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안녕, 모스크바'
연극 '안녕, 모스크바'
  • 전명희
  • 승인 2005.06.0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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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자들이 가슴으로 부르는 희망 노래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다. 누군가 많이 가지면 누군가는 가진 것을 빼앗기게 마련이다. 1980년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모스크바. 외국인들에게 좋은 면만을 보여주기 위해 거리 청소가 감행된다. 매춘부, 알코올중독자, 부랑자, 정신병자 등은 외곽 지역의 임시 숙소에 격리된다. 연극 ‘안녕, 모스크바’는 이 임시 숙소에 모인 이들에게 시선을 모은다. 사회가 감추고 싶어하는 사람들. 개성도 각각, 아픈 사연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어둡고 침침한 임시 숙소에 모인다. 어머니가 항구의 창녀였기에 ‘자연스레’ 창녀가 된 로라는 늘 거짓말로 자신을 꾸민다. 안나는 아이들을 보호소에 맡긴 채 알코올 중독에 빠진 늙은 창녀. 알렉산드르(샤샤)는 천재 물리학자지만 정신병자가 됐다. 마리아는 자기를 믿어주지 않던 어머니를 떠나 몸을 팔다가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된다. 숙소 관리자 발렌치나의 아들이자 경찰인 니콜라이는 그런 마리아와 사랑에 빠진다. 고압적으로 사람들을 관리하던 발렌치나라고 상처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그는 바람을 피우며 속을 썩이다가 미쳐버린 남편을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아들에게 모든 것을 걸고 살아왔다. 과거는 현재의 발목을 붙들고 미래마저 저당잡는다. 강인함, 웃음, 거짓말, 침묵으로 자신을 위장하려 할수록 상처는 더욱 아프게 드러난다. 어두운 숙소에서 부대끼는 와중에 남루한 현실과 쓰디쓴 과거가 모습을 내보인다. 이들은 때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상처를 보듬는 것도 또한 이들이 한다. 어두운 인생들이야 안에서 바닥을 뒹굴건 말건 바깥에서는 축포가 쏘아올려진다. 들뜬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세계인의 축제를 즐긴다. 두 세계 간 단절은 극복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통은 의외로 쉽다. 이들은 툭 털고 일어나 담장 너머로 올림픽 성화 봉송을 지켜보며 환호한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축배를 들 줄 아는 인생들이다. 극은 어두컴컴한 숙소를 배경으로 2시간 넘게 진행되지만 재미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흘러가는 대화에는 웃음과 삶의 진실이 빛난다. 극중 인물의 뚜렷한 캐릭터를 맛깔나게 표현한 연기자들의 연기가 극의 재미를 뒷받침하는 가장 큰 요소다. 다만, 별다른 사건 없이 지나치게 이야기가 길어져 지루한 감을 주는 부분도 있다. 러시아 희곡작가 알렉산드르 갈린의 ‘아침 하늘의 별들’이 원작이다. 지구연극연구소 소장 김태훈이 번역·연출했다. 2004년 초연돼 서울연극제 연출상과 연기상을 받은 작품. 지난달 8일 막을 내린 뒤 다시 무대에 올라 오는 26일까지 재공연된다. 대학로 아룽구지 소극장. (02)76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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