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연임이 힘겹게 승인됐다. 현 위원장은 논문표절 논란과 친정부적인 인권위 운영 등으로 야당과 시민단체, 인권위 내부 등에서 연임불가 압력을 받아왔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3일 현 위원장의 연임을 승인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 인권단체와 진보단체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는 등 향후 인권위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논문표절 논란·친정부적 운영 등 비판 여론 거세
연임, 정치권·시민단체 등 반발…향후 행보 관심
“지적과 질책 받아들여 국민 신뢰 쌓아갈 것” 밝혀
전남 출신, 한양대 행정대학원장 등 역임한 민법학자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재가를 받아 연임이 확정된 현병철(68)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소명의식으로 인권위원장직을 다시 시작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부여한 인권위의 임무와 역할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고 인권이 우리 생활 속에 더욱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변함없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약자 인권 보호 확대”

현 위원장은 “많은 비판에도 위원장직을 다시 수행하는 이유는 국가 인권기구의 위상을 더 확고히 하고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모든 사람의 일상에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 확대, 인권 교육을 통한 인권 존중 문화 확산, 북한 인권 개선활동 강화 등을 통해 내실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이 탄탄하게 뿌리내리려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인권이 판단 기준이 되는 ‘인권 주류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앞으로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 확대, 인권 교육을 통한 인권 존중 문화 확산, 북한 인권 개선활동 강화 등을 통해 내실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 위원장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와 논문 표절, 아들 병역비리 의혹 등이 제기돼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에서 연임 반대론이 거세게 제기됐지만, 이 대통령은 이날 그의 임명을 재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재임용을 승인한 청와대는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이 오늘자로 현 위원장의 임명을 재가했다”면서 “그동안 여기저기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현병철 인권위원장 내정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인 바 있다.
박 대변인은 정치권에서 현 위원장의 임명을 반대하고 있는 데 대해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고, 제기된 의혹이라도 업무수행에 큰 차질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현 위원장의 임명을 재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등 반발
그러나 현 위원장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부동산 투기와 논문 표절, 아들 병역 특혜 의혹 등에 대해서는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아 향후 정치권에서 임명 강행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연임 강행과 관련 현 위원장을 위증혐의로 고발키로 하는 등 민주통합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후보인 박준영 전남지사는 13일, “국민 대부분이 반대하는데도 임명을 강행한 것은 국민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라며, “이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까지 ‘불통정권’을 자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미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과 자격 논란에 휩싸였는데도,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철저한 독립성을 실현해야 할 자리에 재임명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하겠다는 태도”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국가인권위원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 3년 동안의 노력 끝에 만들어져,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구로 발돋움 했으나 이명박 정권에서 식물 인권위로 전락했다”며 “이 대통령은 임명을 즉각 철회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전남 목포)도 14일 원내대책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현병철 연임으로 대한민국 인권을 끝났다”며, 민주당이 현병철 위원장을 중앙지검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여야가, 400여명의 법학자가, 시민단체가, 국민이 반대를 했지만 기어코 이명박 대통령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연임시켰다”며, “대한민국의 인권은 이로써 끝났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런 오기 인사에 대해 민주당은 오늘 국회 운영위원회 민주당 소속 12명의 의원과 통합진보당 소속 한 명의 의원 등 13명이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허위증언 등의 사실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병철 연임반대 전국긴급행동’ 소속 활동가 10여 명은 지난 14일 오전 7시30분부터 서울 을지로의 국가인권위원회 1층 정문과 로비, 지하 1층 엘리베이터, 지하3층 엘리베이터를 막고 현 위원장의 출근을 막고 있다.
이들은 현 위원장의 연임을 규탄하는 피켓을 든 채 재임명 첫날부터 현 위원장의 출근 저지에 나섰다.
인권위 내부 갈등 봉합해야
여기에 내부 갈등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 위원장 연임을 놓고 인권위 내부에서 공개 비판까지 나왔을 만큼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을 반대해온 직원들에 대한 줄징계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인권위 내부에서의 비판여론은 강했다. 인권위 직원 10명중 8명은 “현 위원장 연임후 인권위가 우리 사회의 인권보호 및 증진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현 위원장은 인권분야 전문가가 아니어서 인권 관련 업무를 진행할만한 역량이 없다”며 “지금까지 직원들이 하는 일을 못하게 하는 역할만 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쌍용차 등 굵직굵직한 인권 현안이 산적해 있어 마음이 무겁지만 인권위에서 하나도 손을 안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며 “청와대에서 현 위원장에게 준 임무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또 “최근 현 위원장 연임에 대한 직원들의 반대 의원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며 “처음에는 현 위원장의 연임을 놓고 찬반의견이 팽팽했으나 인사청문회 이후 현 위원장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훨씬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 인권위 직원은 “여태껏 사퇴하라고 압박했는데도 끄떡없었는데 (이제 와서) 자진사퇴하겠느냐”며 “대선 전까지 별다른 수가 없다”고 밝혔다.
현 위원장에 대한 직원들의 반감이 클수록 인권위는 내부 갈등은 봉합되지 않은 채 설립 목적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원칙에 충실한 업무처리”평가도
현 위원장은 전남 영암 출신으로 한양대 행정대학원장과 한양사이버대 학장 등을 역임한 민법학자다. 30여년간 한양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주로 재산법과 노동법을 연구했다.
한양대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법대학장, 학생처장, 총무처장, 행정대학원장 등의 보직을 맡아 법학자로서 소신과 원칙에 충실한 업무처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목표가 설정되면 이해관계자뿐만 아니라 부하직원들과도 충분히 의견을 나누는 방법으로 조직의 역량을 결집해 사업추진에 따른 각종 장애요인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능력도 인정받았다.
지난 2009년 7월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된 그는 3년의 임기를 모두 소화했다. 하지만 2009년 임명 직후부터 자격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인권 관련 연구 경력이나 활동이 거의 없다는 이유였다.
재임기간 중에는 인권위가 친정부적 성향으로 바뀌면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인권위는 피디수첩 사건(2009년), 용산사태(2009년), 한진중공업 사태(2011년) 등 정권에 부담이 될 만한 인권 이슈가 제기됐을 때 안건을 부결시키고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다.
현 위원장 재임기간 중 유남영 상임위원, 문경란 위원 등이 현 위원장의 조직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고 사퇴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과 교수를 비롯한 60여명의 전문·자문·상담위원들도 인권위를 떠났다.
이행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