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및 삼성전자 등 주식 인도 청구 소송 제기
차명 재산 ‘인지 시점’ 두고 입장 엇갈려 갈등 증폭
정치권, 국세청에 ‘이건희 증여세 촉구’ 공문 보내
삼성 vs CJ ‘3차 전쟁’…해묵은 갈등 다시 재연되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큰형인 이맹희씨와 재산 분쟁에 휘말렸다. 이씨는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아버지가 생전에 차명으로 갖고 있던 재산을 이 회장이 단독 명의로 변경했다”며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명 재산에 대한 주식 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의 분쟁은 지난 2008년 삼성 특검 때부터 예고된 것으로, 두 형제는 차명 재산 ‘인지 시점’을 두고 입장이 엇갈려 갈등을 빚고 있다. 또한 소송에 다른 형제들도 동참할 가능성이 있어 사태가 확산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소송 결과가 이건희 회장에게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됨은 물론 형제 간 갈등이 삼성그룹 일가 갈등으로 번질 수 있어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씨가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거액의 상속 소송을 냈다.
이씨는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아버지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재산을 이 회장이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 명의로 변경한 만큼 내 상속분만큼의 주식을 돌려달라”며 삼성생명 주식 824만주와 삼성전자 주식 20주 및 1억원을 지급하라는 주식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도 삼성생명보험 주식 100주와 1억원을 청구했다. 이로써 총 소송가액은 무려 7천130억원에 달한다.
이씨가 낸 소장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이 회장 쪽에서 먼저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 문서를 제시하면서 “실명전환한 차명재산에 대해 상속지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씨는 이에 서명을 하지 않고 법무법인을 통해 소송 절차를 진행했다.
범삼성家 재산 분쟁 ‘촉각’
이번 소송 문제를 두고 재계 안팎에서는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이 사건의 시발점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2008년 4월17일 삼성 특검은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486명의 차명계좌 1199개로 관리된 이 회장의 차명재산 중 계열사 주식이 4조1009억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비롯해 삼성전자·삼성물산 등 7개 회사의 주식이었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전자 보통주 224만5525주와 우선주 1만2398주, 삼성생명 주식 324만4800주, 삼성SDI 주식 39만9371주를 실명 전환했다. 이때 특검이 숨겨져 있던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유산을 공개하면서 이미 상속 분쟁이 예고된 것이다. 이번 소송의 최대 쟁점은 ‘상속회복청구권’의 효력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다.
이씨는 ‘차명 주식의 존재를 몰랐고 내 상속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침해받은 상속권을 찾기 위해선 법적으로 상속회복청구권의 효력이 적용되는지 따져야 한다.
민법(999조 1항)에 따르면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권의 침해를 안 날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 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동안 권리가 존속한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은 지난 1987년 사망했다. 이에 삼성측은 “이병철 회장이 사망한지 25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이씨가 법원에 상속회복청구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기한(10년)을 넘겼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씨측은 “이 회장측에서 지난해 6월 제시한 ‘상속 재산 분할 관련 소명’ 문서에 차명 재산이 언급돼 있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상속권을 침해당한 사실을 알았다”며 “상속회복청구권은 효력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또 이씨측은 “이 회장이 이병철 회장의 차명 주식을 자기 명의로 전환한 시점 또한 2008년 12월이기 때문에 이때 사실상 상속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형제들은 어떻게
여기서 이씨가 상속재산권 침해 시점을 지난해 6월로 주장하고 있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재계 안팎에서는 만약 재판부가 이씨의 주장에 따라 상속재산권 침해 시점을 지난해 6월로 인정해 승소할 경우 이인희(한솔), 이숙희(아워홈), 이명희(신세계)도 소송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신세계측은 “회사와 무관한 일이기에 아는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솔측도 “1987년에 이미 다 정리된 문제를 가지고 이씨가 왜 소송을 제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소송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했다.
더욱이 한솔 관계자는 고문인 이인희씨에 대해서도 “장녀인 이인희 고문은 현재 두 형제간 갈등에 대해 심히 염려하고 있으며, 화해를 바라는 입장이다”고 전했다.
반면 재계는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부인이자 이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씨가 먼저 이 회장의 상속재산 분할과 관련해 법률적 검토를 진행 중이었고, 이 과정에서 이씨가 먼저 소송을 건 것으로 보고 있어 논란의 소지가 남아있다.
삼성 지배구조 영향 받나
이번 소송에서 이씨가 승소해 이 회장이 상속재산을 돌려주는 과정에서 삼성생명 보유지분을 매각하면, 2대 주주였던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더욱이 현재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가 되고 삼성생명은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가 되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이에 재계에서는 에버랜드의 최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물론 이씨가 패소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삼성생명 차명주식은 이씨와 이 회장을 비롯한 형제들의 공동재산인데, 이것이 모두 이 회장에게 차명 전환됐다면 이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적용해 증여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지난 15일 삼성가의 재산분쟁과 관련, 이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상속에 대해 증여세 부과를 촉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국세청에 보냈다.
이 공동대표는 공문에서 “공동상속인과 이 회장이 합의해 공동상속인의 지분을 이 회장 명의로 명의신탁했다면 이는 증여세 부과 대상이 된다”며 “국세청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2항에 따라 명의신탁재산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의원실에서 자체적으로 추산한 결과 이 회장에게 부과할 수 있는 증여세는 약 2~3조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소송 후폭풍은
특히 이번 소송은 형제간의 분쟁을 넘어 삼성그룹과 CJ그룹의 갈등으로 번질지도 주목된다.
이씨는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3남5녀)의 장남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이다. 지난 1966년 9월 당시 이병철 회장이 ‘한국비료 밀수사건’(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잠시 경영에서 물러났을 때 이씨는 아버지를 대신해 그룹 회장직을 맡아 계열사 관리를 총지휘하면서, 삼성전자 부사장 등 17개 직함을 꿰찰 정도로 삼성을 이끌 후계자로 꼽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동생인 이창희씨가 이병철 회장 및 삼성의 조직적 비리에 대해 청와대에 투서를 한 사건에 연루되는 등 아버지와 갈등을 겪게 됐고, 이로써 눈 밖에 난 두 아들 대신 이 회장이 지금의 삼성그룹을 맡게 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 경영을 맡겨보았다. 그러나 6개월도 채 못 돼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고 적었다.
이후 이병철 회장은 이씨에겐 삼성물산·삼성전자·제일제당 부사장 직책 3개만을 남겨줬고,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이씨는 삼성을 떠나 오랫동안 중국 베이징에서 골프로 소일하며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이 같은 형제들의 갈등은 이번 소송의 배경이 됐으며,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이 삼성과 CJ의 ‘3차 전쟁’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1994년 삼성과 CJ의 계열분리 시점이 ‘1차 전쟁’이고, 지난해 6월 대한통운 인수를 둘러싼 갈등이 ‘2차 전쟁’이라는 것이다.
지난 1994년 삼성은 제일제당의 계열분리 당시 이재현 CJ회장집 정문쪽으로 CCTV를 설치해 출입자를 감시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지난해에는 CJ가 이미 뛰어든 대한통운 인수전에 삼성SDS를 앞세워 포스코와 함께 뒤늦게 참여했다가 논란이 확산되자 인수 시도를 철회했다.
그러나 삼성 홍보실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민사 소송이므로 회사가 개입할 부분이 아니다”며 “법률적으로 상속 문제가 이미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CJ 홍보실 관계자도 “CJ와 삼성간의 갈등으로 불거질 일이 절대 아니다”며 “그룹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관계자는 “원만한 해결을 바라는 입장”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지난 15일 이씨가 소송 관련 인지대를 전액 납부한 것으로 알려져 형제 간 상속 재산 분할 소송이 본격 진행될지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고은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