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반도체분야에 관심 가져…무한 애정 과시
하이닉스 공장 방문 “동반성장 이룩하자” 임직원 격려
하이닉스 노조 “SK 대주주로 맞이한 것 바람직” 환영
하이닉스 성장위해 낸드플래시 사업 주력 ‘4조2000억원 투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하이닉스반도체(이하 하이닉스)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과거에 법적·도덕적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고 현재도 공금횡령 의혹으로 형사 재판 중이다. 이같은 그의 전적은 하이닉스의 대표이사 자리를 꿰차는데 걸림돌이 됐고 일각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그룹의 성장 동력을 발굴해내는 경연인으로서의 능력이 과거의 잘못을 덮을 만큼 강력했다. 그는 반도체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고 다시 한 번 그의 경영능력과 리더십을 재확인 하는 시험대에 앉았다.
지난 14일 하이닉스 이사회는 신임 사내이사인 최 회장을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고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이 하이닉스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권오철 사장은 대표이사 사장직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결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 10년 동안 대기업의 지원 없이 회사를 운영해온 하이닉스에게 새로운 주인이 생겼다.
하지만 최 회장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그의 대표이사 선임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그의 회장 선임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하이닉스 최대주주의 국민연금 등 정부측 추천인사 두 명이 사퇴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최 회장은 “잘하라는 채찍질이라 생각한다며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뜻을 표했고 반도체 시장 성장에 박차를 가하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채찍질로 생각하고 좋은 회사 만들겠다”
지난 13일 SK텔레콤은 지난해 7월8일 하이닉스 인수의향서를 제출하며 하이닉스 인수 추진을 공식 선언한 이후 약 8개월여 만에 하이닉스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SK는 하이닉스 주식 총 1억4610만주에 대한 주식인수 대금 3조 3747억원을 납입 완료, 하이닉스 총 발행주식의 21%가량을 보유하게 됐다.
이어 이날 최 회장은 찬성41.92%, 반대 15.89%로 의결권 주식중 찬성표가 반수가 넘어 이사로 선임됐고 다음날 열린 이사회에서 최 회장은 공동대표로 선임됐다. 최 회장은 “책임을 지고 하이닉스를 글로벌 반도체기업으로 성공 시키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최 회장은 오래전부터 반도체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며 검찰 수사로 정신없던 지난해 말에도 하이닉스를 방문하며 무한 애정을 과시했다. 따라서 최 회장에게 하이닉스 대표이사 회장 자리는 그의 오래된 염원을 실현 가능케 하는 의미 있는 자리로 보인다.
하지만 최 회장의 선임에 반발하며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반대의견을 피력한 사람들은 “현재 최 회장은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고 과거에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기 때문에 하이닉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정부측 추천위원 2명이 최 회장의 선임에 반발하며 사퇴했다.
이들은 “국민연금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최 회장의 하이닉스 이사 선임에 대해 반대하지 않고 중립의견을 내기로 한 것에 대해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 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했다. 하이닉스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지난 10일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 회의에서 최 회장의 하이닉스 사내이사 선임에 중립의견을 내기로 한 것이다. ‘중립’은 의결정족수에는 포함되지만 출석주주들의 의결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의결권 행사를 말한다.
또한 좋은기업지배연구소,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도 최 회장의 도덕성 결여를 지적하며 반대의견을 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지난 14일 주총 반대표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하이닉스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면서 “하이닉스를 더 좋은 회사로 만들어 달라는 주주들의 채찍질로 여기겠다”며 굴하지 않았다.
신속한 의사 결정
일관성 있는 사업능력 필요
반면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선임을 환영했다. 하이닉스 노동조합은 공식 입장 발표를 통해 “국내 3대 그룹으로서 튼튼한 자금력과 뛰어난 마케팅능력, 무엇보다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육성의지가 큰 SK그룹이 대주주로 오게 된 것에 대해 바람직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집중적인 투자와 기술개발이 시장 경쟁력의 직접적인 요인인 만큼 무엇보다도 신속한 의사 결정과 일관성 있는 사업추진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최 회장을 반겼다.
또한 노조는 “그룹 총수가 사내이사로서 책임경영을 실천하겠다고 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하이닉스와 SK가 성공적인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기업경영의 핵심에 항상 ‘사람’을 위한 경영을 해야 할 것”이라며 최 회장의 강력한 추진력을 요구했다.
이에 최 회장은 지난 주총에 앞서 “SK와 상당한 시너지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특히 해외 기반 사업에서 효과가 클 것으로 본다”며 하이닉스의 밝은 미래를 점쳤다. 이어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반도체를 잘 운영해 나갈 것이다”면서 SK와 하이닉스의 투자 균형에 대해서도 최대이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분배할 것”이라며 강한 포부를 드러냈다.
특히 SK는 유공합병을 통해 정유사업을, 한국이동통신 합병을 통해 통신사업을 확대하는 등 인수합병으로 성장 동력을 찾아왔다. 그동안 인수합병 사례를 통한 투자 경험으로 SK와 하이닉스가 동반 성장해 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증폭된다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더불어 최태원 회장과 함께 대표이사직을 수행하는 권오철 사장은 “최 회장의 본격적인 경영참여로 적기 투자 및 중장기 전략의 역량 강화를 통해 회사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게 됐다”고 최 회장의 경영능력을 추켜세웠다.
덧붙여 하이닉스는 “풍부한 경영의 경험과 폭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최 회장의 선임을 통해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책임경영’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제품 포트폴리오를 개선하는 등 종합 반도체 회사로 성장할 수 있게 될 전망”이라며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선두 업체가 되기 위한 적기 투자 및 강력한 추진력 등의 경영 환경을 갖추게 됐다”며 최 회장의 선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장경영’ 토대로
첫 테이프 끊은 최 회장
최 회장은 2년 전부터 반도체 제조 공정을 집중적으로 학습했고 인수 작업을 진행할 당시에도 매일 하이닉스의 실적과 경쟁사 동향을 챙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토록 그가 반도체 산업에 집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반도체 산업은 고 최종현 회장이 항상 염원했던 분야이며 못다 이룬 꿈이다.
또한 최 회장은 1997년부터 약 15년간 그룹을 이끌며 석유, 통신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를 지내왔다. 하지만 이 사업들은 처음부터 그가 참여해 성장시킨 것이 아니다. 반면 반도체 산업은 다르다.
그는 회장 선임 이후 강력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하이닉스를 더 좋은 반도체 회사로 키워나가겠다”며 “하이닉스가 글로벌 회사로서 해외 기반의 산업에 진출하는데 SK그룹이 힘이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덩달아 최 회장은 대규모 투자뿐 아니라 사업 전략, 개발 계획 수립 등 하이닉스 경영 전반을 직접 진두지휘할 뜻을 내비쳤다.
그의 확고한 의지는 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지난 15일 최 회장은 생산현장에서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그는 SK텔레콤 사장과 함께 하이닉스 이천공장과 청주공장을 잇달아 방문했다. 그는 작업복 차림으로 이천공장 구내식당에서 임직원들과 점심을 함께 했고 SK 특유의 ‘한솥밥 문화’를 언급하며 “하이닉스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현재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임직원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격려했다.
그는 이날 하이닉스 이천공장 R&D연구소도 방문했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 하이닉스 이천공장의 첫 번째 방문지를 R&D연구소로 택한 것이다.
또한 최 회장은 청주공장의 낸드플래시(스마트폰 같은 휴대용 기기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M11 생산라인과 조만간 생산에 들어가는 M12 생산라인을 둘러봤다. 이에 대해 SK그룹 홍보담당 이만우 전무는 “최태원 회장이 하이닉스 대표이사로 선임된 다음날 하이닉스 이천, 청주공장을 잇따라 방문한 것은 반도체를 통해 글로벌 성공스토리로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며 “R&D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인재확보는 물론 동반성장 경영을 통해 하이닉스를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새 주인 맞은 하이닉스
하이닉스는 전형적인 수출형 글로벌 기업으로 반도체 산업에서는 삼성전자 다음으로 당당히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연 매출 10조원이 넘는 세계적인 회사로 매출의 대부분이 수출에서 나온다. 또한 지난 10년 간 채권단 관리 하에 독자경영을 지속하며 고된 어려움들을 겪어 왔다. 숱한 위기를 이겨내며 현 위치에 자리한 하이닉스지만 작년 하반기에는 최악의 메모리 반도체 불황으로 거액의 적자를 기록 했다.
이러한 상태에 직면한 하이닉스에게 최 회장은 구원투수로 여겨진다. 따라서 최 회장은 낸드플래시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낸드플래시는 반도체 중에도 수익성이 좋기 때문에 삼성전자도 낸드플래시의 일종인 모바일AP쪽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에 SK그룹은 올해부터 하이닉스에 작년보다 20% 늘어난 4조2000억원을 투자해 낸드플래시 사업에 주력할 예정이다.
문제는 내수사업·정부규제 사업인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을 경영해온 최 회장이 수출로 수익을 보는 하이닉스를 잘 이끌 수 있냐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최 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로 그가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