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회장 차명재산 놓고 형제들 줄 소송 잇따라 제기
이숙희 “이맹희에 대한 삼성 대우 참을 수 없어 소송”
‘순환출자’ 그룹 지배구조, 삼성생명 지분 변화로 혼란?
“이건희 우호 세력 통해 경영권엔 영향 없다” 관측도
삼성家 상속재산 분쟁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둘째 누나인 이숙희씨가 뛰어들어 갈등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지난달 12일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씨가 동생인 이 회장을 상대로 상속재산 분할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같은 달 27일 이 창업주의 차녀인 이숙희씨가 소송전에 가세했다. 이번 소송이 이맹희씨를 시작으로 다른 형제로까지 번지자 재계에서는 법원이 이들의 손을 들어줄 경우 발생할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욱이 이들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화우’가 얻게 될 고액의 수임료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이번 삼성家 상속재산 분쟁의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씨에 이어 차녀 이숙희씨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차명재산 분할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 회장의 둘째 누나인 이숙희씨는 지난달 27일 “선대 회장의 유산으로 인정된 차명주식을 돌려달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삼성생명, 삼성전자 주식 인도 청구 소송을 냈다.
이숙희씨는 삼성생명 주식 223만주,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100주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소송의 가액은 1980억원대로, 이맹희가 제기한 7100억원 소송의 4분의 1규모다. 특히 이번 소송 역시 이맹희씨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화우’에서 맡았다.
이숙희씨는 지난달 28일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오빠 이맹희에 대한 삼성 측의 부당한 대우를 참을 수 없어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이 (오빠가) 무능하기 때문에 재산도 못준다는 식으로 몰고갔다”며 소송 배경을 밝혔다.
이어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상속 문제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면서 “그 전까지는 삼성생명 차명재산을 몰랐고, 알고 나서도 고민하다 오빠가 먼저 소송을 낸뒤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성그룹 관계자는 “민사 소송이라 회사가 개입할 부분이 아니다”며 “상속재산 문제는 1987년 선대회장 타계 당시 마무리 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삼성가 전체로 번지나
장남 이맹희씨에 이어 차녀 이숙희씨까지 이번 소송에 가세하자 차명재산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삼성 일가 전체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한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지배구조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재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법원이 이번 소송에서 이맹희씨 등 다른 형제들의 손을 들어준다면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진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이 회장과 자녀 등 일가가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46.03% 가지고 있으며, 이 회장과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를, 삼성전자는 삼성카드를 지배하는 순환출자 구조다. 사실상 삼성에버랜드가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삼성에버랜드 최대 주주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만약 이맹희씨와 이숙희씨가 승소해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을 받아낸다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재 삼성생명은 이 회장이 20.76%의 지분으로 최대주주에 있고, 삼성에버랜드가 19.34%로 2대 주주다.
여기서 이 회장이 소송에서 패소해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지분을 다른 상속인들에게 나눠줄 경우, 이 회장의 지분이 10.55%로 낮아져 삼성생명의 2대 주주로 내려서게 되고 삼성에버랜드가 최대주주가 된다.
공정거래법과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삼성생명 최대주주가 법인이 되면 그 법인회사는 금융지주회사가 되고 아래 계열금융회사는 제조업체의 지분을 4%이상 보유할 수 없다. 때문에 삼성생명은 보유하고 있던 삼성전자 지분 7.21%를 4%미만으로 낮춰야 한다.
또한 실제로 이맹희씨와 이숙희씨가 승소해 차명재산을 재분할할 경우 이 회장과 삼성계열사는 삼성생명 지분 14.3%, 이맹희씨와 CJ계열사는 13.98%, 이명희 회장과 신세계 계열사는 11.07%, 이숙희씨는 2.29%로 변경된다. 이맹희씨와 이숙희씨 지분만 모아도 16.27%로 가장 많아진다. 또한 이명희 신세계회장까지 소송에 가세해 승소한다면 삼성생명 지분 11.07%에서 13.36%까지 늘릴 수 있다.
“그룹 경영권엔 영향 없다” 관측도
그러나 이런 추측들은 이 회장의 ‘우호 지분’이라는 변수를 간과한 측면이다. 삼성생명 지분은 이 회장이 20.76%, 삼성에버랜드가 19.34% 갖고 있는 것 외에도 삼성문화재단이 4.68%, 삼성생명공익재단이 4.68%로 뒤를 잇는다. 또한 CJ측이 3.5%(제일제당 3%, CJ오쇼핑 0.5%), 신세계측이 11.07%(신세계 3.69%, 이마트 7.38%)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이 회장이 우호 세력인 삼성에버랜드, 삼성문화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지분 중 일부를 블록세일 형태로 사들이는 방식으로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줄이고 최대주주자리만 유지한다면 그룹 지배구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회장이 그만한 돈을 조달하지 못해 결국 삼성에버랜드가 지주회사가 되고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4%미만으로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4%미만으로 떨어뜨려도 그룹의 경영권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삼성생명이 지분 7.21%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고 그 다음으로는 삼성물산 4.06%, 삼성화재 1.26%, 이 회장·홍라희·이재용·삼성문화재단·삼성복지재단 등 우호세력이 17.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분 보유는 17.56%지만, 현행법상 의결권 행사는 15%까지 밖에 못하기 때문에 2.56%는 초과 지분인 셈이고, 때문에 삼성생명 지분을 4%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 3.21%를 팔더라도 이 회장 일가나 우호 세력이 0.65%만 매수하면 이 회장의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법무법인 ‘화우’ 고액수임료 예상
더욱이 재계에서는 이번 소송이 재판 끝까지 지속돼 결론이 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삼성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적절한 단계에서 합의를 할 것이고, 이를 위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상 민사소송의 경우 합의금이 소송 가액의 30~50%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맹희, 이숙희씨가 낸 소송액 총 9000억원 가운데 4000억원 정도는 지불될 수 있을 것이고, 이 경우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화우의 수임료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민사 소송에서 담당한 로펌이 받는 수임료는 소송가액의 1~2% 정도이며, 이를 토대로 이번 소송에서 화우가 받게 될 수임료는 최소 90억원에서 최고 180억원 정도일 것으로 법조계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더욱이 삼성전자 차명주식 등의 소송이 추가로 이어지고 다른 형제들의 소송이 추가되면 화우가 받을 수임료의 규모는 천정부지로 오를 전망이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을 상대로 한 소송은 다른 로펌에서도 맡기 어렵기 때문에 화우가 통상 받는 수임료보다 더 높게 받기로 했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내놨다.
그러나 화우측은 일각에서 제기된 의혹과 관련, “수임료는 통상적인 수준보다 더 낮은 정도”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찌됐건 이번 소송에서 지더라도 과거 여러 차례 삼성그룹과 관련된 사건을 맡은 바 있는 화우로서는 밑지는 일이 아니라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다른 로펌이 하지 못할 일을 마무리만 잘해도 화우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우는 지난 2005년 삼성자동차 14개 채권단을 대신해 4조7000억대의 집단소송을 제기, 지난해 1월 일부 승소해 삼성이 채권단에 6000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내용의 판결을 받았다.
또한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산재처리 문제에서도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이끌어 낸 바 있다.
한편 재계에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남인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 유족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이번 형제간 유산상속 분쟁의 파장은 일파만파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은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