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사상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승리를 했지만 상처가 더 눈에 띄는 형국이 됐다. 현재 가장 앞선 야권 대선주자로 꼽히는 문 고문은 이로써 19대 국회에 진입하면서 당내 대선후보 경쟁에 나설 발판을 마련했지만 ‘낙동강 벨트’의 야당 바람을 책임져 달라는 기대에는 부응치 못하는 양면성을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부산·경남(PK) 지역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소위 ‘낙동강 벨트’가 위력을 낼 것으로 정치권에서 많은 관측을 했지만 ‘문재인 바람'의 확산은 미미했고, 심지어 대선후보로써의 입지 역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밀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재인 책임론 거론돼
민주통합당의 패배를 확인한 안 원장은 장외에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며 지난해 서울시장보선에서의 ‘박원순 모델’을 적용하며 대선후보 단일화를 추구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는 안 원장은 당을 만들지도 않고 기존 정당에 입당하지 않으면서도 야권 전체에 대선후보 자리를 압박할 수 있게 된 모습이다. 거기다 민주당의 대권셈법이 복잡할수록 안 원장 위치는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인다.
이같은 기류 때문에 문 고문의 총선평가는 더 극단적으로는 당내 위상뿐만 아니라 친노 세력의 쇠퇴를 예견하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마저 나오고 있다.
물론 이같은 우려에 문 고문은 “야권연대 후보들이 얻은 득표율은 42.5%인데,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부산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득표율이 29.6%밖에 되지 않았다”며 “이번에 야권연대 후보들이 얻은 득표율이 그대로 유지된다 해도 대선승리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고문이 총선과 관련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총선 결과에 아쉬움이 매우 크지만 그 가운데서도 희망을 볼 수 있다”며 “부산의 두터운 벽을 절감했지만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 희망을 키워가는 것이며 대선 때 새누리당 세력이 더 결집할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정말 잘해야 하고 또 함께할 수 있는 세력이 모두 모여야만 희망이 있다”고 말한 대목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문 고문은 대선출마와 관련 “정권교체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될 때가 됐다”며 “당 일정에도 맞춰야겠지만 내가 입장을 정할 때가 되었으니까 가급적 빠르게 결정을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선출마 고민 중
문 고문은 MBC라디오에 출연, “무겁고 신중하면서도 너무 늦지 않게 결정하려고 한다”며 “조만간 입장을 정해서 국민들께 분명하게 밝히겠다”고 했다. 그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연대와 관련 “민주당에 들어와서 대선후보 경선에 함께 나서는 길이 있고, 민주당 대선후보가 결정된 후에 제3정파의 후보로서 후보단일화를 도모하는 방법이 있다”며 “두 가지 방법 모두 득실이 있을 것이고 그 선택은 안 원장 자신의 몫”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그분이 정치에 들어선다면 그 시기나 방법은 그분의 판단과 선택에 맡길 문제”라며 “민주당 내 대선주자들이 받고 있는 지지와 안 원장의 지지가 합쳐져야만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고문은 이와 함께 “우리쪽과 안 원장이 함께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를 하고 나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문 고문의 플랜에 4.11 총선 결과는 두고두고 뼈아픈 대목이 될 것 같다. 정치권에서는 문 고문은 본인이 당선됐다는 긍정적 면이 있지만, 야권이 이 지역에서 5~6석, 적어도 3~4석은 할 줄 알았는데 사실상 혼자 된 것은 문 고문의 한계점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부산 총선을 사실상 진두지휘한 문 고문에 대한 책임론 역시 거세질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부에서는 “문 당선자가 총선 패배에 대해 한마디 말이 없다. ‘부산 낙동강 전투’에서 부하들이 모두 패배하고 장수 혼자 살아 남은 만큼 먼저 사과해야 한다. 당원과 유권자들이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움직이는 것이 맞다”며 문 고문의 책임을 거론했다.
대선주자 가능성도 보여줘
문 고문 등 친노세력은 낙동강 벨트에 출마한 문성근(북강서을) 최고위원이라도 살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역시 실패했다. 또 문 고문이 강력히 추천한 것으로 전해지는 허진호(수영)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3위(24.57%)에 그치는 수모를 당하기까지 했다.
손수조 후보와의 격차가 11.29%에 머무른 것도 아픈 대목이다. 실제 부산 지역구(18곳) 가운데 민주당이 승리한 곳은 사상구와 사하(조경태 후보) 2곳에 불과하다. 조경태 후보의 경우는 자력으로 당선됐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런 이유로 문 고문의 성적은 한마디로 패배라고 일컫는 이들도 있다. 반면 12월 대선 승패에 중대 변수가 될 부산에서 야권연대가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때의 29%보다 훨씬 높은 41%의 정당득표율을 보인 점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양쪽 모두 타당성이 있고,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무엇보다도 대선주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동시에 명확하게 한계를 노출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따라 대선을 향한 문 고문의 최대 과제는 ‘친노의 대표자’, ‘노무현의 그림자’라는 인상 을 뛰어넘어 확실한 문재인의 색깔을 독자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대선주자로써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던 문 고문의 정치적 비전과 식견, 능력에 대한 검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에 대비해 노 전 대통령과 다른 문재인만의 정치적 상품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문 고문은 이번 총선에서 크게 득을 얻은 것이 없다는 것이 평가 아닌 평가이다. 상한가를 치고 올라가던 여론조사에서도 하향세가 두드러지고 있고, 오히려 안철수 원장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이 여론의 향배이다.
‘문재인 대망론’추락?
정치권에서는 문 고문이 이번 선거를 통해서 대권후보로의 입지를 만든 것은 아니며 총선 이후에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여기에 당내에서 이번 총선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어 문 고문은 선거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반면 '낙동강벨트' 지역의 야권 후보들의 득표율이 과거에 비해 상승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릴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문 고문의 성적과 안 교수에 대한 엇갈린 평가 속에서 새누리당과 달리 민주당의 대권 경쟁은 혼전 상황으로 빠져들었다는 관측이 우세해 지고 있다. 문 고문이 이번 선거를 발판으로 뚜렷하게 부상하지 못한 데다 이해찬 전 총리와 정세균 전 대표의 승리로 이들의 역할론이 부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선거에 불출마한 손학규 전 대표와 김두관 경남지사가 각각 수도권과 영남 지역의 지지세를 기반으로 대권을 향한 움직임에 더욱 가속화양상을 보일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물론 가장 큰 변수는 제3지대에서 모든 것을 관망하고 있는 안 원장도 생각해야 한다. 총선 패배를 계기로 총선전 부상했던 문재인 대망론이 이제는 사라지며 민주당 안팎의 대권 주자 간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낙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