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공천결과 이후 불복, 재심 청구 40여 곳
호남 공천결과에 따라 심각한 후유증 나타날 듯
탈락자, “‘밀실·야합 공천’ 아니냐”며 강한 의문 제기
“총선 낙관론 및 오만함이 총선 패배로 이어질 수도”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하게 받아들였던 우리 사회에서 이번 4·11총선의 공천자 발표에 대해 각가지 이야기가 터져 나오는 것을 볼 때 민주주의와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양金’정치가 판을 칠 때는 공천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정치인들이 그리 만치 않았다. 자칫 ‘보스’의 눈에 벗어날 경우 정치판에서 완전 매장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양김정치가 사라지고 새로운 정치의 장이 형성되면서 정당공천에 대한 가치가 확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영남과 호남 그리고 충청과 같은 특정지역에서 공천은 곧 당선과 같은 등식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실제 선거보다 당내 공천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치열한 전쟁은 당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내 독재는 사라지고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문화가 싹튼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새롭게 생긴 또 하나의 현상은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개인주의가 폭발하듯 등장했다는 점이다. 남을 배려하는 것은 없고 ‘오로지 내가 해야 된다’는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나온 것이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공천 잡음
민주당의 경우 1차, 2차, 3차 공천결과를 발표한 다음날까지 공천결과에 불복, 재심을 청구한 곳이 40여 곳에 이르고 있다. 3차 공천까지는 단수후보나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 한 지역이어서 결과에 쉽게 승복할거라 예상했는데, 의외의 복병을 만난 것이다.
앞으로 호남지역을 비롯한 격전지역의 공천결과가 나온다면 에상치 못한 결과와 함께 심한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는 사실은 빤한 일이다.
선거 때마다 공천을 둘러싼 갈등과 반목, 후유증이 빚어졌지만 이번 선거만큼 심했던 적은 없을 것이다. 공천 초기단계에서 이러한데 246곳의 지역구 공천을 마무리하려면 얼마나 많은 곳에서 시비와 반발, 잡음이 일어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지난달 22일과 24일 그리고 29일 수도권과 영남, 충청, 강원 일부지역의 공천자 발표 이후 일부 낙천자들은 공천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반발, 중앙당에 재심을 요청한 데 이어 일부 예비후보들은 무소속 출마를 위한 탈당 조짐까지 감지되고 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길기수, 변지량, 허영 등 민주통합당 탈락 후보들은 “공정한 경쟁력 평가 없이 ‘밀실·야합·기획 공천’이 이뤄진 것 아니냐”며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며 재심신청 마감일인 2일까지 재심을 신청할 계획이다.
경기지역에서도 불만은 만만치 않다. 과천·의왕, 군포, 안산단원갑을 민주당 전략공천지역으로, 파주시를 야권전략공천지역으로 결정한 이후 공천에서 탈락한 현역의원(비례대표)인 안규백 의원은 “그동안 지역구에서 저인망식으로 활동해 왔고 정체성이나 의정 활동도 문제가 없으며 현 정부의 실책 비판도 주도적으로 해왔는데 이런 결정이 나왔다. 공천 절차와 과정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도 “상황파악을 더 해보고 추후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밝혀 무소속 출마의 가능성을 열어놨다.
“공천권은 시민에게”
하수진 전 경기도의원 등 군포지역 예비후보자들도 기자회견을 통해 “군포 전략지역 선정은 민주통합당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공천권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처럼 공천관련 파열음이 일자 재심위원회를 구성하고 신낙균 의원을 위원장에 선임했다.
충청권에서도 불만은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소속 유성구의회 의원들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현역 중심의 단수공천과 공심위가 천명한 정체성과 전혀 맞지 않는 후보들이 이곳저곳에서 단수 공천되는 오늘의 현실은 너무 당혹스럽고 황당할 뿐”이라며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라 달라”고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석찬, 문용욱, 이군규 예비후보가 재심을 청구했고, 일부 선거구 예비후보는 당규에 어긋난다며 단수 후보확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지역에서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지난 29일 3차 공천 발표에서 탈락한 다선 원로들이 전면에서 움직이고 있다. 서울 관악갑에서 탈락한 한광옥 상임고문은 “무소속 출마를 불사하겠다”며 1일 옛 민주계 인사들과 잇단 접촉에 나섰다. 공천심사위 심사에서 탈락했으나 최고위원회의 의결 과정에서 발표가 유보된 정균환(송파병) 전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 2차 발표에서 탈락한 지용호(동대문갑) 예비후보 등이 접촉 대상이라고 한 고문 쪽은 전했다.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김덕규(서울 중랑을) 전 국회부의장도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당신네들의 함량 미달 심사로 60년 민주당의 역사가 풍전등화에 있다”고 공심위를 비판하며 “내 정치 역정과 양심, 신념이 과연 옳았는지 지역구민과 함께 고민하고 평가받을 것”이라고 무소속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
당선위주냐 당 쇄신이냐
그렇다면 민주당은 이 같은 공천심사결과에 대해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어떻게 잠재울까?.
우선 공천에 대한 원론적인 것에서부터 접근해야 한다. 당선위주냐 아니면 정치발전을 위한 당 쇄신이 우선이냐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당의 목적은 분명 집권과 다수당확보일 것이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신진세력의 등장은 상대적으로 어려워진다.
기득권이 가지고 있는 프리미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쇄신을 위해 신진세력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당선 가능성은 그 만큼 낮아진다. 이 같은 이유에서 민주당은 당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지금까지 3차에 걸쳐 실시한 공천결과에 나타난 문제점은 현역 의원의 탈락률이 낮고, 옛 민주당계를 배제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공천심사위원은 “수도권의 의원들은 18대에서 140여석에서 81석으로 줄어들 때 살아남은 경쟁력 있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서울 48개 지역구 중 7곳 등 수도권 111곳 가운데 민주당 현역은 29곳이다.
하지만 이들이 19대 총선에서도 가능할지 세심한 판단이 요구된다. 민주당계의 배제는 통합민주당으로 가는 과정에서 과거 노무현 세력들의 전면적인 등장으로 나온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두 번째 문제점은 소위 ‘쇄신공천’에 대한 의구심이다. 즉 현역의원들에 대한 물갈이를 어느 정도 할 것인가에 대한 점이다. 30%를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는데, 30%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인위적인 ‘숫자놀음’은 분명 역효과도 있을 수 있다. 물갈이 잣대인 초선 비율은 15대 때가 45.8%였고, 16대 40.6%, 17대 62.5% 그리고 18대가 44.8%였다. 물갈이가 혁신이면 17대가 가장 혁신적이었어야 한다. 하지만 노무현대통령 탄핵역풍으로 입성한 당시 여당의 초선들은 개혁을 내세웠지만, 의정활동과 재선에 대한 결과는 비참했다. 무조건 바꾼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치신인들이 설령 국회에 입성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자신들의 소신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소위 다선의원들의 ‘계파’나 ‘총알받이’역할은 처음부터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처음 공천단계부터 만들어 놓아야 한다.
세 번째 문제점은 아직도 민주당이 특정지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 정당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특정지역에 의존하는 지역성을 과감하게 탈피해야 한다. 지난 1일 한국일보가 14~18대 총선과 2010년 지방선거의 정당별 의석 점유율과 득표율 등을 분석한 결과 영·호남에서 ‘텃밭 정당’쏠림 투표현상이 점차 완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대·이념·계층별 투표 성향이 상대적으로 중요해지면서 2008년 18대 총선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지역주의가 더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MB정부 실정 따른 반사이익일 뿐”
민주통합당(14·16대 민주당, 15대 국민회의, 17대 열린우리당)의 호남 영향력도 ‘호남출신 대통령’을 배출하기 직전인 15대 총선에서 최고조에 달한 이후 다소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기반 정당의 의석점유율은 15대에서 97.3%를 기록한 이후, 16대(86.2%) 17·18대(각 80.6%)에서 약간 감소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호남권 기초단체장 41명 중 78%인 32명을 차지하는 등 텃밭 정당 점유율이 이전 총선 때보다 더 떨어졌다.
비록 지금까지 떨어지는 점유율의 수치는 적지만, 점차 늘어나는 젊은 층의 전면적인 부각이 이루어지면서 정치적인 판도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총선에서 수치변화의 폭은 훨씬 커질 것으로 보여 진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어온 공천발표는 이런 점들을 충분히 감안했는가?.
공천심사 결과에 대한 후보자들의 불만표출과 당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공천심사가 중단된 민주당은 안팎으로 심한 내홍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럴 때 솔로몬의 지혜는 필요하다.
민주통합당은 한명숙 대표가 “민주당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철규 공심위원장의 조언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강 위원장이 당 지도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자간담회를 한 직후 그와 오찬 회동을 갖고 공천심사 중단 사태 정상화를 위한 협조를 당부했다. 한 대표는 또 “더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고 약속한 뒤 “당 공심위가 공정한 원칙과 객관적 기준에 따라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했다고 생각한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도 했다.
지금까지 민주당의 공천결과에 대해 ‘정치세습’ ‘기득권 총선’ ‘정략공천’ 등 구태를 장식했던 용어들이 공천 뒤끝에 난무하고 있다. 한 당직자는 “강력한 구심점 없이 세력끼리 통합을 이뤘기 때문에 지도부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도부는 이 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선 전초전 의미를 갖는 이번 총선에서 대선주자들의 제 식구 몫 챙기기도 한창인데, 멀리 보는 대승적 마음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지나친 낙관론에 기댄 ‘오만함’은 절대 금물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민주당의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4.11 총선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당의 한 관계자는 “누구라도 나서면 배지는 단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민경선을 내세웠으면 신인들에게 최소한 경선에 나설 기회는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낙관론과 오만함은 야권연대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혼돈과 난국으로 표현되는 제1야당 통합민주당.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과 진정으로 집권을 위한다면 정도(正道)가 정답이다. 과거처럼 편법이 통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의 민도가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문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