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충식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겸 농협은행장이 지난 6월7일 돌연 회장직을 사임한 가운데 NH금융지주 회장으로 신동규 전 전국은행연합회장이 내정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낙하산 인사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농협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오르게 될 신 내정자는 앞으로 농협금융의 경영독립성과 지주회사체제 안정, 노사갈등 해소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2012년 3월 출범한 NH농협금융지주는 NH농협은행?NH농협캐피탈?NH농협투자선물?NH농협생명?NH농협손해보험?NH농협증권?NH-CA자산운용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등 4개의 금융지주들 틈바구니에서 농협금융지주가 지난 3월에 설립된 것이다.
신충식, 98일만에 사퇴 왜?
금융지주 출발과 동시에 신충식 전 회장은 금융지주와 농협은행장을 겸직했다. 이같은 신 전 회장의 겸직에 대해 일각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여러 구설수들이 피어오르고 있던 와중에 지난 6월 7일, 그는 돌연 금융지주 회장직 사임 의사를 밝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취임한지 98일째, 100일도 채우지도 않고 사임하겠다는 뜻을 두고 각종 추측들이 난무했다. 이에 대해 NH농협금융지주 측 관계자는 “은행장과 금융지주 회장직을 겸직하는 일에 대해 개인적인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금융지주가 설립되기 전, ‘전국농업협동조합 노동조합(이하 농협 노조)’은 ‘협동조합 해체 반대, 주식회사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었다. 노조는 ‘농민조합원’과 ‘협동조합’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조다.
농협노조 측은 “농협중앙회 전무이사였던 신충식 전 회장은 금융지주의 회장으로 취임하게 되면 농협의 입장이 적극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측에 따르면, 정부는 지주회사분리시 부족한 필요한 자본금 4조원을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노조측의 주장이다.
노조는 “지난 5월말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농협중앙회는 지주회사분리 시 부족자본금 지원(정부가 농협금융채권 이자를 보전하는 방안. 1년에 1500억원씩, 5년 간 1조원을 넘지 않는 수준의 금액 지원)에 따른 사업구조개편 이행 약정서 체결을 강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약정 체결을 강행시켜놓고 신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나아가 금융지주 주주종회에서 신동규 신임 회장을 선임하는 일정까지 마무리 한 사안으로 미뤄본다면 신 전 회장이 말한 ‘겸직의 부담감을 느꼈다’는 사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풍’, 또 부나
NH농협금융지주의 2대 회장 자리를 놓고 하마평에 오른 인물들 중 김태영 전 농협신용부문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는 ‘외부인사’다. 이들 중 유일한 ‘내부인사’인 김 전 대표는 일찌감치 회장 후보군에서 배제되면서, 농협 외부인사들이 회장직을 놓고 경합을 벌였다.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측 한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농협지주 회장은 정부 압력 등 외풍을 적절하게 막을 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 후보를 추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내부인사가 선임되면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힘을 견제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함께 나왔다.
이로 인해 윤증현 전 기획재중부 장관, 권태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 등으로 압축이 됐고, 이들 중 이철휘 전 사장이 유력하게 회장 후보로 거론됐다.
이 전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대통령총무기획관의 처남으로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경기고 동기동창이다. 이로 인해 노조 등에서는 현 정권의 최측근 인사와 연줄이 닿아있는 이 전 사장의 취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있었다.
결국 노조와 농민회는 이 전 사장의 출근 저지를 비롯한 각종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 전 사장의 퇴진을 외칠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노조의 격렬한 반발도 있었지만, 이 전 사장이 금융지주 회장에 오르지 못한 이유에 대해 회추위 주변에서는 “그가 은행장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처럼 농협 노조와 전국금융산업노조, 농민회 등 각종 단체들은 ‘낙하산인사’와 관련해 연대 투쟁까지 벌일 각오를 다지자, 이에 많은 부담을 안고 있는 정부가 결국 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신 내정자 역시 외부인사라는 점에서 노조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 “최악의 인사” 규탄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신 전 은행연합회장은 1951년 경남 거제 출신으로, 제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첫 입문했고, 재무부 자본시장과 과장,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과 과장,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 국장, 한국수출입은행 은행장,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국제 컨설팅사 AALC 선임고문, 10대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동아대학교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이처럼 신 내정자가 ‘모피아(재무관료)-PK(부산?경남)’출신의 ‘낙하산 인사’라는 점 때문에, 농협 노조의 강경한 반발이 예상된다.
신 내정자를 두고 농협 노조측은 “한 마디로 최악의 인사”라며 “탁상공론의 1인자이자 ‘청와대 돌쇠’라는 별명이 붙은 인물”이라고 평했다. 또한 노조는 그가 지난 3년간 금사협(금융사용자협의회) 의장으로 있었던 점을 들먹이며 “신 내정자는 금사협 의장으로 3년을 역임하면서 노사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간 장본인으로, 신규 직원 임금삭감, 은행직원 임금반납 등을 주도했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신 내정자의 취임에 농협 노조의 격한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농협금융측은 “신 내정자는 정부출자와 관련한 농협이 처한 다방면의 현안들을 해결해 나갈 추진력을 바탕으로 노조와의 원만한 협력을 도모하고자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신 내정자에 대한 노조 측의 입장은 여전히 완고하기만 하다. 노조 관계자는 “낙하산 인사 임용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 수차례 경영진들이 밝혀왔지만 역시 모든 것들이 거짓임을 명백히 드러났다”며 “우리(농협노조)는 노사관계를 파탄으로 이끈 장본인을 절대로 금융지주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신 내정자를 회장으로 임용할 시 총파업과 더불어 경영진 총사퇴를 요구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갈 길 먼 농협
한편 신 내정자는 재경부 출신이다. 그러나 회추위측은 이미 오래 전 관료생활을 청산했다는 점에서 “관료 이미지가 많이 희석됐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외부인사, 낙하산 인사 등 논란에 대해 신 내정자는 언론을 통해 “민간단체인 은행연합회장을 지내면서 나만큼 정부와 맞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신 내정자를 놓고 농협금융 내부에서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내비치고 있다. 농협은 여타의 금융기관에 비해 발 빠르지 못한 의사결정 속도, 경영독립성 문제, 낮은 생산성, 폐쇄적 조직문화,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파벌, 노사 갈등 악화 등 개선해야 할 과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런 가운데 신 내정자가 앞으로의 현안들을 어떤 식으로 정비를 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