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들에게 ‘인권’은 멀고 먼 이야기?
철거민들에게 ‘인권’은 멀고 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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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들 재산과 주거권 유린 당한 채 대응 못해”


‘철거’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때는 1980년대 중후반, 88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제적 시각’을 의식해 일명 ‘달동네’라 불리는 도시 빈민촌을 무력으로 진압한 때부터 시작됐다. 1980년대 중후반, 국가가 자행한 무리한 철거 진행은 2009년 일명 ‘용산참사’로 대두됐고, 현재도 거주에 대한 불안으로 잠 못 이루지 못하는 ‘철거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을 처지에 놓인 세입자들이 강제 철거에 반발해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염리공덕이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는 재개발조합과 용역업체인 A사를 두고 “CCTV를 설치해 철거민에 대한 인권과 사생활 침해를 자행하고 있다”고 규탄하고 있다.

“사생활침해 당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6월 9일 한 세입자의 거주지가 강제 철거를 당하면서 시작됐다. 대책위원회는 항의 차원에서 거주지를 강제로 철거당한 철거민의 집 앞에 간이천막을 설치하고, 천막 안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용역업체인 A사가 천막쪽을 향하게 CCTV를 설치하면서, 문제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대책위는 “CCTV 설치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어긴 것”이라며 “구청이 허가한 CCTV가 있음에도 A사가 굳이 CCTV를 천막쪽으로 향하게 설치한 것은 분명 분제가 있다”고 강력 반발했던 것이다.
이에 용역업체 A사측과 재개발조합측은 “방범 및 화재, 시설안전관리 이유로 설치를 했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고 해명하며 즉시 CCTV를 폐쇄시켰지만, 철거민들은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이 남게 됐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당시의 이 상황을 언급하던 전국철거민협회(이하 전철협) 관계자는 “하루아침에 삶터를 잃은 철거민들은 그것만으로도 분통이 터지는데 이제는 대놓고 사생활침해까지 당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라며 “앞으로 이런 일들이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 말했다.
또한 인천 영종도에서도 강제 철거가 발생하고 있다. 전국철거민협의회 등에 따르면, 인천 중구 영종도의 운남동교회 인근 일대가 강제 철거되면서, 철거민들이 교회 옆에 텐트를 치며 하루하루 연명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5월 부녀자 등이 잠을 자고 있는 숙소로 용역들이 무력으로 들어와 밖으로 내는 과정에서 인권침혜사례가 다수 발생했다는 것이 철거민들의 주장이다.
전철협 측은 올해 발생한 이들 사건에 대해 “법과 현실 앞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철거민들은 자연적으로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게 돼 또 다른 인권유린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대다수”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지켜야 하는 윤리나 법칙이 있는 법인데 우리 같은 철거민들은 사실상 그런 윤리나 법칙조차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철거민, ‘도시빈민’전락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철거민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대해 전철협 측은 현재 국가에서 만든 관련 법안에서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전철협 측은 “현재 철거민들에게 가장 악법으로 통하고 있는 것이 택지개발촉진법”이라며 전철협 측에서 이 법이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택지개발촉진법은 지난 80년대 중후반 만들어진 법안으로 ‘도시 주택난 해소를 위해 주택건설에 필요한 택지 취득·개발·공급 및 관리 등에 관해 특례를 규정함으로써 국민 주거생활의 안정과 복지 향상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제정한 법률’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이 법은 철거민들 입장에서는 좀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전철협 측은 “철거민들 입장에서의 택지개발촉진법은 정부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강제로 토지수용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라며 “실제로 그 법안 때문에 철거민들 다수는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언제 내쫓길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철협측은 “사업시행사나 관련부처에서 고용한 용역들이 철거민들을 억압하는 것 또한 주거민을 철거민으로 만드는데 한몫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그 예로 지난 2009년 1월에 발생한 용산참사를 거론했다. 전철협 관계자는 “일명 ‘용산참사’라 불리는 용산4구역 사태만 보더라도 용역들의 횡포 때문에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다”며 “사업시행처가 관련 예산을 받으면 그 예산으로 철거나 개발하는데 우선 투자를 하지 않고 용역인부들을 고용해 어떻게 해서든지 거주자부터 몰아낼 궁리부터 먼저 하니 이건 누가 보더라도 잘못된 관행”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전철협측은 “용산참사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며 “그 당시 사건현장에서 사망한 철거민들만 조금씩의 위로금을 국가로부터 받았을 뿐, 아직도 투쟁 중에 있는 용산 1·2구역 철거민들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답답할 노릇”이라 말했다. 또한 전철협 측은 “강제철거 지역으로 언급되고 있는 관악구 봉천12-1구역에 남아있는 17가구들은 최소 600∼1400만원의 주거 이전비조차 받지 못해 이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국가는 재개발만 장려?”

각 도·시에는 재개발과 관련한 구역을 따로 조성해두고 있다. 이를테면 ‘은평뉴타운’이나 ‘길음뉴타운’과 같은 곳이다. 이들 뉴타운들은 재개발 확정이 나자마자 각종 투기꾼들의 몰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보상 및 취득에 관한 법률인 ‘공특법’ 적용을 받고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철거민들을 최악의 상황에 몰리게 하게 있다.
‘공특법’으로 인해 철거민들이 너무나도 낮은 금액의 이주대책비를 받고 있다고 전철협은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철협 측은 “실제로 공특법을 적용한 이주대책비로는 어디론가 이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꿈일 뿐”이라며 “ 때문에 뉴타운 정착율은 10%도 되지 않을 정도다”라고 밝혔다.
특히 정착율이 10%도 못 되는 이유 중 하나를 꼽는다면, 소형주택 의무비율 등 규제가 완화하면서 부동산 투기가 극심해지고 추가 분담금을 감당하지 못한 원주민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치솟는 분양가에 원주민 재입주율은 10%대에 그쳐 ‘가진 자들을 위한 뉴타운’이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뉴타운 문제를 두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3년 뒤 머리가 벗겨진다면 뉴타운 때문이다” 할 정도로 각종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같은 문제들이 사회적 병폐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 전철협 측의 주장이다.

정치인들 선거철에만 관심

전철협은 철거민들을 규제부터 하려드는 서울시 등에 대해서는 “우선 하루하루 철거지역들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서울시에서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비롯한 문제점들을 파악하지 않고 있다”며 “심지어 행정부처에서는 철거민들로 구성된 대책위원회까지도 불법으로 간주하는 반인권적 행위를 서슴치 않으며, 경찰에서는 공권력을 등에 업고 용역업체나 관련 사업시행처 편의를 우선적으로 봐주는 행태 또한 문제”라 지적했다.
또한 전철협 측은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철거지역을 돌아보거나 철거민들과 접촉할 뿐, 선거 기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한 태도로 돌변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기가 막힌다”고 덧붙였다.
전철협 관계자는 “이미 작고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철협에게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해 힘쓰겠다’ 밝힌 바 있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철거의 참사를 직접 목도해 눈물을 흘리면서 ‘강제철거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며 “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해 전철협 측은 “몇 년 전 UN에서 ‘강제철거’는 인권에 위배됨을 언급하며 우리나라에 강제철거를 중지하라는 서한을 보낸 적 있었지만, 현재 정부에서는 이 서한에 대해 검토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강제철거 “이젠 사라져야”

전철협 측은 강제철거와 관련한 대책마련이 시급함을 언급하다며 ▲철거민들이 터전에서 일군 ‘사회적 가치(자산)’를 정부에서도 인정해 줄 것 ▲행정관서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철거민들과 사업시행처를 동등하게 바라봐 줄 것 ▲개발지역에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합이나 단체를 개발조합과 동등하게 인정 주길 바란다 등의 요구를 내세웠다.
이와 관련 전철협측은 “강제철거의 역사가 80년대 이후로 계속 되풀이 될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투쟁과 협상으로써 하루빨리 이를 근절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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