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뭉치 한전, MB정부의 민간 불법사찰 재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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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정치성향 조사에...여론 조작까지

 

밀양 송전탑 건설 갈등 등 최근 각종 개발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전과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전이 향후 ‘갈등관리’를 위해 개발 예정지의 주민들의 동향을 조사하고 여론을 관리하겠다는 지침을 만들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 우윤근 의원이 공개한 한전 '민원응대절차서'
    한전은 지역개발사업과 관련한 주민 갈등을 완화하고 해소할 수 있도록 2012년 4월부터 ‘민원응대절차서’를 제정하고 운영하고 있다. 15일 우윤근의원(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이 공개한 이 문서의 목적은 ‘정서적이고 감성적으로 민원을 응대하기 위한 절차 기술’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지역주민의 참여보다는 정치성향 및 의식수준 조사, 여론 동향 수시 체크 및 여론 순화, 우호적인 언론 상황 조성 등 한전의 치밀한 사전정지작업 및 사후관리대책이 담겨져 있어 ‘사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정감사에 참여했던 한 의원은 “그 정부에, 그 한전” 이라며 허를 찼다.

주민 정치성 파악 우선시 해

가장 큰 문제는 효과적인 지역민들과의 갈등관리는 위한다는 명분아래 ‘지역정서지도’ 작성을 의무화 했다는 것. 한전은 “주민과의 갈등을 풀기 위해 민원대책팀을 구성하고, 지역 주민의 정치적 성향 및 의식 수준, 각종 사회단체, 모임 등 여론 주도 단체에 대한 성향을 조사하라”고 명시했다.

이 문서에서 언급한 ‘주민의 정치성향을 조사’는 “찬성하면 애국자 반대하면 빨갱이” 식의 이분법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윤근 의원의 측근은 “정치성향이 다른 점을 파악해 이익을 취하려는 태도는 분명히 잘못됐다”며 “정치성이 달라도 다 같은 주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 것” 이라고 전했다.

‘민원응대지침서’에는 입지선정위원회 구성 시에는 여직원 1~2명을 참여시켜 사업을 홍보하라는 내용도 있었다. 한전은 “여직원의 책임과 의무는 전략사업 이해기반 구축 및 사업내용의 홍보, 위원회 활동 시 이해관계자와의 의견 조율”이라고 명시한 했지만, 이런 감성적 접근이라는 미명 하에 여직원들을 동원하고 있다는 질타를 받았다. 

한전의 오랜 장기, 유급 지원단 동원

‘유급 주부지원단 운영’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전은 지침에 “여론주도 효과가 높은 해당 지역 주부를 활용해 송전선로 건설지역에 대한 전력사업의 긍정적 이미지를 전파하고 홍보하기 위한 주부지원단을 구성·운영한다”고 밝혔다. 주부지원단은 20대 후반~50대 후반 기혼 여성 10명 내외로 구성 운영토록 했다.
주부지원단의 활동 내용 또한 구체적이다. 한전은 “건설 민원 예상지역에 대한 여론동향 파악 및 보고, 지역신문 독자 투고, 공사완료 이후 운전 중인 선로에 대한 주민 민심 모니터링, 전자계에 대한 주민여론 및 의식 변화 여부 파악” 하라고 명기했다. 이어 “주부지원단의 소속감과 사명감 고취를 위해 개발사업소장 명의로 위촉장을 수여하고 활동비를 지급하기로” 하고 “활동비는 시중노임단가(특별인부)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전은 “주부 모니터 요원 등은 때때로 활용하고 있으나 단순히 소비자서비스에 참고하기 위해서다”라고 해명했다.

앞서 마포에 위치한 서울화력발전소 조성을 두고 지역 주민들과 대치할 시 한전은 이보다 더한 방법으로 주민들을 회유해 여론을 조작한 전례가 있다. 마포구 당인동에 위치한 당인리발전소(공식 명칭: 서울화력발전소)이전에 대한 난관에 부딪히자 한전은 결국 2011년에서 2014년까지 발전소를 지하화하고 지상을 공원화 하겠다는 절충안을 발표했다. 이에 주민들은“서울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실험적 행위”라며 강력하게 반대 했고, 한전은 이러한 지역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맞춤형 뇌물 공략을 펼쳤다. 

초등학생에게는 크레파스를, 성인에겐 통닭을 사주고, 어르신들은 관광을 보내주는 등 비리성 뇌물 마케팅의 대가로 주민들에게 ‘당인리 화력발전소 지하건설찬성서명’을 받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한전은 당안리 발전소가 위지한 마포구 내의 교회에 수건을 돌리고 냉장고를 설치해 주는 파격적인 비리를 강행한 적 있다.

언론매체를 이용해 언론조작

한전은 언론매체라는 공론의 장을 이용해 지역주민을 설득하고자 하는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오히려 언론매체에 질타를 받는 자승자박에 빠졌다.

우윤근 의원이 공개한 문서에는 “지역내 우호적인 주민을 파악하고, 파급효과 및 영향력 있는 매체를 선정함으로써 입지선정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라”고 명시돼 있다. 또한 “언론매체와 우호적 여론 조성을 위한 이해관계자를 적극 활용토록 하라” 식의 구체적인 언론 활용 방안도 담겨 있다. 

우 의원은 “한전의 문건을 보면서, 과거 70~80년대 개발독재 과정에서 정보기관이 하부기관에 시달하는 일종의 ‘사찰 지침’ 같다는 느낌이다”며 “한전이 ‘사람 중심의 갈등관리 방안’을 만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지역 유지들을 동원하여 돈 줘가며 부정적인 여론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작태를 벌이고 있다”고 강도 높은 비난을 했다.  이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침을 당장 폐기하고, 어떤 경위로 작성되었는지, 또 문건을 작성하고 승인한 사람들에 대해 한전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한국전력 관계자는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다는 취지인데 정치성향이나 여론순화 등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것 같다”며 “절차서는 담당자 개인이 업무를 정리한 것으로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김중겸 한전사장은 “정말 그런 내용이 있는 줄 몰랐다”며 “사죄하겠다. 즉시 폐기하겠다”고 답변하며 진땀을 뺐다.

주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

애초에 한전이라는 거대한 공기업에게 겸손, 예의, 도덕, 인권존중 따위를 바란 것이 무리였을까? 한전과 지역 주민간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전은 자신들의 앞길을 막는 자는 누구든 쓸어버리는 불도저 같은 그룹정신으로 빈축을 사왔다.

‘민원응대절차서’ 논란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사건이 있으니 밀양 송전탑 건설 분쟁이다. 한전이 지역주민과의 약속사항을 지키지 않고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지난 3월 건설을 반대하던 주민 이치우 씨(70)가 분신을 시도해 숨지는 사건까지 일어난 것. 당시 한전이 용역을 동원에 작업하던 논은 이씨를 비롯한 70대 삼형제가 농사를 짓던 곳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검찰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밀양 주민들은 한전으로부터 하청 받은 공사업체의 직원들로부터 수많은 폭언과 폭행을 당했고, 신고 있던 신발 밑바닥이 전기톱에 의해 생선포처럼 잘려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경남시민단체연대는 “하청업체 직원들은 밀양 주민여성을 성폭행 했고, 70~80대 노인들에게 ‘워리, 워리’ 하면서 손가락으로 개를 부르는 시늉을 했다”고 분노했다. 이와 관련 한전은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지만, 하청업자 관계자들은 “한전이라는 거대한 공기업의 뒷배 없이는 그렇게 굴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한전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 자료에서 “송전선로 건설로 인한 지역주민과의 갈등 원인은 개발사업의 계획수립단계에서 지역주민 참여가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소통부재의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비췄다

.여·야 의원들은 ‘민원응대절차서’를 두고 “토론, 정보공유, 쌍방향 소통 등을 거쳐 합리적으로 갈등을 풀기보다는 독재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쉽게 민원을 관리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 한전이 ‘국민’들에게 취할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한전은 17일 서울 삼성동 한전본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9.15 사태이후 정전 책임여부 △동절기 전력수급대책 △불합리한 의식조사 △한전 비리직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등에 대한 문제로 집중 질타를 받았다. 비리로 물든 한전의 개혁은 공기업 개혁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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