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영업규제 놓고 이해집단 간 입장 제각각
전국적인 규제 움직임에 대형마트들 ‘볼멘’ 소리
정치권, 총선 겨냥해 영업규제 목소리 높이기 한창
“대기업·중소상인 간 ‘상생’하려면 ‘근본’적 대안 필요”

지난해 국회에서는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됐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이하 SSM)에 대한 영업규제가 골자이다. 전주시를 필두로 조례 개정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아가 정치권 내에서도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대한 옹호론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일각에서는 “총선을 염두에 둔 일시적 현상”이라며 “영세 중소상인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마트가 생기고 손님이 줄었어요. 여기저기서 장사 안 된다고 난리라니까요. 이번에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한다면서요? 다들 빨리 시행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면 사정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요”
대형마트 영업규제, 전국 ‘확산’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전통시장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복례(52.가명)씨의 말이다. 그의 말에서 이번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대한 기대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골목상권을 살리는 최선책”이라고 보는 시각은 일부에 지나치 않는다.
녹색소비자연대의 관계자는 “이 정도 가지고 골목상권을 살리기는 아직 부족하다. 영업시간을 지금보다 줄이는 등 더 강력히 시행돼야 한다”면서 “영업시간을 줄이면 일하는 소비자들의 불편이 가중된다고 하는데 이는 근로시간을 줄이면 해결될 일이다”고 전했다.
그는 또 “대형마트가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할 수 있는 것은 근로자에게 야간수당을 따로 챙겨주지 않아도 되고, 상업시설이 쓰는 에너지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면서 “근로시간·야간수당·에너지비용 등이 얽히고설켜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고 설명했다.
곳곳에서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촉구하고 나서자 대형마트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불편은 생각하지 않는 행위”라면서 “이번 규제로 대형마트에 입점해있는 중소상인들과 대형마트에 납품하고 있는 중소제조업체들 그리고 주변상권, 근로자들이 입는 피해도 생각해달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일요일에 영업을 금지하면 소비자들이 물건을 전날 사거나 아니면 인터넷, 편의점 등에서 살 수 있어 실효성이 없다. 때문에 전통시장이나 동네상점의 매출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0.1~0.2%가 이익을 보자고 이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뺏어가야 겠느냐”고 반문했다.
계속되는 잡음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전국의 대형마트의 수는 ▲2005년 300개 ▲2007년 354개 ▲2009년 411개 ▲2011년 441개로 그 수가 계속 증가했다. 반면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전국의 전통시장 수는 ▲2005년 1660개 ▲2007년 1610개 ▲2009년 1550개 ▲2010년 1517개로 그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같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성쇠가 극명하게 나타나자 대형마트는 사회 내 문제로 끊임없이 지적됐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조례를 통해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시간을 오후 11시 이후부터 오전 8시까지로 제한하고, 이들이 월 1~2회 쉬도록 강제할 수 있으며 업체가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총대를 멘 곳은 전주시다. 지난 7일 전주시에서는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시간을 오전 8시부터 밤 12시까지로, 휴업일을 매월 둘째주와 넷째주 일요일로 강제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서울시도 25개의 자치구에 이와 관련된 조례개정을 준비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9일 “대형마트로 주변 상권의 피해 사례가 늘어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면서 “이를 시작으로 골목상권의 활성화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마포구는 지난 14일 '서울특별시마포구유통기업상생발전 및 전통상업보존구역지정등에 관한 조례'를 개정키로 함으로써 서울시 25개의 자치구 중 가장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마포구를 시작으로 서울시 내 다른 자치구들도 대형마트 영업 규제에 조만간 동참할 것이란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전주시와 서울시 외에도 부산, 인천, 광주, 대전, 강릉 등에서 대형마트 영업 규제에 관한 조례 제정의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오는 3월이면 전국 곳곳에서 대형마트 영업 규제가 시행될 것이란 전망이다.
정치권, 잇단 ‘옹호’ 표명
그간 대형마트와 SSM은 골목상권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13일 인천시에 따르면, 숭의운동장 내에 홈플러스의 입점이 예정돼 ㈔중소기업혁신전략연구원에서 용현시장, 신흥시장, 숭의평화시장 상인 194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상인의 약 72%가 홈플러스로 인해 자신의 가정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그간 대형마트의 매출액은 2006년 25조7000억원에서 2010년 33조7000억원으로 8조원 증가했고, 전통시장의 매출액은 2006년 29조8000억원에서 2010년 24조로 5조8000억원이 감소해 대형마트의 성장 이면에 전통시장의 위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상황이 이러자 정치권에서도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대한 요구가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성명서나 보도자료 등을 통해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대해 입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4·11 총선에 출마를 선언한 민주통합당 임현모 광주 북갑 예비후보, 민주통합당 윤관석 인천 남갑 예비후보 등이 이와 관련해 입장표명을 한 바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도 눈에 띈다. 박 위원장은 지난 13일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과제 중 하나가 양극화와 불균형 심화”라며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 상권 잠식도 대표적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재 대기업이나 대형유통업체들이 과도하게 사업을 확장함으로써 골목 상인들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며 “이는 서민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고, 이런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또 이날 회의에서 인구 30만명 이하의 중소도시에 대형마트와 SSM의 신규 진출을 5년 동안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결정해 새누리당이 대형마트의 무분별한 성장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가할 방침이라는 풀이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재 정치권에서 가진자와 못가진자로 이 상황을 몰고 가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결국 이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차라리 소상공인을 위한 또 다른 사회·복지적 정책을 보완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고 볼멘 소리를 냈다.
‘상생’이 핵심
이처럼 정치권에서 ‘폭격’ 수준으로 대형마트 영업에 제재를 가하자, 일각에서는 4·11 총선을 앞두고 서민정책의 일환으로 대형마트를 재물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즉 4·11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얻기 위해 정치권에서 이 같은 행보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2009년부터 국회에서 계류되다 지난달 공포됐다. 약 3년이란 기간 동안 여야의 대립으로 처리가 몇 차례 무산되자, 정치권에서 골목상권을 위한 법령마련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때문에 최근에 와서야 정치권에서 골목상권의 생존에 집약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 시기상 의문스럽다는 견해가 나오는 것이다.
이번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놓고 단기적인 시각에서 ‘수박 겉 핥기’로 행해지는 정책 아니냐는 비판도 속출한다. 소비자의 권리와 골목상권의 생존을 위해서는 단순히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다 근본적인 사회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소비자연대의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자기 이해에 맞는 곳을 찾는다. 때문에 소비자들이 대형마트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라면서 “사람들이 왜 동네상점을 이용하지 않겠나. 물품, 서비스가 대형마트보다 못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그는 “지자체에서 동네상점을 소비자가 갈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컨설팅(consulting)해줘야 한다”며 “미국 같은 경우 일정한 포맷(format)을 제공한다. 우리도 지자체의 지원으로 소비자가 굳이 대형마트가 아닌 동네상점에서도 물건을 구입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이와 관련해 시장경영진흥원의 관계자는 “이번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대해 옳다, 그르다 말하기 곤란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통해) 전통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이어 관계자는 “영업규제보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조화와 공생을 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시장이 스스로 자생력을 가져야한다”며 “현재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청에서 시설현대화, 시장경영진흥원에서 경영현대화 사업을 하고 있다. 상품권, 상인교육 등이 시장스스로의 자생력을 높이려는 우리의 대책이다”고 덧붙였다.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더 많은 사회 구성원들의 상생을 위해 제시된 방안이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야 정치권이 골목상권의 생존을 위한 대책마련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그 이유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치권의 노력이 '표심잡기'에 그치지 않고, 전통시장 나아가 서민을 위한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대안 마련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