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석-임영웅의 '산불', 35년 만에 공연
차범석-임영웅의 '산불', 35년 만에 공연
  • 전명희
  • 승인 2005.05.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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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산불'(차범석 작)이 국립극장 무대에 35년 만에 오른다. 국립극단(예술감독 이윤택)이 한국 연극사 대표작을 시대별로 골라 재상연하는 '레퍼토리 복원 및 재창조 시리즈'의 1960년대 작으로 선택했다. 28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극단 산울림 임영웅(71)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올해 산울림 소극장 20주년 기념 공연하랴, 일본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갬블러' 연출하랴, 그 어느 때보다 바쁜 그가 '산불'까지 맡게 된 것은 이 작품을 원작 그대로 복원하려는 취지 때문이다. 국립극단이 1962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고(故) 이진순 연출로 초연한 '산불'은 당시 공연계의 화제였다. 초연 때 출연했던 배우 김금지 씨의 회고에 따르면 "관객이 너무 많아 국립극장 문이 부서질 정도"였다고. 이어 70년에는 한국연극협회 주최로 역시 명동 국립극장에서 임영웅 연출로 다시 공연됐다. 지금까지도 여러 극단들이 간간이 선보였고, 영화, 오페라, 무용으로도 만들어졌지만 국립극장에서의 공연은 70년 이후 35년 만, 임 대표 연출로도 35년 만이다. 19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임 대표는 "이 작품을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며 35년 만의 연출 소감을 밝혔다. "35년 만에 다시 보니 실로 극작법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더군요. 한 번 연출을 했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놓쳤던 게 많아 반성을 하게 됩니다." '산불'은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1951년 소백산맥 줄기에 있는 한 촌락이 배경. 전쟁으로 남자란 남자는 모두 죽거나 끌려가고, 여자들만 남은 이 과부마을에 한 남자가 내려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사이 시대도 많이 변했다. 초연 당시엔 남북 냉전 이데올로기에 묶여 민족극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이데올로기를 말하기엔 좀 그렇다. 이젠 전쟁을 겪은 세대 보다 그렇지 않은 세대가 더 많은 세상이 됐다. 때문에 이 시점에서 '산불'을 다시 올린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둬야할지, 연출자로서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젊은 세대는 전쟁을 실감하지 못하지만 불과 50년 전 이야기에요. 그 땐 이런 일도 있었구나라는 걸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때문에 70년 공연 땐 원작에서 생략된 부분도 좀 있었지만 이번엔 한 줄도 자르지 않고 그대로 갈 겁니다." 이 작품 속에서 이데올로기나 전쟁은 배경일 뿐,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더 강렬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딱 10년 위인 차범석 씨와는 1950년대 문화부 기자로 활동할 당시 처음 만났다. 이후 50년이 넘도록 둘은 연극계를 떠나지 않고 오늘날 대표적인 원로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차씨는 1955년 등단한 후 줄곧 현장을 지켜 온 한국 연극의 산증인이다. 고령으로 몸이 편치 않은 요즘도 한 달에 10편 이상 공연을 보고, 올 들어서만도 벌써 두세 편의 작품을 썼을 정도다. 임 대표는 "나도 힘들지만 차 선생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말 안해도 이제 서로 믿는 사이가 돼서 연출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주문은 따로 안 하신다"며 웃었다. 62년 초연 땐 박상익 백성희 나옥주 김금지 등이, 70년 공연 땐 백성희 손숙 박정자 윤소정 등이 출연했다. 이제 원로, 중견 배우가 된 김금지, 윤소정 씨는 당시 신인으로 극중 바보 '귀덕' 역을 맡아 인기를 독차지했다. 이번 공연엔 권복순 주진모 곽명화 계미경 등 국립국단 출신 배우들이 나온다. 김금지, 윤소정 씨가 맡았던 '귀덕' 역으로는 국립극단 객원배우 양말복, 백성희 씨가 맡았던 마을이장 양씨 역으론 탤런트 강부자 씨가 가세할 예정이다. 공연시각 평일 7시 30분, 토 4시ㆍ7시 30분, 일 4시(첫날 4시 공연 없음). 1만 2천-3만원. ☎02-2280-4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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