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정지된 솔로몬·미래·한국·한주 저축은행의 매각작업이 본격화됐다. 금융당국은 자산규모가 큰 대형 저축은행들이 포함돼 있는 만큼, 금융지주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라는 눈치다. 그러나 KB, 하나 등 금융지주사들이 인수전 참여에 “어렵다”고 선을 그으면서, 그 바람은 실현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이어 기업, 산업 등 국책은행들도 난색을 표하면서 금융당국이 구상한 밑그림에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위, 대형 저축은행 M&A…금융지주사 나서야
금융지주사·국책은행 “저축銀 인수없다” 한목소리
시민단체 “정부가 금융지주사에 책임 전가” 주장
금융위 “제대로 경영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일 뿐”
예보, 7월 중 본입찰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5월 말까지 실사를 끝내고 6월 초 매각공고를 낸 뒤 예비입찰제안서를 받아 숏리스트를 선정, 3주간의 실사를 거치고 7월 중순 본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M&A 방식은 P&A(자산부채이전)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데, P&A는 부실채권을 제외한 우량자산과 부채만 인수하는 방식으로 인수사의 부담을 덜어줘 유용하다는 분석이다.
예금보험공사가 본격 움직인 상황에서 저축은행 M&A 전망에 대해 이목도 집중되고 있다. 저축은행의 향방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뉘어 관측된다. 먼저,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들이 자체적으로 회생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해당 저축은행들에게 45일 간의 회생 기회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 안은 해당 저축은행들의 부채가 높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이로 인해 금융지주사, 국책은행 등에게 매각하는 안과 예금보험공사 소유의 가교저축은행에 맡기는 안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금융당국 입장으로서는 가교저축은행보다는 금융지주사에 매각되는 것이 흡족한 결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교저축은행의 관할에 들어갈 경우 지속적으로 관리에 들어가야 돼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또 업계 1위였던 솔로몬저축은행 등 규모가 큰 저축은행들의 M&A라는 점에서 금융지주사 아니면 감당할 수 없다는 것도 그 이유다.
금융지주사 ‘난색’
금융당국에서는 금융지주사들을 믿고 있는 눈치지만, 금융지주사들은 대체로 불참의사를 밝히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4일 “인수여력은 충분하나 앞서 프리미엄을 주고 인수한 저축은행도 적자가 나고 있다”며 “KB저축은행의 영업 정상화에 힘쓸 것이고, 저축은행 추가 인수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하나금융과 신한지주도 앞서 저축은행들을 인수한 바 있기 때문에 “인수한 저축은행들의 영업 정상화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추가 인수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 4월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만 “현재 우리금융저축은행 규모가 작으니까 하나 정도 더 인수해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인수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번 M&A 시장에 나온 저축은행들의 규모가 큰 편이라는 점에서 쉽지 않다는 게 금융권 내 시각이다.
앞서 KB금융은 제일저축은행을, 하나금융은 에이스와 제일2저축은행을, 신한지주는 토마토저축은행을, 우리금융은 삼화저축은행을 각각 인수했다. 그러나 인수한 저축은행들이 올해 1분기 적자를 기록하며 금융지주사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새롭게 떠오른 후보군이 바로 농협금융지주, 기업은행, 산업은행 등이다. 국책은행들로 정부의 관할아래 있는 한 금융당국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또한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것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난 4월 신충식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겸 농협은행장은 “농협은 지역조합이 저축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어 저축은행을 인수할 생각이 없다”고 부인했다. 또 조준희 기업은행장도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에 집중해야 되기 때문에 저축은행 인수를 검토한 적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반면,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5월 30일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의 부실을 예금보험공사가 떠안기 때문에 금융회사들이 저축은행 매각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인수 의사가 있지만 싸게 사기위해 밝히지 않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등 난항이 예상된다는 일련의 예측과는 사뭇 다르게 저축은행 M&A를 바라봤다.
“근본적인 방안 필요”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을 놓고 금융당국과 금융지주사 간의 줄다리기가 계속되자 금융당국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진 상태다. 정부가 책임을 일방적으로 금융지주사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경제개혁연대는 보도 자료를 내고 “금융당국이 또다시 ‘팔 비틀기’에 나선 것은 자신들의 정책 및 감독실패를 일시적으로 덮으려는 편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며 “예금보험공사 내의 ‘상호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의 자금을 투입함으로써 근본적인 구조조정과 저축은행 시스템 전체에 대한 구조개편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일갈했다.
이와 관련해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저축은행 경영정상화가 쉽지 않은 문젠데 금융당국에서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걸 경계한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예금보험공사 산하의 비용을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걸 얘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1차 영업정지 때에도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2차 영업정지 일어났고, 피해자가 계속 양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1차 때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해간 금융회사들은 지금 역마진에 시달리고 있다”며 “현재 저축은행에서 수입 창출할 수 있는 구조도 제한돼 있어 금융회사들이 저축은행을 가져간다고 한들 수익보장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한편, 금융위에서는 이런 얘기가 불거지는 상황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특별히 요청이라기보다는 저축은행을 제대로 경영할 수 있는 곳에서 인수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금융기관에서 인수를 해주기를 희망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 뒤 “책임전가는 당치않다. P&A방식으로 진행되면 부실자산 부문은 제외하고 우량자산만 넘어가는데 이런 얘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작년부터 부실은행 정리를 하면서 건정성 강화노력을 해왔고, 이번에 추진되는 ‘저축은행 개정안’도 저축은행이 영업하는데 도움 되는 사항을 담고 있다”며 책임전가 의혹에 대해 반박했다.
실제로 금융위는 “오랜 기간 누적된 저축은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영건전화 감독강화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할 계획”이라며 해결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금융위가 추진하는 ‘저축은행법 개정안’은 서면검사로 저축은행 대주주의 불법혐의를 적발해온 시스템을 금감원의 직접검사로 바꾸자는 게 골자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 저축은행 명칭변경과 예금보호한도 축소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나온 상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단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서 신중하게 결정할 사항”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박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