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70)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는 소환 예정 시각인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나타나지 않고 국회에서 당 고위정책회의와 대정부질문에 참석했다. 박 원내대표는 참고인성 피혐의자 신분으로 소환 통보를 받은 지난 17일부터 ‘정치 검찰의 공작수사에 응할 수 없다’며 불출석 입장을 밝혀왔다. 이로써 검찰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朴, “금품 받은 사실 없어, 목숨 걸고 싸울 것”
본인의 정치적 생명 물론, 대선정국 변수로 등장
檢, 정치자금법 대신 알선수뢰 혐의 적용 가능성
체포동의안 상정 땐, 여야 극한 대립각 세울 수도
검찰의 출석 요구 거부
그는 또 “언론보도에 따르면 보해저축은행은 이미 말썽이 나고 있는데 본인이 검찰 수사와 금융감독원의 문제를 의뢰하면서 금품을 수수했다고 한다”며 “어떤 정치인도 말썽난 그 곳에서 로비를 위해 돈 받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원내대표의 이 같은 모습은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과 같은 국회의원 특권을 내세워 검찰 수사를 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받기보다는 정면으로 맞서 검찰에 굴복하지 않는 투쟁적인 이미지 계산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인천 연희동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건설현장사무소에서 가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저축은행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 등으로 19일 오전 10시에 대검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다.
박 원내대표는 “저는 오후 6시 넘어 변호인을 통해서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았다”며 “어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대선자금 고백이 터져 나오고, 내가 국회 정당대표 연설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검찰을 강하게 비판한 뒤 소환통보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정치인의 검찰 소환은 일정을 사전에 조율하고 발표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저에게는 아무런 일정 조절도 없이, 급조해서 소환을 통보했다”며 “이것 하나만 봐도 검찰이 얼마나 야당 죽이기에 앞장서 있는가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검찰발 보도에 의하면 특히 보해는 이미 말썽이 나고 있던 때 저에게 검찰 수사와 금감원의 문제를 의뢰하면서 금품을 줬다고 하고 있다”며 “저 뿐 아니라 어떠한 정치인도 말썽이 난 그 곳에서 로비를 위해서 돈을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밝혔다.
야권 운명 짊어져
그는 검찰 출두 여부에 대해서는 “이종걸, 천정배 공동위원장으로 구성된 검찰 정치공작 대책특위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박 원내대표는 본인의 정치생명은 물론, 대선을 앞두고 당과 야권 전체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과의 전면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면 박 원내대표의 혐의는 무엇인가? 박 원내대표는 솔로몬저축은행과 보해저축은행에서 1억원대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원내대표의 혐의 중 임석(50·구속기소)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2008년 4월 18대 총선을 앞두고 받았다는 수천만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임 회장이 선거 직전에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점에 비춰 구체적인 청탁을 했다기보다는 유력 정치인에게 주는 '보험료' 차원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보해저축은행 측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를 놓고는 검찰 내부에서도 적용 법 조항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보해저축은행 오문철(60·구속기소) 전 대표에게서 2010년 중반 수원지검의 보해저축은행 수사를 막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박 원내대표에게 수천만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 내용은?
혐의가 확인되면 적용될 수 있는 법 조항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수뢰, 알선수뢰, 알선수재다. 특히 검찰은 상대적으로 혐의 입증이 쉬운 정치자금법 대신, 보다 까다로운 알선 수뢰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져, 확실한 물증을 잡은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표 측은 “정치검찰의 공작”이라며 소환에 불응한 것이다.
박 원내대표가 2010년 당시 법무부와 대검찰청 업무를 심의·감독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법사위원의 직무 범위에 대한 판단에 따라 구체적인 적용 법 조항은 달라진다.
검찰 수사가 법사위원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면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한 경우에 해당돼 특가법 제2조 수뢰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검찰 수사와 법사위원 직무 사이에 직접적 관련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면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다른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한 경우에 해당돼 특가법 제2조 알선수뢰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특가법상 수뢰죄와 알선수뢰죄는 수뢰액에 따라 최소 5년 이상의 유기징역, 최대 10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는 중죄다. 반면, 피의자가 공무원이라도 알선 내용이 직무 범위 밖의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만 적용할 여지도 있다.
솔로몬저축은행과 미래저축은행에서 6억원 안팎의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상득(77) 전 새누리당 의원에게 적용된 조항이 바로 특가법상 알선수재다.
불출석…檢 재통보 후 강제수사
한편 박 원내대표가 출석요구에 불응함에 따라 검찰은 다시 소환 통보를 할 방침이다. 하지만 추가 출석 요구에도 박 원내대표가 불응하면 곧바로 체포영장 청구를 포함해 강제수사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은 솔로몬·보해저축은행으로부터 각각 수천만원씩 모두 1억여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박 원내대표에게 이날 출석해줄 것을 통보했다. 이에 박 원내대표 측은 “검찰의 물타기·표적 수사에 응할 수 없다”며 “체포영장을 가져오면 소환에 응하겠다”고 응수, 사실상 출석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 원내대표가 소환에 불응함에 따라 검찰은 조만간 출석을 재차 요구할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일단 재소환 통보는 바로 해봐야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재소환요구에도 박 원내대표가 응하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 청구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회기 중인 현역 국회의원인 박 원내대표의 체포영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발부할 수 있다. 박 원내대표에 대한 체포영장이 청구될 경우 이를 접수한 법원은 법무부를 거쳐 국회에 체포동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의장은 이를 표결에 부쳐 과반이상 재적, 재적인원 중 과반이상 찬성표가 나올 경우 통과된다.
이행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