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낮 최고기온이 35도가 넘는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에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독거노인들은 이러한 무더위가 두렵기만 하다. 왜냐하면 무더위는 자연현상이지만, 돌보는 이 하나 없는 독거노인들에게 무더운 여름은 고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여름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결정적인 시간이다. 더구나 독거노인들은 경제력이 없기 때문에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가 있더라도 전기세가 부담스러워 아주 잠깐씩만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화장실도 공용이라 씻는 것조차 편치가 않다. 이처럼 열악한 주거시설에서 각종 질병까지 겪고 있는 독거노인들에게 무더위는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본지에서는 쪽방촌 실태를 살펴봤다.
서울, 3천5백여개 쪽방에 3천2백여명 거주중
거주 노인들, “가족과 연락 끊긴지 오래”밝혀
“노인들 ‘삶에 대한 의지’ 잃어버릴까 가장 걱정”
“쪽방촌 거주 노인 90%, 질병과 우울증 앓고 있어”

“안전사고에 무방비 노출”
현재 약 3,500개의 쪽방에 약 3,200명이 거주중인데, 쪽방은 보증금이 없고 이용료가 하루 7000~8000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주로 극빈층이 거주하고 있다. 그중 영등포구 쪽방촌은 서울시 쪽방촌 가운데 거주자가 4번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곳은 용산구로서 1,000명이 거주중 이고, 종로구 800명, 중구 700명, 영등포구 550명의 순이었다. 기자가 지난 8일 영등포 지역을 방문했을 때 쪽방은 주로 건물 1~2층에 위치해 있었고 대다수가 목조건물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또한 이 지역에는 건축물관리대장에 기록되지 않은 무허가 건물이 많았는데 현재 영등포 지역에는 97개동 약 540개의 쪽방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시설이 아주 열악하여 안전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때문에 화재 및 각종 안전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는데 안전대책이 시급해 보였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것 같은 무더위에 영등포 쪽방촌에 거주중인 독거노인들과 인터뷰를 했다. 방문했던 지난 8일은 낮 최고기온이 35도에 육박해서인지 거리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한산했던 모습이었다.
영등포 고가 밑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던 K할아버지(73). 한 눈에 보기에도 건강에 많은 이상이 보였고, 잘 씻지를 못해서인지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났다. 어쩌다가 여기 쪽방촌까지 오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50대까지 왕성하게 사업을 했지만 친구 빚보증을 섰다가 그게 잘못되어 여기까지 왔다”며 “3남매를 모두 결혼시켰는데 사업실패로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연락조차 안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병원치료 제대로 못 받아”

자리를 옮겨 돌아다니다가 만난 또 다른 L할아버지(63). 최근에 활동을 거의 안한듯한 모습이어서 그런지 상당히 수척한 상태였다.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청했더니 굳이 방으로 들어오라고 초대해서 들어갔는데 방에는 온갖 집기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 무더운 날씨에 심지어 냉장고도 없어서 건강이 굉장히 걱정됐다. L할아버지는 “여기 쪽방촌에 들어온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며 운을 뗀 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막노동을 비롯해서 안해본 일이 없다”며 말했다.
이어 그는 “여러 직종을 전전하다가 빚을 내서 조그만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것마저 실패하고 설상가상으로 병까지 얻었다”며 “약을 먹고 약기운에 취해서 하루종일 잠만 잔다”고 밝혔다. 가족들이 보고 싶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엔 “다들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지 연락이 끊긴지 오래”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지는 도움의 손길들

본지와의 통화에서 광야교회의 한 관계자는 “요즘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이때가 독거노인들에게는 가장 위험하다”며 “광야교회에서는 무료급식은 물론 각종 부식 제공과 아울러 독거노인들의 건강상태도 유심히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과 ‘행동하는 양심’ 등 각종 봉사단체와도 협력하여 구호활동을 한지가 벌써 7년이 넘었다”며 “이분들 덕분에 독거노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드릴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 기자가 서울시도 많은 구호활동을 하고 있지만 추가적으로 서울시에 바라는 점은 없는지 질문하자 “지금도 서울시가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인력을 지금보다 더 많이 충원해 줬으면 좋겠다”며 “또한 언론에서도 지속적으로 쪽방촌 문제를 다뤄줘서 독거노인들이 도움의 손길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서울시에서는 5개 쪽방촌 주민 3,200여명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5대분야 20개사업을 선정해 종합지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분야별로 살펴보면 화재·안전, 보건·의료, 난방, 생활편의시설, 자존감 회복·자활지원 등의 5개 분야가 그것이다.
그리고 사업별로 살펴보면 소방재난본부가 △화재경보시스템 유지관리 △소화장비 점검 및 유지관리 △긴급 피난장비 점검 및 유지관리 △전기안전점검 실시 △소방시설 정기점검 및 소방교육 실시 등을 하고, 복지건강실 보건정책과와 건강증진과는 △전염병 조기검진 및 예방시스템 마련 △쪽방거주자 체계적 건강관리 △연중 상시 방역체계 지속유지 △시립병원·보건소·NGO간 협력 강화 등을 한다.
또 복지건강실 자활지원과는 △쪽방촌 집수리사업 추진 △응급보호방 운영 및 난방 지원 △자활사업장 운영 활성화 △생활편의시설 운영 활성화 △목욕권 지속 지급 △문화체험 프로그램 운영 △근로능력 확보 및 일자리갖기 지원 △신용회복(신용-Restart)지원 △법정지원 수혜대상 확대 △지역사회자원 네트워크 확대 △상담소 운영 활성화 및 환경개선 등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주거환경 개선 작업
광야교회가 운영하는 영등포 쪽방 상담소의 한 관계자는 “쪽방촌은 열악한 주거환경과 비위생적인 주변상태가 문제로 지적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린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곳 쪽방촌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들은 90%이상이 질병과 우울증을 앓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1300원짜리 소주를 마시면서 알콜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쪽방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변지역과 단절된 채 마치 고립된 섬을 형성하고 달동네에서 보다 더 힘들고 고달픈 삶을 꾸려가고 있다. 따라서 이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접근하여 도시문제로서 심각하게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시각이 제기됐다.
이에 교회를 비롯한 각종 자원봉사 단체들은 독거노인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말벗이 되어 주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서울시에서는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지난 6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영등포구 쪽방촌 리모델링 시범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력 협약식을 갖는 등 쪽방촌 거주민의 최저 주거 안전선을 마련했다.
또한 서울시에서는 이번 영등포구를 시발점으로 5대 밀집지역(종로구 돈의동과 창신동, 중구, 용산구, 영등포구)까지 리모델링 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속적으로 이런 활동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봉윤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