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반시설 사고 ‘허술한 안전관리’ 비판
당인리발전소 지하이전도 지역주민 ‘불신’ 키워
고리원자력발전소의 정전, 보령화력발전소의 화재, 난지물재생센터의 가스폭발이 연달아 발생하며 국가기반시설의 안전관리 시스템에 대한 재정립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당인리발전소 지하이전에 대한 갈등도 다시 쟁점화 됐다. 당인리발전소의 인근 주민들은 “안전성은 누구도 담보할 수 없다”며 “생존권을 사수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힌 상태다.

지난 3월16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난지물재생센터에서 가스가 폭발해 근로자 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규모 발전기에서 발생한 폭발사고였으나 건물외벽이 무너지고, 유리 파편이 사고현장 100m 전방까지 흩어지는 등 현장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당시 이들은 발전기 교체작업을 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인은 ‘안전불감증’
다음날 경기도 고양경찰서는 난지물재생센터의 가스폭발은 공사감독의 소홀로 빚어진 참사라고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누군가 발전기동에 메탄가스를 공급하는 관의 연결부분을 풀어놔 가스가 누출됐다. 이로 인해 메탄가스가 건물 내부에 퍼졌고, 용접작업으로 불꽃이 튀면서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잠정 결론지었다.
이에 경찰은 공사 발주처와 원청업체 그리고 하도급업체 등을 상대로 공사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린 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관련자를 입건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번 난지물재생센터 가스폭발 사고를 포함해 국가기반시설의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자 안전관리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며 국민안전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꼬집는 여론이 형성됐다.
지난 2월9일에는 부산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12분간 정전이 발생했다. 논란은 이후 발전소 관계자들의 사고 대응방식을 두고 불거졌다. 이들이 정전이 발생한 사실을 한 달간 조직적으로 은폐했기 때문.
이들은 정전사실을 숨기기 위해 정전이 일어난 다음날 비상발전기 2대가 모두 작동불능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핵연료 교체작업을 강행했다. 자칫 방사능 누출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또한 이들은 정전이 발생했던 날을 ‘정상작동’이라 기록했고, 사고가 발생한 뒤 비상발전기에서 또 고장이 났지만 운영기록부에 이를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3월15일에는 보령 화력발전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발전소 관계자들은 우선 자체진화를 한다는 이유로 화재경보가 울린 지 27분이 지나서야 소방서에 화재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발전소 관계자들이 ‘화재발생 대응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대형화재를 낳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매뉴얼에는 화재 발생 시 우선적으로 소방당국에 신고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또 이달 초 화재가 난 1호기에 대한 안전점검이 이뤄졌고, 특별히 이상한 점도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보령화력발전소 나아가 국가기반시설에 대한 관리가 형식적이고 허술하게 진행됐다는 비판이 쏟아진 상황이다.
이처럼 연이어 발생한 국가기반시설 사고 모두가 결국은 시설에 대한 ‘관리 허술’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자 국민의 불안은 가중됐다. 또한 고리원자력발전소와 보령화력발전소에서 사고은폐 의혹까지 일자 안전관리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높아졌다.
당인리발전소 지하이전
"안전"vs"생존권박탈" 입장대립
고리원자력발전소 정전과 보령화력발전소 화재로 당인리발전소의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불안감을 표출했다. 특히나 약 10㎞정도 떨어진 난지물재생센터에서 가스폭발 사고까지 발생하자 당인리발전소의 지하이전에 대한 반발도 또 다시 거세졌다.
박강수 서울화력발전소신규건설 반대추진위원회 회장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난지물재생센터가 보여준 폭발력도 이렇게 무서운데 지하 30m에 1만평 넓이의 땅을 파서 건설되는 발전소에 안전성은 어떻겠느냐”며 “만약 가스가 가득차서 폭발하면 그 위력은 원자폭탄에 달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안전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면서 “당인리발전소 지하이전은 지역 주민들은 물론, 서울시민 모두의 안전을 생각지 않는 무책임하고 안일한 발상이다”고 분개했다.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당인동 일대에 걸쳐있는 당인리발전소의 정식명칭은 ‘한국중부발전㈜ 서울화력발전소’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로 8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열병합발전 시설로 전환한 뒤 현재는 압구정?여의도?이촌동에 온수를 공급하거나 전기 수요급증에 대비한 시설로서 운영되고 있다.
대개 발전소는 그 위험성 때문에 인근 주민들에게 기피시설로 여겨진다. 당인리발전소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2011년 서울시가 발표한 재개발 변경안에 따르면, 당인리발전소 주변은 자생지구 및 저층유도구간으로 최대 7층까지 개발을 제한됐다. 이에 주민들은 생존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앞서 당인리발전소와 관련해 2007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후보는 발전설비 철거부지를 매입해 문화창작발전소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2009년 서울시는 ‘한강 공공성 회복선언’의 일환으로 합정구역을 포함한 5개 전략정비구역을 발표한 바 있다.
나아가 당인리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발전소 이전이 지하화를 논의하는 것으로 바뀌자 발전소 폐쇄를 촉구하며 격화된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한국중부발전㈜은 현 난지물재생센터 옆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으나 고양시의 반대로 발전소 이전이 불가해지자 지난해 4월 당인리발전소 지하이전에 대한 공청회를 주관하는 등 ‘지하에 발전소, 지상에 공원 조성’ 계획을 내세워 주민과의 마찰을 빚었다. 또 지난 3월15일에는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에서 당인리발전소 지하이전과 관련해 발전소의 손을 들어줘 사실상 지하이전이 확정, 발전소 측과 주민들의 갈등은 더욱 심화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기반시설의 잇단 사고가 더욱 당인리발전소 주민들을 불안케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즉, 이번 사고들로 지적된 안전관리 소홀문제와 인재로 인한 위험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당인리발전소 내 시설에서도 화재가 발생한 바 있다. 사고는 서울화력 5호기 계획예방 정비 과정에서 발생했다. 누설된 윤활유가 떨어지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 이후 당인리발전소 화재사고는 은폐?축소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인리발전소 관계자들이 “화재는 배관의 보온재에만 발생해 30여분만에 진화됐고, 큰 피해없이 마무리됐다”며 “피해규모는 약 200만원 정도”라고 밝힌데 주민들은 의구심을 품었다. 당시 인근지역 주민들은 “발전소가 화재를 축소하고 은폐하려 하고 있다”며 “소방차들은 사이렌도 켜지 않은 채 조용히 발전소로 들어갔고, 이에 일부 주민들이 화재사건의 원인규명을 촉구하자 발전소 측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토로했다.
당인리발전소의 화재 은폐?축소 의혹은 소방차와 소방대원 수를 놓고 발전소 측과 소방당국이 주장이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가중됐다. 발전소 측과 소방당국은 ‘소방차 12대와 소방대원 20명’, ‘소방차 28대에 소방대원 98명’이라고 각각 발표했다.
안전성 논란이 계속되자 당인리발전소 측 관계자는 타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뒀다”고 밝히며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발전소는 항상 사고위험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다. 더군다나 당인리발전소는 한 차례 화재가 발생하며 재난관리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낸 바 있어 주민들의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 잇단 국가기반시설의 사고로 안전불감증 논란이 불거진 있는 지금, 당인리발전소 미래에 귀추가 주목된다.
박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