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 판매업체인 하이마트 선종구 회장(65) 일가의 재산 해외도피 및 불법증여, 탈세 비리 등의 의혹이 불거지면서 본격적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선 회장이 네덜란드와 룩세부르크 등 유럽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회사 자금과 개인 자산 등 1000억원대의 돈을 몰래 빼돌려 자녀들에게 불법 증여한 것으로 파악해 전모를 밝혀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선 회장과 자녀들을 차례로 소환조사함으로써 사건 정황이 드러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재벌그룹은 조세피난처를 통해 역외 탈세해 상당한 이득을 취득, 심심치 않게 사회의 화두로 떠올라 문제로 대두됐다. 이번 하이마트 사건을 통해 재벌들의 역외 탈세 정황을 들여다봤다.
검찰, 선 회장 해외에 페이퍼컴퍼니 이용 1000억원 송금 의혹
선 회장 자녀들 대주주 회사 ‘압수수색-계좌추적’ 수사 박차
전문가, “하이마트 상장폐지까지는 아니다” 의견 내놔
국내 30대 그룹 조세피난처 해외 법인 갈수록 늘어 ‘문제’
하이마트가 경영권 분쟁에 이어 2대 주주인 선종구 회장 측의 비리 의혹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검찰은 선 회장이 1000억원대의 회사자금과 개인 재산을 해외로 송금한 뒤 자녀들에게 불법 증여해 거액의 조세를 포탈한 것으로 보고 자금흐름을 추적하는데 가속도를 붙였다.
선 회장 불법증여·역외 탈세 수사
검찰은 선 회장이 조세피난처인 네덜란드와 룩세부르크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에 입금, 세탁한 정황을 확보했고, 그 자금이 돈세탁을 거쳐 선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골프장과 함께 아들, 딸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로 흘러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불법증여와 역외 탈세가 이뤄졌을 거라는 의혹이다.
역외 탈세란 외국에 있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거나 역외 은행들을 이용해서 돈을 빼돌려서 탈세하는 방법이다.
이에 검찰은 지난 25일과 26일 서울 대치동 하이마트 본사와 선 회장의 타워팰리스 자택, 자녀들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 등 6~7곳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선 회장의 아들 현석씨가 대표로 있는 HM투어와 딸 수연씨가 2대 주주인 광고대행 협력사 커뮤니케이션윌이 포함됐다.
또한 지난 27일 검찰은 아들 현석씨가 대주주로 있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소재 투자전문회사 IAB홀딩스 회사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했다. 재무본부장을 맡고 있는 양모 부사장을 비롯, 하이마트 재무담당 임직원들을 불러 선 회장 일가의 혐의와 관련된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현석 씨는 본인 자금과 IAB홀딩스를 통해 지난 2010년 말 하이마트 지분 5.26%를 사들였고 2011년 9월 말 현재 IAB홀딩스의 하이마트 지분율은 2.54%에 달한다.
이같은 조사는 선 회장이 해외로 빼돌린 자금이 국내로 들어와 이들 회사에 유입됐는지를 캐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지난 28일엔 선 회장과 자녀들의 금융계좌에 대해 영장을 발부받아 본격적으로 자금 추적에 착수했다. 검찰은 △확보한 물품과 서류 분석 △관련자 조사에서 나온 진술 △계좌추적에 따라 사건 전모를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이마트는 “향후 검찰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며 “아울러서 임직원들이 동요 없이 고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상장폐지로 이어질까?
지난 한화가 경영진 리스크로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올라 심사를 받았던 것처럼 하이마트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장폐지 여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에 따르면 대규모 법인의 경우 자기자본의 2.5% 이상에 해당하는 임직원 등의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하거나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공시를 해야 한다. 특히 2.5% 이상의 횡령·배임 사실에 대한 공시가 있거나 검찰기소가 있는 경우 거래소의 상장폐지에 대한 실질심사 대상이 된다.
하이마트는 자기자본 2조원 이상의 대규모 법인으로 규정에 따라 350억원이상의 횡령이 발생하면 상장폐지 실질심사대상이 된다. 하지만 하이마트가 횡령액을 되찾지 못하더라도 향후 회사의 영업을 지속하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에 하이마트의 상장폐지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거래소에 따르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 여부를 평가할 때 크게 영업의 지속성, 재무구조 안정성, 경영 투명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따라서 경영진의 배임 횡령만으로는 상장폐지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하이마트 홍보팀 관계자는 “여론에서 보도했듯이 하이마트가 상장폐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 “이쪽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의논해 보지 않았다”고 표명했다.
국내 30대 그룹
조세피난처 해외법인 해마다 증가
이번 선 회장이 회사 자금과 개인 자산 등 1000억원대의 돈을 몰래 빼돌리기 위해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정황이 드러나자 조세피난처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조세피난처란 법인의 실제 발생소득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이다. 즉 법인세·개인소득세에 대해 전혀 원천징수를 하지 않거나 과세를 하더라도 아주 적은 세금을 적용함으로써 세제상의 특혜를 부여하는 장소를 가리킨다.
조세피난처는 세제상의 우대뿐 아니라 외국환관리법·회사법 등의 규제가 적고 기업경영상의 장애요인이 거의 없음은 물론 모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기 때문에 탈세와 돈세탁용 자금 거래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조세피난처를 통해 국내에 들어오는 자금은 대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며 △조세피난처에 미리 예치해 놓았던 자금이 유입 △국내 자금이 조세피난처를 우회하면서 외국인 자금으로 둔갑해 국내로 다시 유입 △조세 피난처를 통해 돈세탁한 자금이 선거철을 전후해 국내로 유입되는 경우가 있다.
조세피난처로는 ▲바하마, 버뮤다, 케이맨제도 등과 같이 소득세를 물리지 않고 조세조약을 체결하지 않는 면세국 ▲홍콩, 라이베리아, 파나마 등의 국외 소득에 비과세하거나 저율 과세하는 세금피난처 ▲스위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특정 기업이나 사업 활동에 세제상 우대조치를 인정하는 세금휴양소 ▲앤틸제도, 버진제도, 바레인 모나코 등 세율이 낮고 배당에 원천과제가 없는 조세피난처로 나눈다.
조세피난처는 세계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켜 2000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중심으로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재벌그룹이 조세피난처에 해외법인을 대거 늘려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재벌닷컴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총수가 있는 30대 그룹의 해외법인 현황은 지난해 5월말 1942개로 2010년 5월말 1812개보다 7.2%늘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와 조세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나라에 소재한 기업 수는 2011년 167개로 2010년 141개에서 26개나 늘었다. 이에 조세피난처에 가장 많은 법인을 가지고 있는 재벌은 롯데-삼성-LG-SK순으로 특히 롯데그룹은 33개로 2010년보다 4개가 늘었다.
이어 삼성은 지난해 조세조약 체결을 앞둔 홍콩을 포함해 2010년 보다 7개 늘어난 30개에 달했고 LG그룹은 2011년 21개로 2010년 보다 8개 늘어나 30대 그룹 중 가장 법인 회사 수를 많이 늘렸다. SK 20개, 동양그룹 7개, 한화그룹, STX그룹과 한진그룹 각각 5개, GS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각각 4개, OCI그룹과 금호, 두산, 한진중공업, 대한전선그룹 각각 3개의 법인을 조세피난처에 두고 있다.
지난해 재벌닷컴이 이같은 통계를 공개하자 당시 해당 그룹은 해외 법인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정상적인 외국활동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과세를 비롯한 영업정보 노출 위험이 없는 국가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역외탈세’로 악용한다면 이는 선 회장과 같은 비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문제로 대두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풀이다.
페이퍼컴퍼니는 물리적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로 실질적으로는 자회사를 통해 영업활동을 하게 된다. 또한 법적으로는 엄연히 자격을 갖추고 있어 유령회사와는 다르다.
이에 따라 역외탈세는 심각한 국부유출로서 OECD및 G20정상회의 등 정보교환 확대를 통한 역외탈세를 방지하려는 노력이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서 국세청에서는 지난해 4월 보도자료를 통해 “1/4분기 역외탈세 조사결과 4741억원 추징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역외탈세 행위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추적해 과세하고 조세범처벌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등 역외 탈세 차단에 세정역량을 지불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최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