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 계열사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가 총수의 딸이 소유한 빵집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며 판매 수수료를 대폭 깎아줌으로써 이익을 챙겨주는 등 부당내부거래를 자행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신세계는 그 동안 그룹 차원에서 총수의 딸이 소유한 업체를 노골적으로 지원해왔다는 게 공정거래위원회의 주장이다. 그러나 신세계는 이 같은 사실을 전격 부인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법적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재계 17위인 신세계그룹이 회장 딸(정유경 부사장) 소유의 베이커리 업체에 부당지원한 혐의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적발돼 41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과징금은 신세계백화점 23억4200만원, 이마트 16억9200만원, 이마트 에브리데이 2700만원 등이다.
부당지원, 그룹총수가 직접 지시
이번 부당지원은 신세계그룹의 이명희 회장과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이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에게 지시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재벌의 부당지원 행위와 관련해 이례적으로 총수가 직접적으로 개입했던 것이 밝혀짐으로써 세간의 빈축을 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가 매장에 신세계SVN(옛 조선호텔베이커리)을 입점시키면서 판매수수료를 다른 입점업체에 비해 크게 깎아주는 등 부당 지원했다. 신세계SVN은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안에 가게를 내고 빵ㆍ제과ㆍ피자 등을 파는 업체로, 정유경씨가 지분의 40%를 보유하고 있다.
계열사의 지원 덕에 SVN의 인스토어 베이커리 시장점유율은 2010년 47.4%에서 지난해 54.9%로 높아졌고 ‘슈퍼프라임 피자’는 업계 4위로 급성장했다. SVN이 부당지원 속에 성장하는 동안 대주주인 정유경 부사장의 배당금도 짭짤했다.
공정위는 “신세계그룹에 속한 ㈜신세계, 이마트, 에브리데이리테일(SSM) 등 3개사는 계열사인 SVN에 판매수수료를 낮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2009년 3월부터 올해 9월까지 총 1846억원을 지원했다”며 “이는 롯데 등 다른 유통업체가 같은 유형의 입점업체에서 받는 수수료율보다 10%포인트 정도 낮은 것인데,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받는 것은 공정거래법 23조에 있는 '부당 지원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이를 통해 신세계SVN은 총 62억원의 이득을 봤고 이 기간 정유경씨는 12억원을 배당받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공정위는 확보한 증거 중에 '그룹 지원으로 실적이 대폭 개선됐으며 앞으로 이런 추세가 지속되도록 할 것임(회장님ㆍ대표이사님 그룹 지원 당부)'이라는 문구가 적힌 회의록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2009년 그룹 사장단 회의록을 보면 신세계 경영진은 이마트 대표이사에게 “베이커리를 지원할 것”을 당부했다. 또 이듬해 6월 사장단은 “데이앤데이의 부실이 심화됐으니 활성화에 이마트가 많이 기여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표했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
공정위는 신세계의 부당지원으로 관련시장의 중소사업자들이 퇴출되는 등 골목상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점포수는 200여개 줄었으나 신세계SVN의 매출은 54.1% 늘었고, 피자사업의 경우 중소업체의 매출은 34%나 급감했는데 신세계SVN은 514%나 급증하며 업계 4위로 급성장했다. 반면 신세계SVN 때문에 관련 업계는 수익감소와 퇴출 등으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지난해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점포는 대폭 줄고 피자사업에선 중소업체 매출이 급감한 것도 그런 여파와 무관하지 않다.
신세계 관계자는 "신세계SVN은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이 고객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마케팅 차원에서 만든 회사"라며 "손해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빵 가격을 받고 있고, 판매수수료율을 낮춘 것도 빵 가격 인하를 위해서일 뿐, 총수 일가가 부당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당지원 행위를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법률적인 검토를 거쳐 향후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 관계자는 "확보한 증거 자료를 보면 신세계SVN의 실적 향상이 수수료 인하의 가장 큰 목적이었음이 명백하다"고 단언했다.
재벌의 빵집 경영은 동네 상권을 빼앗는다는 이유로 지난해 말부터 크게 이슈가 돼 올해 초 정부의 암묵적인 압박 속에 삼성과 LG가 잇따라 철수했다. 더불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 회장의 외손녀 장선윤씨도 제빵 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 4월 자회사 보나비가 운영중인 '아티제'를 대한제분에 매각하면서 커피·베이커리 사업에서 손을 뗐다. 장선윤씨는 5월 '포숑' 베이커리 사업을 운영중인 ㈜블리스 지분 전체를 영유통과 매일유업에 매각했다.
그러나 정유경씨가 지분을 대량 보유한 조선호텔베이커리는 신세계SVN으로 사명을 바꾸며 계속 빵집 운영을 해와 논란이 돼 왔다. 그 동안 신세계는 사업 특성상 철수는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대신 정유경씨의 40%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올해 초 확정, 다른 계열사에게 인수키로 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올 초부터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나오면서 지분 정리를 검토해왔다”며 "지분 매각을 검토하는 수준으로 방향, 수량 등은 정해져 있지 않으나 신세계 SVN 지분의 전량 매각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징계가 총수 일가의 영업관행에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세계, 공정위에 법적 대응 추진
하지만 지난 4일 신세계그룹은 공정위가 신세계SVN과 조선호텔의 판매수수료를 부당하게 낮춰준 혐의로 모두 40억61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과 관련해 "과도한 부당지원은 없었다"며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세계그룹은 “신세계SVN은 고객들이 백화점ㆍ대형마트의 절대 필요상품인 베이커리 제품을 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고객들의 편익 고려 차원에서 만든 업체로, 백화점 및 이마트의 집객효과를 위한 존재지 매출을 올리기 위한 업체가 아니다”고 밝혔다. 또한 “신세계SVN의 가격 결정권도 백화점 및 이마트에 있으며 매장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SVN의 영업이익율은 줄어드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신세계그룹은 또 공정위가 2009년부터 현재까지 4년간 총 62억1700만원을 부당지원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 이는 연간 15억5000만원 정도로 지난해 SVN 매출의 0.6%에 불과하며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부당지원’이라는 지적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골목상권 침해 등 관련 시장 경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여러 동종 업계의 사례를 감안하더라도 유사한 판매수수료율을 적용하고 있으므로 SVN이 유리한 쪽으로 부당거래를 했거나 과도하게 이익을 취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신세계는 '슈퍼프라임 피자' 사업의 수수료율을 5%에서 1%로 낮춰 부당 지원했다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이마트 자체 마케팅을 위해 기획한 상품으로, 마진이 낮아 특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