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부품 사업’ 이재용vs정의선
‘전장부품 사업’ 이재용vs정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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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황태자 간 싸움, 누가 웃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전장부품 사업에 대한 관심을 내비쳤다. 지난 4월 독자적인 전장부품 기술을 강조하며 현대오트론을 출범한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소리다. 국내 굴지의 두 그룹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전장부품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해당 사업부문에 대한 이재용 삼성 사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충돌’이 예측되고 있다. 이 사장과 정 부회장이 각각 삼성, 현대차의 차기오너로 꼽히기 때문이다.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두 사람. 이들을 중심으로 삼성과 현대차의 ‘밥그릇싸움’이 관측되면서 관심이 뜨거운 상태다.

삼성 “완성차가 아니라 전장부품 사업진출”
현대車, 현대오트론으로 차후 시장선점 기대
삼성·현대車 “타사에 대해 할말없다” 한목소리
양사 경쟁 ‘인력스카웃’이 신호탄? 관심 고조

이 사장은 지난 1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업은 안 한다. 안 한다고 하는데도 왜들 그렇게(완성차 시장 재진출) 기사를 쓰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은 열심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격적인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진출에 대한 삼성의 의지였다.

삼성, 도전장

삼성의 최근 행보를 보면, 전장부품 사업에 대한 삼성의 지대한 관심이 나타난다. 삼성이 차량용 2차 전지와 발광다이오드(LED)를 신성장동력으로 꼽은 뒤 이 사장은 글로벌 자동차 CEO들을 연달아 만났다. 차량용 2차 전지 및 반도체의 공급확대를 위한 비즈니스 행보라는 것이 삼성의 설명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이 사장은 댄 애커슨 GM 회장, 토요타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사장, 노버트 라이트호퍼 BMW 회장을 순차대로 만난데 이어 최근에는 유럽방문을 통해 마틴 빈터콘 폭스바겐 회장과 회동을 갖자 일각에서는 “삼성이 완성차 사업에 재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 사장이 완성차 재진출에는 선을 긋고, 전장부품 사업진출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하면서 삼성의 ‘완성차 사업 재진출설’은 일단락된 상태다.

전장부품 사업은 현대차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현대모비스에 전장부품 독자기술이 마련되지 못한 것을 두고 대노했다는 것은 재계 안팎에 공공연하게 알려진 얘기다. 이에 현대차는 전장부품 회사를 함께 운영해온 보쉬와의 관계를 끊고 지난 4월 현대오트론을 출범, 전장부품 연구기능을 한 곳으로 모아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힘쓰고 있다.

새로운 ‘블루오션’

그렇다면 삼성과 현대차가 전장부품 사업을 주목하는 이유는 왜일까. 전장부품 사업이 향후 성장 가능성 있는 분야로 손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전장부품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기, 전자장치를 가리키며, 그중에서도 자동차용 반도체와 전자제어장치가 주력 분야다.

매킨지 컨설팅에 따르면, 전장부품이 자동차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19%에서 2015년 40%를 상회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전기자동차 시대가 도래하면 그 비중이 70%를 차지할 수 있다고 관측됐다. 이와 함께 전장부품 시장규모도 2004년 1200억달러(138조원)에서 2015년 2000억달러(230조원)으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미래 동력으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삼성과 현대차에게는 이런 점에서 전장부품 사업이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전장부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삼성과 현대의 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은 완성차 사업의 실패로 ‘1위 삼성’ 명성에 흠집을 낸 전력이 있다. 전장부품 시장을 선점할 경우 삼성은 자동차 산업 실패의 아픔을 털어버릴 수 있는 동시에 자동차 산업 내 영향력까지 가질 수 있게 된다. 삼성으로서는 신성장동력이면서 영향력까지 발휘할 수 있는 1석2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물론 삼성이 무작정 전장부품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것은 아니다. 삼성은 지난 2009년 현대차 등과 함께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스마트 키, 자동주차, 배터리 센서용 칩 등 지능형 자동차용 반도체를 공동 개발했다. 차량용 반도체뿐만 아니라 전기차용 배터리, LED램프, 카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의 자동차 기술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각에서는 삼성이 현재 2차 벤더(vendor)로서 전장부품 사업을 전개해나갈 것이란 입장이 나왔다. 최대한 기존 전장부품 업체, 현대차와 같은 완성차 업체와의 마찰을 줄이겠다는 의도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 측의 입장을 들으려 삼성그룹, 삼성SDI, 삼성전자 등에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서로 “자신들의 담당이 아니기 때문에 얘기할 게 없다”며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이 사장이 언급한 자동차 반도체가 아닌 차량용 배터리와 관련해서 “현재 보쉬와 합작을 통해 전장부품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배터리부문에서 이러한 사업방식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현대차, 불편한 심기?

이 사장이 전장부품 사업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일단은 정 부회장이 이 사장보다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기반이 자동차일 뿐만 아니라 현대오트론을 통해 먼저 전장부품 시장에도 발을 내딛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현대는 차량용 반도체를 수입에 의존해왔다. 돈이 되는 핵심 기술은 외부에 기대고 있었던 셈이다.

현대오트론을 통해 현대차는 부품수입에 쏟아 부었던 연간 1조2000억 원대의 비용을 절감하고, 외부상황의 영향을 덜 받아 안정적인 생산을 강화하면서, 다른 자동차 업체들에게 부품을 공급해 추가 수입까지 얻을 수 있지 않겠냐고 예측한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현대오트론은 현대차에게 전장부품 수입을 대체하고 안정적인 기반이 되는 역할이 주를 이룰 것이라 예측한다. 현대오트론이 경쟁력이 있다고 해도 완성차 시장에서 현대차와 경쟁하고 있는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쉽게 부품을 수입해갈리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삼성이 더욱 전장부품 시장에서 매력적인 대어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이 완성차 시장에서 경쟁하는 사이도 아닐뿐더러 높은 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도 한 몫 한다. 물론, 자동차 반도체 시장에서는 2% 미만을 차지하는 등 아직은 그 영향력이 미미한 수준이다.

현대차 입장으로서는 이런 삼성의 위치가 부담스러울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차 관계자는 삼성의 사업진출에 대해 “우리는 자동차가 점점 스마트화 돼가고, 전장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오트론이라는 전문회사를 설립한 것일 뿐”이라며 “남의 회사가 진출한 것에 대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치열한 싸움 ‘예상’

삼성과 현대차의 경쟁은 벌써 시작된 양상이다. 지난 10일 마감한 현대오트론 ‘반도체 경력사원 모집’에 삼성전자, LG전자 출신 등 3000여명의 인재들이 대거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항간에는 삼성이 현대차에 “연구 인력 채용으로 영업기밀이 유출되면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는 공문까지 보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반도체 인력과 관련해서 삼성전자에서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지만, 현대차 관계자는 “삼성에서 공문을 보낸 것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삼성 쪽에서 공문을 보냈다고 했느냐”며 반문한 뒤 “만약에 공문을 보냈다면 우리를 의식했으니까 보낸 것 아니겠느냐. 회사를 설립했고, 인력이 필요하니까 뽑았을 뿐인데 신경전이라니 당치도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과 현대차가 비슷한 시기에 전장부품 사업에 진출하기로 선언하면서, 이 사장과 정 부회장의 능력비교가 수반되지 않겠냐는 시선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전장부품 시장을 누가 이끌어나갈지 확답할 수 없다. 다만 현대차가 자동차 산업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유리하다는 관측이 나올 뿐이다. 성장성 있는 시장으로 평가받는 만큼 이재용 사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승자는 누구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에 이어 삼성까지 전장부품 사업에 진출을 선언하면서 기존 전장부품 업체들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특히 삼성의 경우 부품업체에 원재료를 납품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할 것이란 얘기가 있어 하청업체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 일부의 시각이다. 인터뷰에 응한 A업체는 “삼성이 전장부품 사업에 진출했다는 얘기는 지금 들어서 생각은 안 해봤지만, 당분간은 크게 타격을 입을 것으로는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이 사장과 정 부회장이 구상한 전장부품 사업은 무엇일까. 본격적인 대결을 앞두고 삼성 이재용 사장과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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