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후보가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지난 16일 서울 경선을 끝으로 마무리된 13차례 지역경선을 종합한 결과, 문 후보는 56.5%의 누적득표율로 결선투표 없이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2위 손학규 후보는 22.2%, 3위 김두관 후보는 14.3%, 4위 정세균 후보는 7.0%였다. 이로써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여는 새 시대의 맏형이 되겠다고 밝힌 문 후보의 대선을 향한 행보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경선 내내 불공정 시비와 갈등, 이로 인한 ‘감동 없는 경선’, 그리고 당 혁신 등 풀어야 할 과제도 시급하다.
“안 후보와의 단일화는 국민적 여망”
‘경쟁과 효율’에서 ‘ 상생과 협력’으로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분산… 정책은 여당이 주도하게
과감한 쇄신으로 변화 이뤄낼 터
문 후보는 이날 경기도 고양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경선에서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공식 선출된 후 수락연설에서 “두렵지만 무거운 소명의식으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직을 수락한다”며 “‘불통과 독선’의 리더십은 구시대의 유산으로, 권위주의 시대의 역사의식으로는 새 시대를 열 수 없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특히 “구시대의 문화가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다. 저 문재인이 변화의 새 시대를 열겠다”며 시대정신의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5년이 시대를 과거로 돌려놓았다”며 “지금 시대는 ‘경쟁과 효율’에서 ‘상생과 협력’으로 질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역사의 물줄기를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권과 반칙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특권층이나 힘 있는 사람들의 범죄는 더욱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며 “권력형 비리와 부패를 엄단, 재벌이 돈으로 정치와 행정을 매수해 특권을 키우지 못하도록 특별히 경계하는 한편 병역의무를 회피한 사람이 고위공직에 오르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새로운 시대로 가는 다섯 개의 문으로 △일자리 혁명의 문 △복지국가의 문 △경제민주화의 문 △새로운 정치의 문 △평화와 공존의 문 등 5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재벌 관련 제도를 확실히 정비하겠다. 재벌의 특권과 횡포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며 “복지국가를 위한 임기 중 계획은 물론 중장기 계획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통령이 권한 밖의 특권을 갖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책임총리제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고 정당책임정치를 구현하겠다. 정책은 여당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후보는 이어 “경쟁이 저를 거듭나게 했고 소명과 책무를 더욱 명확히 인식하게 했다”며 “이제 세 분 후보와 손을 잡고 정권교체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승리로 가는 길목에서 꼭 필요한 것은 우리의 단결”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는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는 “분단과 극복은 우리 민족의 과제”라며 “평화와 공존의 문을 열겠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한에 특사를 보내 취임식에 초청할 것”이라며 “임기 첫 해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철수와 단일화 확신”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안 후보와의 단일화는 꼭 필요하다”며 “안 후보와의 단일화는 국민적 여망”이라며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단일화를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 안 후보와 단일화 시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이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안 후보가 출마선언을 한 만큼 시간을 좀 드리고, 아름다운 경쟁을 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저는 민주당 후보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중심이 되는 단일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 후보에게 제안한 ‘공동정부론’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역할을 맡는지 하는 공학적인 말씀을 드린 것은 아니었으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며 “함께 손잡고 단일화 연대를 이뤄 정권교체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후보는 ‘안철수 현상’을 염두에 둔 듯 “정치권 밖에서 희망을 찾는 국민들이 적지 않은데, 저와 민주당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지만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며 “우리 당이 과감한 쇄신으로 변화를 이뤄낸다면 새로운 정치의 열망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고 역설했다.
풀어야 할 숙제 산적
문 후보가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직을 거머쥐었지만 그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당 화합과 혁신을 이루고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성사시켜 민주당만이 아닌 야권 후보로 정권교체를 일궈내는 과제가 그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다.
문 후보는 당장 ‘이해찬 대표ㆍ박지원 원내대표 역할분담’이라는 이ㆍ박 담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선 내내 불공정 시비와 갈등, 이로 인한 ‘감동 없는 경선’은 문 후보가 치유해야 할 숙제가 됐다.
당 혁신도 시급한 과제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야권 통합을 이뤘지만 혁신ㆍ쇄신에는 사실상 실패했다. 19대 총선에서 야권의 패배에는 단순히 뭉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새롭게 변화하고 쇄신하지 못한 데 대한 유권자들의 경고가 담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총선 이후에도 민주당은 인물과 정책에서 혁신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낡은 민주당’이란 굴레에 갇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 지지율이 침체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에 당의 중심으로 떠오른 문 후보가 어떻게 주도적으로, 과감하게 쇄신할지가 그의 리더십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 후보는 “기존의 정치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엄중한 민심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국민의 눈높이만큼 변화해야 수권정당의 믿음을 국민들께 드릴 수 있다”고 의지를 나타냈다.
총선 이후 뿔뿔이 흩어져 있는 야권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도 제1야당 후보인 문 후보의 몫이다. 또 다른 유력 주자인 안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는 대선의 최대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역시 야권 연대ㆍ통합이란 관점에서 풀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노무현의 사람 문재인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월남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난 문 후보는 경남고와 경희대 법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에는 ‘반유신’ 투쟁에 나선 운동권이었다. 그는 석방되기 무섭게 강제 징집돼 특전사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했다.
1980년 사법시험(제22회)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으나 시위 전력으로 판사 임용에서 제외됐다.
부산으로 내려가 변호사로 활동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부산지부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1985년에는 부산민주시민협의회(약칭 부민협)를 창립하고, 1987년에는 6월 항쟁의 주역이 된 부산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약칭 부산 국본)를 만들어 상임집행위원을 맡았다.
그는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한 6월 항쟁의 기억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고 저서 ‘운명’에서 술회했다. 노무현 변호사가 1988년 총선에서 당선되며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 이후에도 문 후보는 부산에 남아 시국ㆍ노동사건을 도맡았다.
그는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은 뒤 참여정부에 합류해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며 오랜 기간 노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노무현의 사람’이다.
노 전 대통령이 그를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소개한 데서도 알 수 있듯 그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신뢰는 매우 각별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2009년 갑작스럽게 서거한 뒤 줄곧 정치와 거리를 둬 왔던 문 후보는 지난해 6월 노 전 대통령과의 30년 동행을 기록한 ‘문재인의 운명’을 펴낸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 참여를 고민한 끝에 지난 4ㆍ11 총선에 출마(부산 사상구)해 당선된 데 이어 대권에 도전해 제1 야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이행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