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1~2차 시한 넘기며 선거구획정 합의 실패
‘선거구의 인구편차 3대1 이하 개정’원칙 어긋나
선거구 획정 지연, 재외국민선거 차질 등 부작용
“졸속으로 처리할 경우 당장 총선에서 혼선 빚어”

여야가 4ㆍ11 총선을 50여일을 앞두고도 각각의 당리당략에 빠져 선거구 획정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인구기준을 따르지 않고 정치적 이해에 따라 ‘게리멘더링’을 시도하고 있어 “여야 모두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게 쏟아지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주성영, 민주통합당 박기춘 의원은 16일 각각 양당 황우여, 김진표 원내대표와 함께 선거구획정 조율에 나섰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1차 시한인 9일과 2차 시한인 16일을 넘겼다. 지난 14일 ‘MBC 100분토론’에서는 거의 합의된 것처럼 말했지만, 뒤돌아서서 또다시 본연의 색깔을 드러낸 것이다.
새누리당은 영호남에서 2석씩 총 4석을 줄이고, 강원 원주, 경기 파주, 세종시와 비례대표 1석을 늘리는 내용의 안을 민주통합당에 제안했다. 민주당은 위헌 소지가 있는 강원 원주, 경기 파주를 분구하고 세종시를 늘리는 대신 영남에서 2석, 호남에서 1석을 줄이는 ‘3+3 수정안’을 제안했다.
여야 모두 잇속 챙기기
그런데 여야가 현재 각각 검토하고 있는 선거구 획정안은 모두 헌법재판소가 2001년 결정한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편차 3대1 이하 개정’원칙에 어긋난다. 시도별 인구편차 등을 근거로 영호남 지역 의석수를 줄이는 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상한선을 넘는 일부 선거구를 남겨둔 채 정치적 부담이 덜한 하한선 기준의 선거구를 통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회 자문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는 헌재판결에 맞춰 제시한 인구 상한선(30만 4,107명)과 하한선(10만4,342명) 기준에 따라, 지난 해 분구(分區)와 합구(合區) 대상지역에 대한 권고안을 만들어 정치개혁특별위원회로 넘겼다.
위원회는 용인 수지, 용인 기흥, 경기 파주, 수원 권선, 여주·이천(이상 경기), 강원 원주, 충남 천안을, 부산 해운대·기장 갑 등 8개 선거구를 분구대상으로, 부산 남 갑·을, 전남 여수 갑·을, 서울 성동 갑·을, 대구 달서 갑·을·병, 서울 노원 갑·을·병 등 5개 선거구를 합구대상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위원회의 권고안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로 넘어오면서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분구를 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었지만,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 5개 지역구를 합구하기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합구대상도 위원회가 선정한 대도시 지역구에서 남해·하동, 영천·상주, 담양·곡성·구례 등 농어촌 지역으로 바뀌었다. 농촌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구기준만을 엄격히 적용한 것이다.
금배지 이기주의
이럴 바엔 국회 자문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왜 만들었고, 그간의 시간을 낭비했는가”에 대한 강한 비난이 일고 있다. 여야는 지금 위원회의 건의안은 안중에도 없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내용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여야간 ‘금배지 이기주의’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선거구 획정이 지연되면서 부작용은 다른 분야에서 먼저 나왔다. 당장 재외국민선거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선거법이 규정한 재외국민선거 선거인명부 작성기간은 오는 22일부터 다음달 2일 사이, 선거구 획정 이후 공포까지 약 일주일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주 초 선거구를 획정했어야 했다.
따라서 4·11 총선에서 재외국민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동규 재외선거 관리과장도 “선거구별 국외부재자 대조확인 등 시간부족으로 명부작성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라고 언급하여 실시불가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여기에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구 획정안이 나오지 않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준비에도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주 안으로 선거구를 획정하지 못하면 총선 무효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국회 운영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임시국회는 2월말까지 소집된 상태로 2월 중 언제든지 본회의가 열릴 수 있기 때문에 여야합의만 이루어지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2002년 16대 총선부터 시작된 새해예산안처리처럼 마감직전에 졸속으로 처리하는 정치권의 관행을 또다시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선거구획정 때문에 애를 태우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예비후보자들이다. 이들은 일찍부터 후보자 공천을 접수했고, 현재 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선거구의 분구나 합구가 예상외로 흘러간다면 4.11총선에서 상당한 혼란과 함께 그 책임론에 대한 문제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현안 처리 스톱
또한 이와는 별도로 국회에서 정말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바로 법안심의와 국회통과다. 여의도가 여야의 선거구획정 ‘줄다리기’로 멈췄다. 자신들의 정치적 텃밭에서 지역구를 늘리려는 여야의 선거구 획정‘꼼수’에 국회의 모든 일정이 볼모로 잡히면서 본회의와 대부분의 상임위가 열리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저축은행 특별법, 국회선진화법, 학교폭력방지법, 고흥길 특임장관 내정자의 인사청문회보고서 채택 등 주요 현안들이 해당 상임위에 잠들어 있다. 국회의 존재이유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지난 ‘MBC 100분토론’에서는 국회의 또 다른 축소판이 나타났다. 선거구개편에 대한 논의에서 새누리당 주성영 의원은 “2015년에 행정체제개편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번에는 비례대표제를 줄여서라도 최소한으로 선거구를 조정하자”고 한 반면 민주통합당 박기춘 의원은 “영남에서 2석 호남에서 1석 줄이고, 3석을 늘여 파주, 원주, 세종시에 늘리자”라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 유근찬 의원은 천안의 사례를 들어 선거구자체에 유권자 수가 넘으면 분구를 해야한다는 공직선거법 25조 1항을 강하게 부각시켰고, 통합진보당 노회찬 대변인은 “선거구획정에는 원칙이 중요하다. 하지만 각 당이 선거에 유·불리만을 따져 밀실에서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라고 주장, 공론의 장에서 긴밀한 논의를 제안했다.
‘100분토론’에서도 원론적인 토론을 이어가다가도 자기 당의 유·불리한 점이 나올 경우 철저하게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모습이 국회에서 이어지는 토론처럼 계속 이어졌다.
이런 모습이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이라고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발전과정이 아니라 퇴보의 과정을 걷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선거방법 등도 시급히 다뤄져야
선거구획정 문제에 밀려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 석패율제도와 독일식 정당명부제 그리고 선거방법에 있어 IT테크놀로지를 이용한 것들이었다.
지난 ‘100분토론’에서는 이런 내용들이 조금이나마 언급되었다. 먼저 석패율 제도는 ‘한 후보자의 지역구와 비례대표 동시출마를 허용하여 가장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뽑는 제도’로 원내에 상당수의 의원들이 들어가 있는 교섭단체 정당들은 찬성한 반면 그렇지 못한 정당들은 원칙적으로 반대하였다. 새누리당 주성영 의원은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다”라고 주장하여 거대 정당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의원은 “정치개혁에 있어 중요한 방안이기는 하지만 같은 진보를 내세우는 통합진보당의 입장을 고려할 때 이번 선거에서 도입은 어렵겠다”라고 언급했다.
자유선진당 유근찬 의원은 “이 제도는 ‘비례대표제를 위협하는 제도로서 비례대표제는 국회의 전문성과 소수자에 대한 배려로 인식되고 있는데, 거대 정당의 욕심 때문에 이 제도가 훼손될까 안타깝다”라고 표현,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통합진보당의 노회찬 대변인은 “부산지역의 경우 17대 총선에서 52%를 득표했는데 94%(18명중 17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고, 18대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석패율이 도입되면 싹쓸이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 반대의사를 밝히고 그에 대한 대안을 주문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지역구 후보와 지지정당에 각각 투표한 뒤 전체 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인데, 새누리당을 제외하곤 대부분 도입취지에 대해 찬성하고 있었다.
주성영의원은 “18대에서 180명이 참여한 개헌연구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없다면 시행되기 어렵다”라고 표현했지만 속내로는 젊은 층의 진보적 성향을 가진 정당들의 선호에 적극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이 제도에 가장 적극적인 정당은 통합진보당이었다. 노회찬 대변인은 “국회는 소수 국민의 목소리도 반영해야 한다. 약간의 우세함을 가지고 전체를 독식하고 있는 지금의 선거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며 “이런 점 때문에 각 당들이 안일하게 국민들을 바라본다”라고 말하면서 적극적 도입을 주장했다.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방식으로 새누리당에서는 석패율제도를, 통합진보당에서는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도입을 주장, 각 당의 입장차를 분명히 했다.
이 외에도 100분토론에서 노회찬 대변인은 IT기술을 접목한 선거방법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스크린터치전자기’를 이용하여 투표를 할 경우 투표율이 매우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IT강국에서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 활용하지 않는 이유는 투표율이 높아질 때 불리한 정당들이 반대하고 있다”라고 밝혀 적극적인 도입을 주장했다.
민주통합당의 박기춘의원도 “모바일 투표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라고 밝히면서 “선거방법도 이제는 진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제안했던 내용들은 많이 있다. 그 중 선거구획정만이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되면서 다른 사안들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수면아래 잠겨져 있어 18대 국회에서 마지막으로 남겨 놓을 좋은 선물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거구획정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인구 수 만을 고려하여 농촌지역을 홀대한 측면, 인구 수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준비하는 것을 볼 때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라는 반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 각 정당들은 국민을 위해 한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을 믿을만한 순진한 국민은 이제 없다. 철저하게 당리당략에 의해 계산된 선거구, 숫자의 힘을 믿고 밀어붙이는 거대정당들의 폭력정치, 국가에 대해서는 생색만 내고 실속이 없는 우리의 정치인들. 선거구가 어떻게 획정되던, 어떤 방식으로 투표를 하던, 유권자들은 이런 부문에 개의치 말자. 과정은 없고 결과만을 추구하는 정치판에서 좋은 결과를 맺자. 그 결과는 유권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문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