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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가 자랑하는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1879년 초연)은 근대극 시발점인 동시에 여성해방 운동의 불을 댕긴 작품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자신은 그저 인형 같은 놀이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주인공 노라. 남편에게 당당히 '독립'을 선언한 후 문을 열고 가출하는 마지막 장면은 당시 연극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로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21세기의 노라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또 가출이라는 설정만으로도 충격을 안겼던 초연 때에 비해 현대의 노라는 어떤 결말을 선택하게 될까.
초연 이래 수없이 공연된 '인형의 집'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결말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이 바로 토마스 오스터마이어(37) 연출의 '인형의 집-노라'다.독일 실험극의 산실로 불리는 베를린 샤우뷔네에서 2003년 초연된 최근작. 초연 후 베를린 연극제, 아비뇽 페스티벌, 런던 바비칸 센터, 브루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BAM) 등 세계 유명 축제와 공연장에 앞다퉈 초청받았다.
이 작품을 서울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다음달 8-10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에서 베를린 샤우뷔네 배우들이 직접 내한해 독일어로(한글자막) 공연한다.
주인공 노라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여성이다. 남편 헬머는 은행의 중역으로 출세했고, 이들의 집안은 남부러울 것 없이 평온하고 부유해보인다.
하지만 어느날 노라가 남편을 위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이 드러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명예가 실추될 것이 두려워 아내를 비난하다가 일이 해결되자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남편을 보면서 노라는 자신이 그저 인형 같은 존재였을 뿐이라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오스터마이어 판 '인형의 집-노라'에서 노라 부부는 현대의 보보스 족으로 변신했다. 이 부부가 사는 집은 디자이너 브랜드 가구들로 꾸며진 세련된 아파트. 노라 역시 훨씬 강하고 섹시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오스터마이어는 유럽 연극의 미래를 쥔 차세대 연출가로 떠받들여지고 있는 인물이다.
1999년 갓 서른을 넘긴 나이에 베를린 샤우뷔네의 연극 파트 예술감독으로 임명됐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의 연극제인 아비뇽 페스티벌의 객원 디렉터로 활약했다.
샤우뷔네는 오스터마이어 영입 후 영화관 등으로 발길을 돌린 젊은 관객을 다시 끌어 모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평. 이같은 성과로 지난 1월엔 그의 예술감독직 임기를 2009년까지 연장했다.
이번 공연에서 주인공 노라 역을 맡은 안네 티스머의 연기도 기대를 모은다. 2001년부터 샤우뷔네 단원으로 활동 중인 티스머는 이 역으로 권위있는 연극지 '테아터 호이테'에서 '올해의 여배우'로 선정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LG아트센터가 당초 지난 3월로 예정했던 이 공연을 6월로 옮긴 것도 티스머의 갑작스런 부상 때문이었다.
3만-7만원.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