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환영회, 동문회, 향후회 등 모임 “많다 많아”
대학생 음주사망 사고, 해마다 2~3명 목숨 앗아가
전문가들, “자기 주량 모르는 음주가 불행 불러 와”
대학생 음주문화 조사 결과, 응답자 71.2% ‘폭음자’
새 학기를 맞이한 캠퍼스의 풍경이 아름답다. 아직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 학생들은 맘껏 멋을 내기보단 따뜻함을 선택하여 옷차림에선 봄을 찾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새 학기는 교정 여기저기서 쉽게 보이고, 느낄 수 있었다. 신입생 환영회, 동아리 회원모집, 고등학교 동문회, 향우회 등 모임을 가질 수 있는 모든 조직들의 ‘알리기’ 행사가 줄을 잇고 있었다. 곳곳에 모여 있는 학생들은 서로서로가 인사나누기에 바쁘게 보였고, 즐거움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 과 새내긴데, 수업 끝나고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처음인데 술 한 잔 해야겠죠”라며 약속을 정하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새내기들의 모습에서도 선배들의 제안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막상 지방에서 올라와 아는 사람도 없는데, 선배들이 불러주니 기분이 좋네요”라며 “술마시는 것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대학생인데요”라고 말하는 김희주(19세, Y대 경영학과)학생.
대학가는 지금 음주 중?
옆에 있던 같은 학부 박미연 학생은 스스로 재수했음을 밝히더니 “많이는 못하지만 남들만큼은 마셔요. 재수할 때 힘들면 가끔 생맥주를 마셨죠”라면서 “필름이 끊어질 때(black out)도 있었지만 괜찮아요”라고 당당하게 거들었다.
외모는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처럼 보였는데, 대학생이라는 표현으로 그들이 술을 마시는 행동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실제로 김 양은 법적으로 아직 미성년자여서 술을 마시면 안 되는 나이였다.
늦은 오후 신촌에 있는 대학가 주변을 다시 찾았다. 아직 ‘술 시간’이라 일컬어지는 시간이 안되었음에도 여기저기 비틀거리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가방을 둘러메고 얼굴이 아직 앳된 것을 보니 대학신입생들인 것 같았다. 인터뷰를 위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학생들은 이미 취해 있었다.
대학생의 음주사망 사고로 해마다 2-3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이 숫자는 MT, 신입생환영회 등 공식적인 행사에서 발생한 사건의 수로 실제 사적인 술자리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질 것이다.
물론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 나무랄 일은 아니다. 성인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책임을 지닌 자들이기 때문에 음주 그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순 없다. 그렇다면 왜 이들의 음주에 대해 기사를 쓰려고 하는가? 바로 이들 특히 신입생들은 아직도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이라는 점과 경제적 부담이 의외로 크다는 점 때문이다.
평소 술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체질한의원 조강제 원장(한의학 박사)은 “술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술도 음식이거든요”라고 말을 꺼낸 뒤 “지나치지만 않으면 우리 몸에서 술은 거의 다 해독하고 걸러내죠.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술이 들어오면 몸에서 받아들이기에 과부하가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문제가 발생합니다”라고 문제제기를 했다.
“우리 몸은 25세 전후까지 성장합니다. 그런 성장기에 좋은 영양소가 아닌 독을 준다고 생각해봐요. 몸이 제대로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마신다면 자칫 생명도 위협할 수 있습니다”라고 과음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대학생들의 음주행태를 보면 흔히 말하는 ‘자기주량’을 모르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아직 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이 보다 더 큰 이유는 순간적인 기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강요에 의한 음주, 변해야
미래내과 김종호 원장(내과전문의, 의학박사)은 “성장기에 술을 마시면 가장 영향을 받는 장기(臟器)는 역시 간입니다. 물론 어른들에게도 술은 간에 심한 영향을 주는데,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에게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죠”라고 말하면서 “부득이 술을 마실 경우라면 안주를 충분히 먹어주고, 중간에 물을 같이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몸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조금씩 마시고, 한번 마시면 3일 이상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며칠 전 한 학생이 학과OT에서 과음으로 거의 실신 상태로 병원에 실려와 곧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 조치했는데, 위장세척을 했을겁니다”라고 말하면서, “강요에 의한 술 권하는 우리 문화가 이젠 변해야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조 원장도 “성장기에 있는 대학생들에게 굳이 권한다면 화학주나 독한 술보다 생맥주나 곡주(穀酒)를 마시는 것이 그나마 괜찮다”며 “술의 양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 만큼 간이 망가지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위험성을 강조했다.
지난 해 아르바이트 포털사이트인 ‘알바몬’이 433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술을 마시고 기억이 나지 않는 ‘블랙아웃’(필름이 끊겼다)증상을 경험해봤냐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대학생들이 ‘있다’고 대답했고 ‘술을 마실 때마다 그렇다’고 답한 학생도 2%나 됐습니다. 또 소주기준 한 번에 마시는 양은 평균 11잔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정도 음주량은 고위험 음주율에 해당하며 성인기준 적정음주량을 세배 이상 넘긴 수치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대학가 음주문화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대학생 음주실태’ 보고서를 보면 ‘한 달 동안 술을 6회 이상 마신다’고 응답한 학생 비율은 2001년 47.9%에서 2009년 28.2%로 줄었고, ‘한 달 5회 이하로 마신다’는 비율은 52.1%에서 71.8%로 늘어났다.
음주문화 바뀌기는 했지만
8년 사이 사회 전반적으로 음주문화가 바뀌기도 했지만, 학생들은 취업준비와 학점관리, 아르바이트 때문에 술 마실 형편이 안되는 게 주된 원인이라고 보았다. 취업 준비 중인 모대학 행정학과 김현우(24)씨는 “복학하고 취업준비를 하다 보니 술을 마시면 그 다음날 리듬이 깨져 공부에 방해가 되니까 술자리는 가급적 자제한다”고 말했다. 신촌의 고시원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고광철(27)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께 용돈 타는 입장에서 남의 눈도 있고, 내 자신이 스스로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술을 마시지 않을 뿐이지 졸업이나 취업에 대한 부담감이 덜한 신입생이나 저학년에서는 음주가 아직도 심한 것은 사실이다.
대학생들의 음주량이 그나마 줄어든 이유 중 또 하나는 경제적 어려움도 한 몫하고 있다. 대학의 신입생들이 입학하자마자 떠 앉아야 할 부담은 바로 1년에 1,000만원에 가까운 등록금이다. 그나마 서울에 집이 있는 경우는 덜 하지만 지방에서 올라올 경우 경제적 비용은 대학생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다. 기숙사생활을 못할 경우 방값과 식비 그리고 책값과 용돈을 합하면 1달에 최소 100만원 이상이 들고 있다.
취업포털 사이트인 ‘인크루트’가 대학생 5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42.7%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며, 이들은 일주일에 평균 4일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높은 물가와 등록금으로 인해 아르바이트 현장으로 내몰린 대학생들의 상당수가 스스로를 ‘생계형’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홍익대 근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최 모(25세)씨는 “기분대로 친구들과 술 한잔 마시면 1주일 동안 아르바이트한 돈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술자리를 아예 만들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실제로 8시가 넘어 대학가인 홍익대 근처의 술집에서도 학기 초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학생들의 모습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로 30대 초반의 직장인들이 많았으며, 대학생이라 할지라도 단체는 거의 없고, 한두 명씩 모여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생맥주집을 운영하는 박 모(50)사장은 “언제부턴지 몰라도 학생들이 모습은 많이 줄었다. 그 틈을 직장인들이 메꿔줘 가게는 운영이 되지만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이 예전보다 훨씬 큰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노점상을 하는 박 모(45세, 여)씨는 “예전에는 비싼 악세사리도 많이 팔렸는데, 지금은 고작 몇 천 원대의 물건만 팔린다”며 “저도 학부형이어서 학생들의 처지나 심정을 이해한다”고 밝히면서 씁쓸해 했다.
음주비율은 줄고 폭음은 늘어
앞서 언급한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의 한 관계자는 “전체적인 음주비율은 줄었지만 폭음은 오히려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보건복지부 음주문화연구센터가 전국 63개 대학 학생 4,061명을 대상으로 음주문화 실태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2%가 ‘폭음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폭음자 중 주 1, 2회 이상 술을 마시는 수시 폭음자는 42.3%, 주 3회 이상의 상습 폭음자는 28%였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앉은 자리에서 소주 너덧 잔씩 마시는 대학생이 10명 중 7명인 셈이다.
남녀 대학생 폭음자들의 비율도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폭음자로 분류된 대학생 중 남학생은 78%, 여학생은 63.4%였다. 특히 수시 폭음자의 경우 남학생(42%)보다 여학생의 비율(42.7%)이 높았다.
이 센터의 관계자는 “스트레스 탓에 한 번 마시면 더 많이 마시게 되는 것 같다”라고 설명하면서, “과거에 대학의 낭만은 술에서도 찾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현실이 그것을 뒷받쳐 주지 못하니 조금은 아쉽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도 다트머스대 김용 총장이 지난해 워싱턴포스트지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매년 술과 연관돼 2,000여명의 대학생들이 사망하는 등 폭음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학생들의 음주가 미국과 비교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는 아니지만, 앞으로 더 큰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청소년들의 음주다.
2010년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위험 음주율은 2010년 전체 47.2%이었고, 남학생 (44.4%)보다는 여학생(51.3%)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학년이 높아질수록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고, 만취 경험률은 전체 17.5%이었으며 남학생(18.6%)이 여학생(15.9%)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음주율은 전체 21.1%이었고, 남학생이 23.5%로 여학생의 18.3% 보다는 약간 높은 양상이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현재 음주율은 각각 13.3%(남학생 14.1%, 여학생 12.4%), 28.9%(남학생 32.9%, 여학생 24.3%)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행이도 이 수치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학교 내 주류반입 금지 법안 발의
대학생들의 잘못된 음주문화를 근절시키기 위해 지난해 10월 고승덕 의원은 지난해 초·중·고와 대학 등 학교 내 주류 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대학생들은 “술을 강권하는 잘못된 음주문화는 개선돼야 한다”는 입법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지나친 자율권 침해”라거나 “학내 관행화된 음주문화를 개선할 수 있을 것” 등으로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 중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 술에 관해서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대학생들에게 한때는 술이 낭만의 심벌이자 젊은이의 고독을 대변하는 수단으로까지 된 적도 있었다. 물론 유목생활을 했던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하자면 제한적인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술에 대해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정도는 과거에 비해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기자도 술을 가끔 마신다. 젊었을 때와 비교하면 그 양은 훨씬 적어졌지만 지금은 그 다음날과 건강을 생각해서 가능한 술자리는 피한다. 그리고 기자가 술을 배울 때와 지금 대학생과 같은 젊은이들이 술을 배울 때를 보면 많은 부문에서 비교가 된다. 그렇다고 기자가 배울 때처럼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렇게 하라고 강요는 하고 싶지 않다. 달라진 세대와 문화는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은 음주의 정도에 따른 폐해이다. 성장기 때 음주에 따른 문제는 어른들이 부딪히는 문제와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대학새내기들의 지나친 음주를 문제 삼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규율에 따른 생활을 하다가 급작스런 환경변화에 따른 방임적인 음주생활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건강뿐만 아니라 사회적응과정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가정과 사회에서 술에 대한 정확한 교육과 지도가 필요하다.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올바르게 마시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지나친 규제와 억제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대학새내기와 그 이전의 교육과정에서 음주예방교육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대학생활의 첫 발을 딛는 젊은이들에게 건강한 미래를 제시하는 길이다.
문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