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통합진보당 대표
강기갑 통합진보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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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직 사퇴·탈당·낙향…눈물의 의미는

통합진보당 강기갑 대표가 지난 10일 당 대표직 사퇴와 탈당, 그리고 낙향(落鄕)을 선언하며 눈물을 보였다. 사실상 정계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강 대표는 “국민여러분의 애정에 보담하지 못하고 진보정당 역사에 죄인이 된 저는 속죄와 보속의 길을 가고자 한다”며 “저는 이제 흙과 가족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고향의 품으로 돌아갑니다”라고 말했다.

“진보정당 역사에 죄인, 속죄와 보속의 길 간다”
“고향 품으로 돌아간다”…사실상 정계은퇴 선언
비당권파 탈당 러시…통합진보당 분당작업 빨라져
‘강달프’별명·농민운동 앞장·재선 국회의원 지내

강기갑 통합진보당 대표가 지난 10일 “진보당 내 신 당권파가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에는 그간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참여하지 않겠다”며 대표직을 사퇴함과 동시에 사실상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강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행유부득 반구제기(行有不得 反求諸己·행하다 목표를 얻지 못하면 자신에게서 책임을 찾으라)’라는 마음으로 분당을 막기 위해 마지막 기적을 희망했지만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며 “흙과 가족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고향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당 내분 사태를 수습하고 당을 혁신하라고 혁신비상대책위원장과 당대표의 책임을 졌던 저는 혁신과 단결이라는 양팔을 펼치며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진보당은 분당이라는 최악의 사태에 이르렀다”며 “책임을 통감해 오늘 당 대표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번 당 내분으로 인한 5.12 중앙위 사태를 겪으며 지난 8년간 저의 의정활동의 소신과 긍지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진보의 순결성이 진보의 발길에 짓밟히는 모습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며 “무엇보다 민심을 무시하고 국민을 이기려 하는 진보는 결코 대중정당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간곡한 호소도 무위로 끝나버린 지금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게 제 탓”이라며 “그동안 당원동지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지난날을 기억하며 이제 민주노동당에 이어져 온 통합진보당의 당적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중 눈물

강 대표는 “저는 물러나지만 대중적 진보정당의 꿈은 동지들께서 꼭 실현시켜주시리라 믿는다”며 “새로운 진보정치는 이기와 탐욕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성찰과 개혁이라는 광야로 향하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동안 강기갑을 사랑하고 아껴주시고, 때로는 혼내고 비판해 주셨지만 이 모든 것이 저와 진보정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음을 기억하고 있다”며 “저는 이제 흙과 가족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고향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이날 정계 은퇴를 선언한 강 대표는 감정이 격해진 듯 사퇴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훔치고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강 대표의 이날 선언으로 이미 한 축이 허물어진 통합진보당의 분당작업이 빨라질 전망이다. 권영길·천영세 등 비당권파 측 전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지난 11일 이미 탈당한 것에 이어 심상정·노회찬·강동원 등 비당권파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탈당했다. 여기에 참여계 당원들도 집단 탈당계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조만간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당권파 측도 민병렬 직무대행 체제를 수립하고 이상규 의원을 새로 당 대변인으로 선임하는 등 분당을 기정사실화 하고 당 내부를 수습하고 있다. 민병렬 최고위원의 직무대행 체제는 당권파로 분류되는 경기동부·광주전남 등과 함께 비당권파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울산·부산연합도 당에 잔류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신당권파 탈당 가속화

이처럼 통합진보당내 당권파와 비당권파는 남남이 되었지만 향후 양 측의 갈등과 대립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당권파 측은 비당권파의 ‘셀프 제명’에 대해 제명 무효 소송을 내는 등 법적 대응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는 지난 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원래 비례의원이 탈당을 하면 의원직을 잃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당을 살릴 분들이 그 자리를 받아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갈 거면 비례대표는 놓고 가라’는 의미다.

반면 이에 대해 서기호 통합진보당 의원은 지난 11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일 순 있을 것 같고, 정치적·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사유는 될 수 있지만 법적으로 큰 문제는 없다”며 “분당이 되면 당이 쪼개지는 건데 비례대표들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된다”고 불가피함을 강조했다. 또한 당권파 측은 이정희 대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대선 국면에도 적극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희 대표는 “통합진보당을 키우고 지키려 하시는 분들, 작은 기대라도 가지고 계신 분들에 대해 우리가 먼저 너무 움츠려드는 것 아닌가”라며 “다 함께 당을 살리는 것을 우선으로 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비당권파 측 일부 인사들은 이에 대해 “국민적 지탄을 받은 정당이 대선 후보를 내선 안된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이를 보면 대선 과정에서 진보정당의 역할에 대한 헤게모니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어쨌든 강 대표의 사퇴로, 지난 5월 이후 4개월여 간을 이어져 온 통합진보당 사태는 분당으로 그 결말을 맺었다. 비례대표 선거 부실·부정과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뒤집기 의총과 셀프제명 의총까지, 통합진보당은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다양한 구태를 보였다. 이번 사태로 인해 통합진보당은 물론 진보진영 전체가 피해를 입었고,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던 13%의 국민들은 큰 상처를 받았다.

각종 농민운동 선봉서 활약

강 대표는 1953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사천농업고등학교를 졸업, 농장을 일구며 평범한 농민으로서의 삶을 살던 강 대표는 1976년 당시 마산교구 가톨릭농민회를 만나면서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특히 그는 1989년 전국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전국의 농촌총각을 조직해 남녀 120여 쌍의 인연을 맺게 해준다. ‘털보 강기갑’ 이란 별명은 이 대책위원회를 통해서 얻게 된다.

그는 “농촌총각의 첫 번째 결혼을 주선할 때까지 머리카락과 수염에 손을 대지 않겠다.”라고 비장한 결의를 다졌던 것이다. 1990년 가톨릭농민회, 기독교농민회 등 각 부문 농민운동단체들이 규합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만들어지자 강 대표는 전농 경상남도 연맹 부의장, 전농 부의장 등으로 활동했다. 당 대표 경선에서 맞붙은 강병기 후보와는 전농에서 함께 농민운동을 한 사이다.

강 대표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며 현실 정치에 첫 발을 담궜다. 농민 후보 몫으로 비례대표에 당선된 그는 한미FTA 반대, 미국산 쇠고기 반대 등 농민의 목소리를 부각시키며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18대 총선에서는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핵심 실세 중 한 사람이었던 이방호 후보를 경남 사천에서 꺾는 최대 이변을 일으키며 재선에 성공했다. 통합진보당 원내대표, 대표 등을 역임하며 당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 한 사람이 됐다.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 등 각종 집회 현장을 다니며 대중들 앞에 선 그는 '강달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수염을 기르고 두루마기를 걸친 모습이 영화 '반지의 제왕' 캐릭터인 '간달프'와 닮았다는 이유다. 다만 지나치게 개혁적 성향 탓에 '폭력적'이라는 이미지도 있다.

지난 2009년 1월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던 강 대표는 국회 사무총장실을 항의 방문, 사무총장의 책상 위에서 뛰어 오르는 등 소동을 부렸고, 지난해 한미FTA 국회 비준 동의안 처리 과정에서는 야당 의원들과 함께 국회 외통위 회의실을 점거하기도 했다.

당내 계파 성향으로는 구민주노동당 출신이자 비주류였던 인천연합 소속으로 분류된다. 19대 총선에서는 남해·하동과 통합된 경남 남해·하동·사천에 출마했지만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대표 선출 직전까지 총선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에서 빚어진 부정경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혁신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돼 비대위 체제의 당을 이끌기도 했다.

이행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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