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네요. 아직도 감이 덜 잡혔어요.”
3시간 넘는 연습을 마친 심혜진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콤펙트를 꺼내 지워진 화장을 고쳤다. 25일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한달째 진행 중인 연극 ‘아트’의 연습으로 열기가 뜨겁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선다”는 심혜진은 “영화나 드라마는 순간에 집중하면 되는데, 연극은 1시간40분 내내 집중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고 털어놨다.
17년 경력의 카메라 연기자가 느닷없이 연극 무대에 서는 건 ‘얻을 것 없는 모험’이 될 수도 있을 터. 그녀는 “물론 모험”이라고 동의하면서, “하지만 타성에 빠진 나를 깨뜨리고 싶어 대학로에 나왔다”고 야무진 답변을 덧붙였다.
“물론 저는 연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예요. 영화, 시트콤, 드라마, MC 등 연기자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두루 해봤지만 연극하고는 거의 담 쌓다시피 살았어요. 20대 시절에 소극장 연극을 딱 두편 본 게 전부니까요. 웃기죠? 하지만 17년의 연기 경력을 엉터리로 쌓은 것은 아니라는 걸 꼭 보여주고 싶어요.”
모노드라마를 해보자는 제의를 몇차례 받은 적은 있었다. ‘심혜진’을 전면에 내세운 1인극은 손님 끌기 괜찮은 ‘물건’이었을 터. 하지만 그녀는 번번이 거절했다. 연극 무대에 홀로 선다는 것이 막막하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번 작품은 여배우 3인이 서로 힘을 보태는 연극이어서 겁없이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3인극 ‘아트’에서 심혜진과 호흡을 맞추는 배우는 정경순과 박호영이다. 청담동의 ‘잘 나가는’ 피부과 의사인 수연(정경순)은 어느날 1억8천만원짜리 그림을 턱하니 사들이고, 지방 공대의 여교수인 관주(심혜진)는 그런 수연을 허위의식으로 가득찬 ‘문화 속물’이라며 비아냥댄다. 문방구 사장인 경숙(박호영)은 티격태격하는 두 친구 사이를 오가며 갈등을 해결하려다가 제풀에 나가떨어진다.
세 친구의 우정과 미묘한 경쟁 심리를 톡톡 튀는 대사로 재치있게 풀어나가는 연극. 남자배우 3인의 열연으로 대학로에서 롱런했던 작품을 여배우 3인으로 캐스팅을 바꿔 다시 손질했다.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어 영화와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힌 정경순은 1997년 동아연극상 연기상 수상자. 스크린과 TV에서는 감칠맛나는 조연 연기로 빛을 발한다. 박호영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국립 기치스 연극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친 학구파. 2000년에 한국연극협회가 주는 여자연기상을 받았다. 심혜진은 “이번에 연극을 같이 하자고 줄기차게 꼬드긴 사람이 바로 경순이 언니였다”고 덧붙였다.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녀는 본인의 출연작 가운데 ‘결혼이야기’ ‘그들도 우리처럼’ ‘세상 밖으로’를 가장 애착이 가는 영화로 꼽았다.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의 순수함이 담겨 있어서”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녀는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 머리 굴려가며 찍은 영화나 드라마도 많다”며 “그런 작품에 등장했던 나를 보면, 오래돼서 신선도 떨어지는 과일을 보는 것 같다”고 비유했다.
대학로의 ‘초짜’ 심혜진. 뒤늦게 연극에 뛰어든 그녀의 과감한 도전은 곧 시험대에 오른다. 6월2일부터 7월31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심혜진은 화·목·토요일에 출연하고, 수·금·일요일엔 김성령·조혜련·진경으로 이뤄진 캐스팅이다. (02)764-8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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