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반도체 공장 발암성 물질 작업공정 중 부산물 발생
삼성전자, 과거엔 문제없었지만 결과에 따라 철저히 관리
반올림, 유력한 근거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 인정해라”
서울변호사회 “산업재해 인정해 노동자 고통 치유 필요”
지난 6일 정부가 공식적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발암물질 검출사실을 확인했다. 그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이나 암에 걸린 직원들은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삼성전자는 근무환경과 발병원인의 연관성이 없다고 일축하며 부정해 왔다. 이에 따라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는 양측에 큰 의미로 다가와 변화가 일 것으로 관측되며, 이에 대한 논란이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정부가 반도체 공장에서 작업공정중 발암성 물질이 부산물로 발생했다고 보고하면서 삼성 반도체 공장 근로 환경에 대해 논란이 가중됐다. 이는 정부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반도체 공장의 문제를 인정한 경우로 삼성이 비난을 피하기에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반도체 공장 발암물질 검출 확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지난 6일 ‘반도체 제조 사업장 정밀 작업환경평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공개된 연구보고서에서는 공장에서 발암성 물질이 작업공정 중 부산물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이는 반도체 산업 근로자의 백혈병 위험도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집단 역학조사의 후속조치로 2009년부터 3년간 이뤄졌다.
이번 연구는 국내 최조 백혈병이 발생한 사업장과 이와 유사한 공정을 보유한 사업장인 삼성 기흥공장, 온양공양, 하이닉스 인천공장, 청주공장, 페어차일드코리아 가흥공장의 웨이퍼 가공라인 및 반도체 조립라인을 대상으로 발암 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진행됐다.
조사 결과 백혈병 유발인자인 벤젠은 웨이퍼 가공라인에서 최대 0.00038ppm, 반도체 조립라인 일부 공정에서 최대 0.00990ppm이 발생했다. 하지만 노출기준(1ppm)보다는 낮은 수치로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발암성 물질이란 점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리방사선은 웨이퍼 가공라인과 반도체 조립라인에서 0.015밀리시버트/년(㏜/yr)가 측정됐다. 개인 노출 선량한도(방사선작업 종사자 50밀리시버트/년)보다 낮았다. 포름알데히드 역시 일부 웨이퍼 가공라인에서 노출 기준인 0.5ppm보다 낮은 0.002ppm~0.015ppm이 검출됐다. 더불어 폐암 유발인자로 알려진 비소는 웨이퍼 가공라인의 이온주입공정에서 부산물로 발견, 노출기준을 초과한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반도체 공장과 직업병 문제의 인과관계를 주장해온 ‘반올림’은 “현재시점에서 측정했을 때 미량이라도 공정진행과정에서 벤젠 등이 부산물로 발생한다는 것은 과거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는 더욱 많은 양의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됐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산업재해로 인정해야할 유력한 근거가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 “미미하지만…철저히 관리 하겠다” 그뿐
반면 정부의 발표에 대해 삼성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종업원의 건강과 관련된 사안이므로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관리 하겠다”는 말 뿐 구체적인 대안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따라서 공장에서 발암성 물질이 작업공정 중 부산물로 발생한 것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금까지 발암물질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거나 사용했어도 노출량이 미미하다고 일축해온 삼성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경 미국의 안전보건 컨설팅 회사 인바이론에 의뢰해 1년 동안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환경을 조사한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인바이론은 기흥공장의 반도체 5라인과 화성의 12라인, 온양의 1라인 등 세 곳을 정밀 조사해 생산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배출되는지 여부를 살폈다.
백혈병에 걸린 근로자 6명 중 4명에게 암 유발물질이 검출되지 않았고 나머지 2명에게도 낮은 노출수준을 보였다며 백혈병 발병원인과 근무환경의 연관성이 없다고 밝혔다.하지만 조사 결과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아 많은 의심을 샀다. 이에 대해 이 노무사는 “조사 결과를 발표할 당시 사회단체들은 참여하지 못하게 막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동안 ‘반올림’은 반도체 공장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지적해왔다. ‘반올림’ 블로그 제보게시판을 통해서도 근로환경이 어느 정도인지 예상할 수 있다. 한 노동자는 “안전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에서 일했다. 심지어 장갑을 벗고 약품을 만지거나 알 수 없는 가스를 마신적도 많다”며 안전이 100%이뤄지고 있지 않은 근무환경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이 노무사는 “현재 백혈병에 걸린 반도체 노동자들과 희귀 질병자들이 반올림에 제보했다. 무려 140여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공장 피해자들 숨통 트일까
한편 지난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결려 숨진 고 황유미 씨의 유가족들은 삼성 측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를 인정받고자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한 바 있다. 이에 지난해 6월 법원은 “과거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사용되어 온 벤젠, tce, 전리방사선 등에 노동자들이 노출허용기준 미만으로 노출되었더라도 장시간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서 백혈병이 발병했다고 보아 인과관계를 인정한다”고 밝히며 황유미 씨와 그의 동료의 손을 들어줘 산업재해를 인정했다.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재판부의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했고 오는 3월 2심이 열릴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 노무사는 “4년 만에 산업재해가 인정됐는데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하면서 2심이 결정됐다”면서 “이렇게 유력한 근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왜곡하며 근로복지공단이 재판을 계속 진행한다면 이는 부당한 처사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정부의 이같은 발표는 반도체 공장 환경이 수면위로 떠올라 사실을 알리는 계기가 됐고 많은 정계 인사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6일 진보신당은 “반도체 공장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삼성이 의뢰한 연구업체를 통해 백혈병과 노동환경이 무관하다는 연구결과는 거짓임이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난 8일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성명을 내고 삼성전자의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이어 백혈병 소송의 항소를 진행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에 대해서도 즉각 항소를 취하해 반도체 근로자의 고통을 치유할 길을 열어주라고 밝혔다.
최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