법이 정한 기본권리인 참정권을 주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기존 공직선거법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2009년 2월 공직선거법의 개정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모든 국민은 2012년부터 거주의 차별없이 해외에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재외국민은 미국과 캐나다에 240만 명, 일본·중국 등 아시아지역에 380만 명, 유럽 37만 명, 아프리카 17만 명, 남미 10만 명, 호주·뉴질랜드 20만 명 등 약 7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중 유권자는 미국 88만 명, 일본 47만 명, 중국 33만 명, 호주·뉴질랜드 10만 명, 캐나다 10만 명 등 223만 3천여 명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유권자 등록률이 예상보다 훨씬 낮은 이유와 문제점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재외국민들은 해당 국가에 따라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선거문화에 익숙해 있다.
미국의 경우 ‘선관위’에서 우리처럼 투표를 독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후보자들 측에서 선거참여를 유도, 득표활동을 하기 때문에 정부가 선거득표율을 올리기 위한 활동에 따른 추가비용이 우리처럼 많이 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권자와 후보자간 직접 관련이 없는 경우 선거참여율은 낮아진다. 유권자의 개별적 권리에 대해 국가가 강요하지 않는 문화가 우리와는 매우 다르다. 4.11총선의 경우 정당만을 선택(비례대표)하는 투표에 유권자의 등록과 투표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면 첫 단추부터 시작이 잘못된 것이다.
둘째, 실제 유권자들의 정확한 명단파악이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점이다. 미국의 경우 영주권자와 유학생, 지·상사직원, 일반 체류자들이 투표를 할 수 있는 유권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정확한 명단파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시카고의 경우 한인의 수를 파악하는데, 단체마다 천차만별이다. 총영사관, 언론사, 교회 등 각기 다른 숫자를 들고 있어, 어느 것이 정확한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추정할 뿐이다. 게다가 지난번 재외선거에 대한 모임이 이루어졌을 때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내 투표와는 전혀 무관한 미국 시민권자라는 사실은 우리 선관위가 현지 사정을 얼마나 몰랐는가에 대한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나라당의 재외국민협력위원장에 임명된 남문기씨도 한국 국적이 아닌 미국 시민권자여서 임명이 취소된 해프닝도 있었다.
‘선거 정보 접하기’ 어렵다
셋째, 유권자의 자격을 갖춘 자들에게 알릴 적절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미네소타 주에서 식품점과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김원일(남, 55세)씨는 전화통화에서 “인터넷을 통해 재외국민선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면서 “시카고총영사관을 통해 들은 정보는 거의 없다”고 했다.
김씨가 거주하고 있는 미네아폴리스는 유학생을 포함 한인이 대략 5천여 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인을 대상으로 한 방송과 신문은 없다. 김씨는 “재외국민선거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시카고까지 8시간(왕복 16시간) 이상 운전을 하고 가야되는데, 투표를 위해 이 만큼의 시간을 투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고 말하면서 “학생들의 경우 이 기간이 기말고사와 맞물려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선관위에서는 이의 홍보를 위해 80억 원을 썼는데, 실제로 그 효과는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넷째, 영주권자의 경우 반드시 공관을 방문, 우리 국민임을 입증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시카고에서 1시간 남짓한 거리의 버팔로글로브에 사는 이희영(남, 50)씨는 전화통화에서 “시카고총영사관은 다운타운에 있어 방문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주차요금도 만만치 않아 등록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고 심정을 나타냈다.
또 “공관을 방문해서 등록하려면 일과시간에 가야하는데, 뚜렷하게 한국 정치에 애정이 없는 한 이러한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해 한국 정치에 대해 현지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렸다.
다섯째, 한인사회의 분열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과거 기자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을 때도 한국의 선거철만 되면, 한인사회도 여야로 나뉘어져 서로 비방하고 갈등을 조장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07년 대선이 치러질 때 교민사회에서 한국정치에 소위 ‘줄대기’현상이 일어나 한인사회의 분열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대부분은 미국 시민권자였다.
과다한 선거비용
여섯째, 해외에서 불법선거운동을 할 경우 제재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교민사회에서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미국 시민권자인데, 이들에 대한 조사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물론 영주권자와 일반 체류자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있지만, 실제로 영주권자와 일반 체류자들이 거주기간이나 신분에서 오는 제약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곱째, 유권자로 볼 수 있는 해외거주 한인의 수는 223만 3천여 명에 달한다. 이들의 참정권은 선거권뿐만 아니라 피선거권을 동시에 말하고 있는데 비례대표 요구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특히 많은 유권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중국에서는 국가별 비례대표요구도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국민의 권리행사에 앞서 국민의 의무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국방, 납세의 의무를 지지 않는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이 제도가 갖는 모순이자 해결해야 할 점이다.
마지막으로 과다한 선거비용이다. 선관위는 올해 19대 총선 재외선거비용으로 213억 원이 쓰일 예정이다. 연말에 있는 대선을 포함하면 519억 원이 책정돼 있다. 이번 총선에서 재외선거 투표율이 5%로 재외국민 11만여 명이 투표에 참여한다면 표당 투입 비용은 26만여 원이 된다. 이 추세를 감안할 때 연말 대통령선거를 포함하면 실제로 이 비용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반면 국내에서 투표율이 2010년 지방선거 때와 같은 54%라면 표당 투입 비용은 1만2000원 수준이다. 재외선거 비용이 국내보다 21배나 높은 셈이다. 막대한 세금을 쓰면서도 재외선거의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할 것이란 전망은 일찌감치 나왔다.
다양한 방안 제시되고 있지만
현재 유권자등록률이 낮은 점과 이들을 투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 올 1월에 개정된 『공직자 선거법』에서 빠진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인터넷등록, 우편등록, 순회등록과 추가 투표소설치, 영구명부제, 영주권자들의 등록과 투표 일원화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연말 대선전까지 어느 정도 실현될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보여준 것을 감안할 때,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 당리당략 때문이다. 결국 재외국민이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 등록을 해야 한다. 재외국민 편의성보다는 한국정부 공무원의 편의를 더 중시한 결과가 낮은 등록률로 나타났다.
이번 공직자선거법 개정에서 국내에서는 트위터나 블로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한 인터넷 선거운동을 상시 허용하기로 했고, 당내 경선에서도 양당 모두 모바일 투표를 도입했다.
연말에 있는 대통령선거는 상황이 조금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정후보를 직접 찍을 수 있는 점과 후보들이 많이 알려진 인물이란 점을 감안할 때 등록과 투표가 높아질 것으로 보는데, 선거이전에 법률개정이 이루어질지 19대 국회의원들에게 기대해 본다.
문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