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보자 매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특혜 인사 논란이 점점 거세게 확산되고 있다. 논란이 일자 곽 교육감은 7급 비서실 직원 5명을 6급으로 올린다는 당초 계획을 철회하고, 이번 논란이 ’3월-새학기’라는 시점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공립교사 특별채용 및 비서진 승진·확대 파문
특별채용 놓고 교과부와 갈등…소송전도 불사
“교육감 막강한 인사권, 견제장치 미약” 의견
“교육감 견제하는 교육의원 역할 강화 필요”
최근의 인사논란 시작은 공립교사 3명 특별채용과 비서진 승진 및 확대였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1일 서울교육청에 파견 나온 평교사를 7명에서 15명으로 늘렸다. 자신의 주요 공약인 혁신학교·문화예술체육교육·비폭력평화교육 관련 업무를 맡기기 위해서다. 이 중 13명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이며 특히 6명은 지난해 곽 교육감 구속 당시 그를 위해 구명운동을 벌였다.
전교조, “정치적 탄압”
교과부는 지난 2일 서울시교육청이 공립교사로 특별 채용한 3명에 대한 임용 취소를 통보해 즉시 공립교사로서 자격을 잃게 됐다. 곽 교육감 인사를 두고 이런 조치를 취한 교육과학기술부와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에 시교육청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부당한 처분이라며 법원에 제소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곽노현 교육감은 추가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를 포함해 총 15명을 핵심 부서에 배치해 맞불을 놓았다.
전교조도 이날 문제의 교사 3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특채가 상식과 관례에서 벗어나지 않는데도 서울교육감 인사권을 흔들어 정책 실현을 방해하고 소란을 일으켜 진보교육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하려는 정치적 탄압”이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곽 교육감은 기존에 파견됐던 교사 7명에 대한 파견 기간을 연장한 데 이어 또다시 전교조 소속을 포함한 교사 8명을 추가로 교육청 핵심부서에 파견 조치했다.
이들은 2일부터 책임교육과, 학교혁신과 등에 배치됐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파견은 교육감 권한이라 전문직 인사 등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지는 않고 공문 형식으로 조치한다”며 “2월 29일께 공문이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감의 인사권 견제”
교과부 측은 “곽 교육감이 특별채용 근거로 삼은 교육공무원법을 검토한 결과 근무실적 3년 이상인 사람을 특별채용할 때도 신규 채용 교사와 똑같이 공개전형, 기회균등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해 임용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파견 교사 확대는 ‘현장 교사의 부족을 감안, 파견 교사를 최소화하라’는 교과부 지침에 어긋난다. 교과부 관계자는 그러나 “인사권은 기본적으론 교육감 권한이라 지침을 어긴다고 해도 이를 시정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시·도 교육감의 인사권은 막강하다. 곽 교육감의 경우 공립 초·중등학교 교장 등 교원 5만2000명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다. 또한 교육청, 11개 지역교육청, 평생학습관·도서관 등 산하기관의 인사권도 행사한다.
전문가들은 시·도 교육감의 인사권은 막강하지만, 견제 장치는 미약하다고 지적한다. 교육감과 같은 선출직인 시·도지사의 경우 수평적으론 의회, 수직적으론 시·군·구의 견제를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반면 교육감은 의회의 견제가 약하고 지역교육청은 사실상 교육감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양정호 성균관대(교육학) 교수는 “현재는 감사원 감사 청구,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한 진정, 주민소환제 외엔 교육감의 인사권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비서진 승진 및 확대 비판
비서진 승진 및 확대도 문제가 되고 있다. 곽 교육감은 비서실 11명 직원 중 자신이 데려온 7급 5명을 6급으로 올릴 예정이었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철회했다.
하지만 외부에서 5급 계약직 2명을 추가로 고용하는 등 비서진을 더 확대한다는 방침은 철회하지 않았다. 사실상 곽 교육감은 새 비서실장과 정책보좌관을 일용직 신분으로 뽑아 2일부터 출근하게 하고 있다.
이번에 5급으로 채용된 정광필 비서실장은 전 이우학교장으로 곽 교육감의 핵심 공약인 ‘서울혁신학교’ 자문위원을 맡은 바 있다. 안승문 정책총괄보좌관은 교육희망네트워크 정책위원장 출신으로 곽 교육감 취임준비위원회 위원을 맡기도 했다.
정식 채용(비서관·5급)에 한 달 가까이 걸리는 것을 피하려고 이 같이 채용한 것이다. 교과부의 담당 과장은 “위법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지만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현대판 교육 엽관주의, 자기 사람 심기로 교육 현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며 “교육감을 견제하는 교육의원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사원, 교육청 감사
이와 관련 감사원이 올해 상반기에 전국 시·도 교육청을 감사하기로 한 것은 곽 교육감식의 인사 전횡 때문이다. 교육감 직선제는 2007년 부산을 시작으로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선 전국으로 확대됐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지난 6일 감사 방침과 관련해 “서울시교육청뿐 아니라 인사 논란이 불거진 다른 시·도교육청 모두가 대상”이라며 “인사를 포함해 각 교육청의 행정 전반을 감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감사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한국교총의 감사 청구와는 별도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매년 어떤 부문에 대한 감사를 실시할지 연례계획을 세우는데, 그 안에 이미 포함돼 있던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감사원은 4·11 총선과 연계돼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감사 착수 시기를 선거 이후로 잡는 것을 검토 중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다른 교육 부문 감사 과정에서 민선 교육감의 인사 등 행정 부문에 대한 문제점을 다수 포착했다”고 말했다.
교총은 감사원에 곽 교육감의 최근 인사 조치에 대한 감사를 요청하는 ‘공익사안에 대한 감사청구서’를 제출했다. 교총은 “원칙에 어긋난 파견근무, 특채 등의 인사권 남용으로 학교 현장의 혼란과 행정력 낭비가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원단체가 교육청을 상대로 감사를 청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엔 이메일 검열?
이에 앞서 곽 교육감 측은 편법 인사를 규탄하는 노조위원장의 이메일 발송 기능을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차단, “내부 직원들의 언로(言路)를 막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어 지난 5일 곽 교육감은 비서실에 근무하는 측근 5명을 특진시키려는 것을 비판한 서울시교육청 일반직공무원노조 위원장의 이메일을 검열해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점희 시교육청 일반직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지난 4일 오후 10시쯤 노조원과 비(非)노조원이 섞인 일반직 공무원 3000여명에게 “곽 교육감은 노조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 위원장이 업무관리시스템(내부통신망)을 통해 보낸 이메일에는 ‘비서실 부당인사 철회 및 노조 탄압 중단 촉구 서명지’와 ‘노조를 탄압하는 송병춘 감사관은 사퇴하라’는 성명서, 노조 가입 및 후원 신청서가 첨부됐다.
시교육청은 이튿날 직원 출근 시각 직전인 5일 오전 8시 50분쯤 전산 시스템을 조작해 이 위원장의 이메일을 통째로 삭제, 직원들이 이메일을 볼 수 없게 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직원들의 이메일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이 위원장이 ‘비노조원에게는 이메일을 보내지 말라’는 내부 규정을 어긴 사실이 드러나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비노조원뿐 아니라 노조원들이 받은 이메일까지 일괄 삭제됐다.
일반직공무원노조는 시교육청을 고용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위원장은 “지금까지 업무관리시스템은 직원들의 경조사를 알리는 등 사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유독 교육감 비판에 대해서만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은 노조 탄압이다”이라며 “곽노현 교육감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이행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