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내부 감시시스템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여러 은행에서 내부 직원들의 횡령사건 등이 잇달아 터지고 있기 때문. 올해 들어서만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에서 2건의 횡령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고객의 계좌에서 다른 계좌로 분산 이체를 하며 돈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손실 또한 약 40억원, 30억원으로 거액이다. 또 최근에는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의 직원이 가짜 지급보증서 발급사건에 함께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조사에 따르면 해당 직원들은 450억원, 170억원 상당의 가짜 지급보증서를 유류 도매업자 F씨에게 발급해주고 9억7000만원, 4억5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F씨는 이렇게 획득한 가짜 지급보증서를 이용해 남해화학으로부터 석유제품을 제공받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은행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어, 남해화학이 모든 피해액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국민·우리銀 등 직원, 고객계좌서 거액 횡령사고 발생
신한銀, 과거 횡령으로 금융당국 경고 받을 듯 ‘곤욕’
기업·신한銀 가짜 지급보증서에 남해화학 ‘끙끙’
“가짜보증서, 은행과 관련 없어” 책임론 선긋기

우리은행은 고객의 계좌에서 거액의 현금이 일시에 빠져나간데 의문을 품고, 고객에게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A씨의 횡령 혐의를 잡아냈다. 당시 우리은행 측은 내부 감사시스템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은행에서도 내부 직원에 의해 횡령사건이 발생,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지난 2월 국민은행 경기도 포천의 모 지점에서는 직원 B씨가 고객 돈 38억5000만원을 빼돌려 적발됐다. 조사결과, B씨는 5~6개의 계좌에 분산 이체하며 해당 돈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은 내부 감사시스템을 통해 이를 알아내고 돈이 이체된 계좌를 바로 지급정지 조치했으나 B씨는 이미 잠적한 뒤였다. 더욱이 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국민은행 측은 “해당 지점이 노출되면 영업에 방해가 된다”고 쉬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한銀, 기관경고 가능성
신한은행은 과거 횡령사건 때문에 금융당국으로부터 ‘경고’와 6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5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신한은행에 동아건설 횡령사건에 대한 2심 재판부의 판결과 200억원대의 원주지점 횡령사건의 책임을 함께 물어 이 같은 제재수위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건설 횡령사건은 동아건설 전 자금부장 C씨가 5년간 회삿돈 1898억원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신한은행 신탁계좌에 맡겨져 있던 동아건설 자금 898억원도 훔친 사건이다. 당시 동아건설은 관리책임을 물어 신한은행을 고소했다.
1심에서는 신한은행이 동아건설에 898억원을 지급해야 된다고 판결이 나왔지만, 지난 4월 진행된 2심에서는 신한은행이 동아건설에 962억원, 동아건설이 신한은행에 61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신한은행이 동아건설 관련 책임이 대폭 줄었음에도 경고를 받게 된 건, 지난 2008년 원주지점 직원 D씨가 고객 돈 225억원을 빼돌리다 적발된 횡령사건까지 함께 제재안건으로 상정됐기 때문.
가짜 지급보증서까지
신한은행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11일 검찰조사에 따르면, 신한은행 남양주 모 지점의 지점장 E씨는 유류 도매업자 F씨에게 450억원 상당의 가짜 지급보증서를 발급해 9억70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가짜 지급보증서를 손에 넣은 F씨는 남해화학에 이를 제출한 뒤 450억원 상당의 석유제품을 제공받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신한은행 관계자는 “은행 내부에서는 지급보증서를 발급할 수가 없다. 외부에서 위조된 가짜 지급보증서인데, 지점장이 연루돼 문제가 커진 것 같다. 공소장을 보면 해당직원은 (가짜 지급보증서를) 전달했을 뿐 직접 위조했다는 말은 없다. 또 돈을 받았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확인이 안 됐다”고 해명했다.
또한 “신한은행에서는 위조 지급보증서가 발견 되자마자 본점을 통해 금감원에 검사의뢰를 했고, 검찰고발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혐의가 있든 없든, 해당직원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돼 대기발령을 낸 상태고, 지금까지도 대기상태”라며 후속조치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더욱이 해당사건에 신한은행뿐만 아니라 기업은행까지 연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은행권에 대한 불신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1일 검찰조사에 따르면, 기업은행 경기도 광주 모 지점의 지점장 G씨는 유류 도매업자 F씨에게 170억원 상당의 가짜 지급보증서를 발급해주고 4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F씨는 이렇게 얻은 가짜 지급보증서도 남해화학에 제출한 뒤 170억원 상당의 석유제품을 제공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관계자는 “검찰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여서 자세한 사항은 언급하기 곤란하다”고 말하면서도 “해당 지급보증서는 개인이 혼자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잘못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은행책임 없다?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은 사건과 관련해 자세한 언급은 피하는 한편, 해당사건과 자사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이 저지른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은행의 책임론이 부각되는 데 대한 선긋기에 나선 것이다.
내부 감사시스템에 대한 허술함을 지적하자 기업은행은 “은행의 내부 감사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개인이 비리를 저지르자 마음을 먹고 한 일인데 어떻게 막겠느냐”고 말한 뒤 “위조지폐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한국은행이 허술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금융기관이기 때문에 사전에 교육을 엄격하게 하고 있는데도 이런 일이 생겼다”면서 “기업은행의 입장은 이번 사건과 상관없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신한은행도 직원교육 및 내부 감사시스템과 법적분쟁 가능성에 대한 책임은 지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이번 사건이 직원의 독단적으로 발생한 것임을 명확히 하며 선을 긋는 모양새였다.
신한은행은 “자사 프로세스 상의 문제는 없고, 은행개입도 없다. 개인이 저지른 일”이라며 “현재로서는 결과가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직원의 자질부분 등 직원교육, 내부통제 같은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업체가 있고, 자사 직원이 연루가 돼 피해를 입은 업체가 소송을 제기한다면, 법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며 “아직 검찰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의 결과에 대해선 예측할 수 없으나, 만약 분쟁이 발생하면 그 결과가 회사 측에 좋지 않게 나와도 충분히 따를 용의가 있다는 게 회사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피해업체는
한편, 가짜 지급보증서 사건의 피해업체로 확인된 남해화학은 이번 사건에 대해 말을 아끼며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했다. 피해가 발생한지 몇 주가 지났고, 수백억원에 달하는 피해액이 발생한 상황에서 확실한 대책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는 것.
남해화학 관계자는 “피해를 입은 사실은 맞다. 이미 일어난 사건인데 숨길 이유도 없고 숨기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도 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하길 바란다. 당연히 넋 놓고 앉아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그는 “최대한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 중 대응책을 고르고 있다”고 말한 뒤 “무조건 소송에 들어간다고 해서 승소할 수 있다는 건 확실치 않기 때문에 단순히 법으로만 해결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소송 외의 방법으로도 깔끔하게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남해화학도 가짜 지급보증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어떤 얘기도 할 수 없다”고 언급자체를 꺼렸다.
박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