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전 인사수석 盧에 직격탄 왜?
행담도 개발과 관련 논란을 빚고 있는 서남해안개발사업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에게 일을 맡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행담도 및 서남해안 개발사업과 관련한 의혹 중 하나는 과연 서남해안 개발사업이라는 '큰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였나는 것이다. 그러나 서남해안 개발 사업이 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착수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정찬용 전 인사수석, 문정인 전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정태인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 등이 관련된 이 개발사업의 '배후'는 사실상 노 대통령인 셈이다.
이는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낙후된 지역 개발을 위한 사업임을 내세워놓고 국가균형발전위원회나 관련 부처를 제쳐놓고 업무와 무관한 인사수석에게 일을 맡겼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인사수석은 관련부처 등 공식라인을 제쳐놓고 비공식 자문 그룹을 동원해 일을 추진, 국정이 '시스템'과 무관하게 운영됐다는 점에서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낸 부분이다.
정 전 수석은 일부 언론을 통해 지난달 31일 "인사관련 보고를 하러간 자리에서 대통령이 호남출 신인 나보고 일을 맡아달라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통령이 서남해안 개발사업을 명시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낙후되고 소외 된 남해안 발전 필요성을 지적했다"고 말해 노 대통령의 개입 사실을 폭로했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정 전 수석은 행담게이트가 일파만파 확산되는 가운데 노 대통령을 저버리면서 까지 직격탄을 대통령에게 날렸을까
정 전 수석은 교육부총리 임명 파문의 책임을 지고 청와대 입성 1년 11개월 만에 퇴진했다. 그는 청와대 시절 노 대통령의 인사철학을 충직하게 실천해왔던 사람이다.
당시 노 대통령이 정 전 수석의 사표를 수리키로 한 것에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에 비유되기도 한 인물로 정 전 인사수석은 노무현 대통령이 찾아낸 ‘흙속의 진주’였다고도 전해지기도 했다.
이렇듯 노 대통령을 보필해 왔던 정 전 수석이 이제는 노 대통령의 대립의 각을 세우며 개입사실을 폭로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靑 “대통령이 정 수석에 서남해안 구상 주문은 사실”
청와대는 지난달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정찬용 전 수석에게 서남해안 개발사업을 지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과 정 수석이 몇 차례 보고를 받고 논의한 것은 사실이고 대통령이 서남해안 개발이라는 큰 구상을 그쪽 지역 출신인 인사수석에게 여론을 잘 수렴해 구상해보라는 주문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 수석이 그것을 지시로 받아들였다면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고 노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인정했다.
결국 이번 행담도 의혹에서 청와대의 정책시행에 대한 중대한 실수가 지적되고 있다. 국책사업에 아무런 검증도 되지 않은 민간 업자를 참여시키고 그에게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점, 그 과정에서 대통령 자문기구가 양해각서를 썼다는 점, 또한 사건의 해결보다는 청와대 인사들이 거짓말을 해 왔다는 점 등이다.
중요정책에 있어서 전문성이 무시됐을 뿐만 아니라 ‘호남출신인 인사수석’에게 서남해안 개발사업을 지시한 노무현 대통령의 안이한 국정운영 자세는 향후 계속적인 비판 대상으로 남을 것이 예상된다.
김만수 대변인은 대통령의 지시와 관련해 “서남해안 개발사업이 낙후된 호남지역을 발전시키는 대단히 큰 사업으로 그 추진을 한 주체로 맡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인사수석 개입을 옹호했다. 그는 “다만 정 전 수석이 호남출신으로 호남 인사들과 자주 접촉하고 만나는 위치에 있으니 그런 차원에서 여론 수렴과 아이디어를 가다듬어 보라는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 "노 대통령 메시지, 대변인 통해 정 전 수석에게 전달"
김 대변인은 또 지난 25일 가진 정 전수석이 해명 기자간담회를 갖기에 앞서 노 대통령으로부터 메모를 전달받았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그 당시 전달된 메모의 내용은 '무리한 부분이 있다면 유감 내지는 사과의 뜻을 밝히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며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이정호 동북아위원회 비서관이 작성서 대변인을 통해 발언 중인 정 전수석에게 전달된 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보도된 내용은 정 전수석이 혼동한 것 같다"며 "메모 전달은 대통령이 지시한 게 아니고 대통령의 뜻과 취지를 윤태영 부속실장이 이해한 바를 민정수석실에 전달했고, 그 내용을 민정수석실에서 기자간담회에 앞서 이정호 비서관에게 반영했으면 좋겠다고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같은 청와대의 시인은 아무리 취임직후 노대통령이 '낙후된 호남의 발전'을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인사수석인 정찬용 전 수석이 단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50조원의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S프로젝트 등 초거대 서남해안 국토개발 사업을 맡도록 했다는 점에서 대통령 스스로가 업무영역을 무력화시킨 게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어 앞으로 커다란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정찬용, 왜 공개했나?
서남해안 개발과 행담도 개발과는 구별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업은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의 지시는 행담도 개발에 연루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청와대는 이 사실의 공개를 대단히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동북아시대위도 행담도 개발을 지원했기 때문에 “노 대통령이 행담도 의혹의 몸통”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수석이 노 대통령에 부담이 될 줄 알면서 이를 왜 공개했느냐는 곰곰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정 전 수석이 호남 민심을 끌어안기 위해 호남권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 개발사업(S프로젝트)에 호남 출신 이라는 이유로 노 대통령의 지시로 매달렸는데 이번 행담도 관련 사건이 터지자 노 대통령이 '나 몰라라'식으로 등을 돌려 분개했다는 분석이다.
행담게이트가 불거질 즈음인 지난달 25일 광주에서 청와대 춘추관까지 직접 올라와 자신이 자청한 행담도게이트 관련 해명 기자회견를 했을때까지만 해도 정 전 수석의 노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론과 언론들이 집요하게 행담게이트를 물고 늘어지고, 속속 이와 관련된 비리들이 까발려지면서 '노심'으로 움직였던 S프로젝트는 정 전 수석은 물론 그 아래의 심복인 정태인 전 경제비서관은 물론, 자신이 신임했던 김재복 행담도개발사장까지 줄줄이 사법기관에 불려나가는 기류가 형성되자 대통령에게 서운했다는 것이다.
결국 정 전 수석이 자신이 행담도 의혹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판단, 노 대통령의 책임 문제를 끄집어내다는 분석과 함께 “이번 일로 정 전 수석이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것”이라는 ‘배반론’도 조심스럽게 제기
되고 있다.
그러나 정 전 수석의 얘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반론’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정 전 수석은 “행담도 개발 문제는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며 줄곧 노 대통령과 행담도 의혹을 분리시키려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정 전 수석에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 전 수석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 공개한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이런 맥락에서 정 전 수석의 공개를 명예 회복 차원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청와대가 지난달 30일 “김재복 사장이 청와대를 9차례 방문했다”고 공개, “한 차례 만났다”는 정 전 수석의 말이 거짓말이 됐다. 정 전 수석은 거짓말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 대통령의 지시를 공개했다는 것이다.
◆정찬용은 누구인가?
이러한 정찬용 청와대 전 인사수석은 광주지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였다. 서울대 대학원 재학 시절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투옥됐다가 출소한 뒤 경남 샛별중 전성은 교장의 부친인 고(故) 전영창 거창고 교장의 도움으로 75년부터 2년간 거창고에서 강사로 근무했다.
82년 9월 거창YMCA 총무로 시민운동에 본격 뛰어든 그는 광주지역 선후배들의 요청으로 92년 광주YMCA 간사로 자리를 옮겼다. 2000년 4ㆍ13 총선때는 광주ㆍ전남 정치개혁 시ㆍ도민연대 공동 대표로 낙천ㆍ낙선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첫 인연은 96년 누리문화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4ㆍ11총선에서 낙선한 노 대통령을 광주YMCA로 초청, ‘바보 노무현’강연회를 개최하면서 맺어졌다.
지난 대선 당시 노 대통령은 당선 직후 광주에 내려와 지방분권 토론회가 끝난 뒤 정씨를 비롯한 5명의 지역 인사들을 30여분 면담한 자리에서 “인사보좌관을 맡아달라”고 요청,청와대로 입성했다.
그러나 정 전 수석이 청와대 입성 1년 11개월 만에 퇴진하게 됐다. 노무현 정부 출범 멤버인 정 수석은 청와대 참모로서 최장수 기록을 세웠으나 결국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사 파문의 태풍을 비켜 가지 못했다.
당시 교육부총리 임명 파문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정찬용 청와대 인석수석은 노무현 대통령이 찾아낸 ‘흙속의 진주’였다. 노 대통령이 박정규 민정수석과 함께 정 수석의 사표를 수리키로 한 것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에 비유되는 까닭이다. 그는 노풍(盧風)의 진원이 된 민주당 광주경선 때 막후에서 노 대통령을 도운 것 외에는 노 대통령과 별다른 개인적 인연이 없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2003년 2월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참여정부의 인사보좌관으로 발탁됐을 때 자연스럽게 `촌닭`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스스로도 이 별명에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고 언제든 `촌닭`으로 돌아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곤 했다.
걸쭉한 입담과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노 대통령의 인사철학을 충직하게 실천해왔다. 개각설이나 고위직 인사가 있을 때 전화를 걸면 서울대 언어학과 출신답게 알 듯 모를 듯한 선문답으로 일관한다. 지난해 말 사석에서 개각 규모를 물었을 때 "0석 이상"이라고 둘러친 그의 대답은 한동안 화제가 됐다.
그는 사람을 뽑을 때 차도 마시고 술도 먹고 놀이도 해보는 식으로 선을 봐왔다고 했다. 불모지 같았던 청와대 고위직 인사파일에 1200여명이 오르게 된 것은 정 수석이 발로 뛴 결과다.
정 수석은 자리의 힘 만큼이나 많은 질시를 받아왔고 실수도 없지 않았다. 4ㆍ15총선 때 출마하지 않아 노 대통령 측근으로부터 힐난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말 통합거래소 이사장 선임 파동을 놓고 청와대 압력설이 불거졌을 때 그는 "억울하다"고 항변했으나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관련단체장 임명때 "재경부 출신의 독식은 안 된다"는 그의 지론은 경제부처 관료들로부터 ‘전횡’이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참여정부의 고위직 공모제에 대해 스스로 문제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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