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무현 전 대통령 딸, 검찰수사 ‘파장’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딸, 검찰수사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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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됐던 ‘판도라 상자’ 또…

미국 아파트 매입 둘러싼 ‘의혹’ 또다시 수면 위로…
일부 보수단체 “100만 달러 의혹 해명” 촉구

민주당 “의도된 각본대로 수사진행 의심” 주장
총선 앞둔 수사 놓고 정치권 대립 ‘팽팽’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는 지난 25일 외환거래법 위반혐의로 외제차 수입상인 은모씨(54)를 체포했다. 은모씨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인 노정연씨(37)로부터 100만 달러(한화 13억원)을 받아 경연희씨(43)에게 송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번 수사로 정연씨의 미국 아파트 매입, 나아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둘러싼 의혹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2009년 검찰이 내사 종결을 결정한 사건의 재수사 조짐이 보이고 있는 가운데 본지에서는 이번 수사를 둘러싼 몇가지 쟁점들을 짚어봤다.

#1 새로운 진술

정연씨의 미국 아파트 매입을 둘러싼 의혹이 재점화된 것은 한 매체의 보도 때문이었다. 지난 1월15일 한 매체는 정연씨가 경씨에게 100만 달러를 전달하는 과정에 관여했다고 주장하는 이균호와 그의 형 이달호씨의 인터뷰를 실었다. 특히 이달호씨는 미국 폭스우즈 카지노에서 매니저로 근무했던 인물로 경씨가 당시 단골손님이었다고 말했다.
이균호씨에 따르면, 그는 경씨가 소개한 사람과 비닐하우스가 있는 길가에서 1만원권으로 가득 찬 상자 7개(13억원)를 싣고 왔고, 이후 경씨의 지시로 두 차례에 걸쳐 은모씨에게 이 돈을 건넸다. 그는 당시 거액이 담긴 돈 상자를 찍었다며 사진도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매체는 이달호씨가 지난 2010년 《SECRET OF KOREA》(시크릿 오브 코리아)의 자유게시판에 ‘고다리’라는 필명으로 “경씨가 천만 달러가 넘는 돈을 밀반출했고, 그 중 일부는 정연씨와 관련돼있다”는 글을 기재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달호씨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전부터 경씨와 정연씨의 관계는 알고 있었다”며 경씨는 자신(이달호씨)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정연씨에게 전화를 몇 번 걸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날에도 정연씨의 이름이 여러번 언급됐다”며 경씨의 통화상대가 정연씨가 맞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달호씨는 “그날도 경씨가 정연씨에게 100만 달러를 보내라는 내용의 전화를 했다”며 “경씨가 170만 달러에 샀던 아파트를 정연씨에게 240만 달러에 되팔아 약 70만 달러를 남겼다고 본다”고 추측했다.

#2 불거진 '의혹'

이 매체의 보도가 있고 난 후 지난 1월26일 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13억원 돈 상자’ 사건(100만 달러 밀반출)을 의뢰했다. 이날 국민행동본부는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밀반출된 100만 달러가 정연씨로부터 나왔다는 관련자들의 주장이 있다”며 “100만 달러가 정연씨의 돈이 맞다면 자금 출처에 중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밀반출 건은 새로운 혐의이므로 새롭게 수사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2월17일에는 새누리당 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가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씨 형제의 입장을 최초 보도한 매체의 기사를 언급하며 “정연씨가 먼저 해명을 해야 하며 검찰도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 부대표는 지난 2월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정연씨의 미국 주택구입 자금과 권양숙 여사가 미국으로 가지고 갔다는 100만 달러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한다”며 거듭 강조했다.
‘100만 달러’의 출처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는 가운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 2월25일 은모씨를 외환관리법위반 혐의로 체포해 조사했다. 이는 한 매체를 통해 보도된 후 은모씨 체포 수사가 이어지면서, 정연씨의 미국 아파트 매입 과정에 대한 의혹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명숙 대표는 “3년 전 종결된 사건을 보수언론이 기사화하고, 보수단체가 의뢰해 검찰이 즉각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각본이 의도된 수사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3 노 전 대통령 일가 재수사?

이번 수사가 검찰의 노 전 대통령 일가를 재수사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에서 이미 내사 종결한 사건인데 이제와 수사에 착수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의뢰가 있어 통상적인 방법에 따라 진행하는 수사일 뿐”라며 “2009년 당시 수사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새로운 사건”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검찰이 은씨를 조사하고 이틀 뒤인 지난 2월27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입원 중인 병원을 찾아 이번 ‘13억원 돈 상자’ 의혹에 대해 조사한 것이 드러났다. 이에 ‘새로운 사건’이라고 강조한 검찰의 기존 설명과는 사실상 배치되는 행보 아니냐는 논란도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과 관련된 수사를 종결한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입장도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균호씨를 돈 상자가 있는 곳으로 데려간 사람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의 출처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누구로부터 13억원의 돈 상자를 받았는지 알아내야 하는데, 현재 남자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정연씨에게서 돈이 나왔다고 단정 짓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번 수사가 이씨 형제의 진술을 기반으로 진행됐다는 점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법조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경씨의 주장이 확실히 나오지 않는 한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지 않겠냐”면서 “자세한 것을 나오기 전에 정연씨를 이 혐의에 결부시켜 매도하기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더군다나 미국 시민권자인 경씨가 검찰의 소환 요구에 응할지 알 수 없어 수사의 한계가 보인다는 지적과 검찰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이라는 점에서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4 친盧 죽이기?

이번 검찰의 수사를 놓고 정치권의 대립도 팽팽하다. 민주통합당 'MB정권비리 및 불법비자금진상조사특별위원회'는 지난 2월27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2009년 검찰은 정연씨의 해외부동산 매입 사건에 대한 내사를 종결했다고 발표했다”며 “검찰이 총선을 앞둔 지금 이를 다시 꺼내는 것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부관참시’이자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이종혁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월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앞서 매체들이 보도한 내용을 기반으로 정연씨의 미국 아파트 구입 의혹을 제기하며 친노 세력들에 대한 심판을 촉구했다.
이 의원은 “민주통합당은 낡고 썩은 친노 세력들을 공천해 19대 총선 전면에 내세웠다”면서 “노무현 비자금 관련자들이 총선 공천자로 확정됐다면 이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바른 정치와 국가의 법익 수호를 위해 (수사기록 공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개인으로서의 주장이라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최근 야권의 대권주자로 떠오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견제하는 등 친노 세력에 정치적 타격을 입히기 위해 취한 행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4·11 총선을 40여일 앞두고 노 전 대통령 일가에 관련된 수사가 이뤄진 것에 대해 야권 인사들의 반발은 거세다. 명백한 ‘표적수사’라는 것이다.
천호선 진보통합당 대변인은 지난 2월2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스스로 종결한 수사를 다시 재개한 것 자체가 이율배반”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정치 공작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기가 매우 어렵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2월29일 민주통합당 지도부에서도 검찰의 수사 착수에 관련해 비판이 쏟아졌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정연씨에 대한 느닷없는 수사는 국민의 심판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 정권의 치졸하고 비열한 선거개입”이라고 말했고, 문성근 최고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수사를 재개했는데, 내사 종결한 사건을 느닷없이 재개하는 것은 인륜을 저버린 패륜”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정연씨의 남편 곽성언 변호사는 지난 3월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내가 이 정도로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이 사건에서 인간의 용렬함, 그리고 잔인함을 본다"며 최근 불거진 일련의 의혹에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기도 했다.
검찰의 수사시점을 놓고 의혹이 증폭된 가운데 이번 사건이 미칠 파장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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