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설이 불거지며 8개월여 남은 대선국면이 조기 점화되고 있다. 한 언론보도를 통해 안 원장은 총선 기간 정치인들과 꾸준히 접촉하며 정치결사체인 포럼 구성을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지며 일파만파로 안원장의 대선출마가 기정사실화 됐다는 식으로 알려졌다. 보수·진보, 정당·정파 등에 얽매이지 않고 그만의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확인되며 정치권에서는 여야 구분없이 안 원장의 공식적인 등판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안 원장은 정치 참여를 강하게 시사하면서도 대권 도전 여부에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답하고 있다.
안 원장은 총선을 10여일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대 강연에서 “사회 발전에 긍정적 도구로 쓰인다면 정치라도 감당할 수 있다”며 “진영 논리에 기대지 않겠다”고 밝히며 강연정치의 서막을 알렸다.
강연정치 언제까지
또 이달 초 안원장이 전남대 강연에서 광주 서을에 출마한 이정현 후보 측에 전화 걸어 “이 후보가 전남대 강연장에서 안 원장을 만나 격려도 받고 사진도 찍으라”고 제안했다는 말도 나왔다. 물론 안 원장측은 제안을 한 사실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안 원장 측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지만, 언론 보도와 관련해 일부 사실도 있으나 추측이나 과장이 많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이 보도한 대선 출마 결심설과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 만남 제의설을 두고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안 원장측은 “안 원장이 현재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 여러 분들의 조언을 얻고 있고,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바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숙고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동안 직접 본인의 언어로 밝힌 입장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걸로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2월4일 탈북자 북송반대 집회 현장 방문, 지난달 12일 방송사 노동조합의 연대파업 지지 등과 최근 전남대·경북대 강연에서 청년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며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를 비판한 것 등은 눈여겨볼 대목임에 틀림없다.
총선을 바로 앞둔 상황에서 여론의 귀추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에게 쏠리기도 했지만 야권의 총선 패배 후 안 원장의 운신의 폭은 더욱 넓어졌고, 여권의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유일한 대항마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안 원장, 조직력 취약
정치권에서는 안 원장이 이미 ‘반 새누리당’ 입장을 밝혔고, 박근혜 위원장의 대세론이 확산되는 새누리당에서 함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대신 범야권과 어떤 형태든 연대의 가능성은 높아 보이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국 야권 후보들과 함께 대선 후보 단일화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무소속으로 여야와 젊은층 그리고 중도세력들을 견인하며 독자 완주 가능성도 있고, 민주통합당을 입당하는 방식 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안 원장은 대중적 인기가 높은 반면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상황임으로 입당이나 연대를 통해 정당 차원의 지원을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안 원장이 4·11 총선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인재근 후보와 송호창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고 유권자들의 투표를 독려한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는 안 원장이 야권연대 단일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확대해석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안 원장의 모습에서는 즉각적인 민주당 입당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가 야권단일후보이면서도 무소속으로 나서 당선됐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독자세력화에 무게
이에 따라 안 원장이 무소속으로 독자 세력을 구축해 대권 주자로서 입지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민주통합당 후보와 야권후보 단일화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오르내리고 있다. 그동안의 모습에서 대선 과정일지라도 야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관측도 있다. 안 원장이 특정 진영 논리에 휩싸이지 않고 공동체적 가치관으로 행동하겠다며 여야는 벗어난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현실적으로 조직적 기반이 전무한 상태에서 민주당에 입당해 당내 경선에 참여할 경우 예선 통과도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7대 대선에서도 손학규 당시 당내 경선 후보가 일반 여론 지지도에서는 우위에 있었지만 당내 조직적 열세로 경선에서 패배해 정동영 후보가 승리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입장은 이런 주변의 시각과 달리 확연한 온도차를 들어내고 있다. 안 원장의 정치참여에 대한 조속한 입장 표명과 함께 입당을 통해 당내 경쟁을 거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안 원장은 야권 기존 후보로는 정권 교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지금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물론 민주당 입장에서는 난색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도 평탄치 않은데 안 원장의 제3세력화까지 이뤄지면 큰 낭패일수 있기 때문이다. 문성근 대표대행, 정세균 상임고문 등이 안 원장에게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할 것을 공개제안하는 등 ‘민주당 경선 참여’카드를 내미는 이유다.
야권, 안 원장 행보에 전전긍긍
정세균 민주당 상임고문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당에 기반을 두지 않고 대선에 출마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당적 없이 야권단일후보로 나섰던 '박원순 서울시장식'의 대통령 당선은 어렵다”고 밝히며 안 원장이 입당을 통해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한다고 밝혔다.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도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이제 대세론은 없다. 의지가 있다면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안 원장의 조기등판을 촉구했다.
박지원 최고위원도 “민주통합당에 들어와서 당내 후보들과 경쟁하며 몸집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고, 이종걸 의원은 “자기 세력이 꺼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일부 계파가 안 교수를 꺼리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어느 배를 탈 것인지, 어떤 과정으로 배를 탈 것인지 등에 대해서 이제는 얘기할 때가 됐”며 “총선이 끝났다는 점, 그리고 합리적으로 보자면 9월 말경까지 야권후보가 정해지는 것이 그 이후의 어떤 과정과 절차를 볼 때 합당하다는 점, 이런 양면을 다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 조국 교수도 자신의 트위터에 “안철수, 6월 말 학기가 끝나기 전엔 등판하지 않는다. 그가 킹메이커가 되려 할지, 왕이 되려 할지 아직 모른다. 민주당, 안철수 구애에 매달리지 마라. 만날 때 되면 만난다”고 적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민주당 등 야권의 이런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평가절하하고 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은 안 원장의 대선 출마설과 관련 “박근혜 위원장과 안 교수가 1대 1 구도가 된다고 해도 박 위원장이 큰 위협을 받는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총선 승리로 박근혜 대세론에 탄력이 붙었다는 것이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이에 따라 안 원장이 무소속 후보로 있다가 야권단일화 경선에 참여하는 방식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자구도 상황에서는 새누리당을 도와주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낙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