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후보 단일화와 관련 문재인·안철수 후보 측의 신경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양측 모두 압박의 수위를 높이며 거칠게 몰아치는 등 점입가경이다. 문 후보 측은 단일화 논의의 공론화를 위해 연일 불을 지피우고 있고, 안 후보측은 마이웨이를 외치며 문 후보측의 논의를 일축하는 모습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단일화보다는 문 후보와 안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다자구도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선 최대 변수인 문-안 단일화 문제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박 후보가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정치권 안팎에서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안-문 안개 속 기싸움 계속될 듯
안 후보는 지난달 19일 출마 선언에서 “정치변화와 정치혁신이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단일화 논의는 부적절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시사했다.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도 “단일화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고 같은 입장을 보였다.
물론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와 관련 “무소속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안 후보 측을 자극하며 단일화 논의의 여론화에 사활을 걸었다. 문 후보 역시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에 들어와서 경쟁하고 단일화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단일화 논의를 재촉했다.
반면 안 후보는 최근 세종대에서 열린 ‘새로운 변화, 새로운 미래’를 주제로 한 초청강연회에서 “우리가 새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며 야권 후보 단일화 조건으로 △협력의 정치 △직접민주주의 강화 △특권 내려놓기 등 3대 요소를 다시 제시했다.
그는 "헌법 정신으로 돌아가서 국회는 자신의 역할을 하도록 스스로 변해야 하고 대통령은 절대권력자라 생각하지 말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한번 어떤 것을 하겠다고 결심하면 당론에 따라 여당 의원들은 거수기가 되고, 야당은 그걸 막으려고 국회 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하고 몸싸움했다"고 비판했다.
직접민주주의 강화와 관련 "국민의 의사와 대의민주주의가 동떨어져 가고 있다. 자주 동떨어지면 이제부터라도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이 낡은 정치세력이 아니라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 진정한 정치신인을 원하는 것도 거기서 연유한다"며 "정당의 소수 권력자에게 집중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후보는 정치개혁을 이같이 밝히며 무소속 후보론을 거론하고 민주당 입당론에 확실한 선을 그었다. 그는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회에서 저와 우호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과정에서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것은 국민들이 만들어 주시는 것이라 생각하고, 실현불가능하거나 두렵거나 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4ㆍ11 총선 직후 양당이 국민에게 제일 먼저 약속한 것은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것이었다"며 "지금 내려놓은 특권이 있느냐, 어느 순간 쏙 들어가버리고 아무것도 내려놓은 특권이 없다"고 비판했다.
결국 단일화를 위한 안 후보의 입장을 명확히 밝힌 대목이다. 그러나 정당 개혁안이 여전히 모호해 문 후보와의 안갯속 기싸움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야권, 신당 창당할 수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단일화 흥행을 최적으로 만들기 위한 윈-윈 전략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각개전투를 통해 각 진영의 힘을 극대화하고 막판에 단일화를 통한 ‘빅뱅’ 구도를 완성한다는 시각이다.
단일화 여부가 야권의 대선승패를 가를 최고의 승부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안 후보도 끝까지 단일화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같은 속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작금의 양측 간 단일화 국면 주도권 경쟁은 단일화로 이어지기에는 너무 다른 방향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진보진영 원로 모임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 등은 이 같은 위기감을 느낀 듯 단일화 논의 압박을 위한 외곽조직 활동을 본격화하기까지 했다. 단일화 논의 공전상태가 장기화되면서 박-문-안 3자 구도로 대선을 치르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야권 내에서 급부상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단일화 여부는 내달 25일 후보등록일이 사실상 마지막 시간일 수 있다. 11월 25~26일 대선후보 등록 이후 단일화가 이뤄지면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특히 12월초로 예상되는 투표용지 인쇄 이후 단일화가 이뤄지면 대선 당일 투표용지에 사퇴한 후보의 이름이 기재된다. 지난 2010년 경기지사 선거 막판 심상정 진보신당 후보가 단일화를 위해 사퇴했지만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가 김문수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한 전철을 밟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두 후보 간 표 차이는 19만여표였는데 무효표만 18만표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이유로 민주당은 ‘신당 창당 카드’를 전격 제시했다. 이해찬 대표는 자신의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에 안 후보가 “할 수 있다”고 반박한 것에 “안 후보는 차라리 새로운 당을 만들자고 했어야 한다”며 “새 당을 만들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시민캠프도 ‘전당적 혁신운동’을 선언한 것 역시 신당 창당 예비수순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신당 창당은 시간문제로 단일화 이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안 후보 측 역시 “더 크고 새로워진 당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신당 추진은 단일화 논의와 병행될 것으로 보이나 실질적 창당은 단일화 이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 후보 측은 신당 카드가 처음 제기돼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민주당에 몸담았던 송호창 선거대책본부장 측 등에선 “더 크고 새로운 정당은 필요하다”고 공감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윤여준,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 강조
그러나 문재인 선대위의 경우 단일화 성립이 어려울 경우에 대비해 다양한 방안을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윤여준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은 "야권이 단일화가 안 된다 할 경우에는 아마도 유권자들이 투표 단계에선 전략적 선택을 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야권후보단일화가 안 될 경우도 상정하고 있냐는 질문에 "선거 전략을 짜는 분들이 당연히 단일화가 안 되는 경우도 상정하고 전략을 만들고 있지 않겠나 하는 짐작은 한다. 상식적으로 보면 단일화 가능성이 일단 높다고 봐야 될 것 같은데 뭐 반드시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죠. 그런 경우 같으면 지금 보면 세 분의 유력한 후보의 지지율이 대개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하잖나"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그러나 안철수 후보에 대해선 거듭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을 펴며 "무소속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책임 정치를 할 수가 없다는 거"라며 "국정 운영의 과정도 물론 힘들지만 그보다도 더 근원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국민이 국정의 운영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가 없어요"라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 탄핵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 "탄핵이야 헌정 중단이 되는데 그건 그렇게 쉽게 얘기할 건 아니다"라며 "그러니까 저는 정치 통치 과정도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정치를 할 수가 없다는 것 때문에, 이게 민주주의 제도에 어긋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을 강조했다.
한편 지난 15대 97대선(김대중-이회창-이인제) 당시 야권에선 김대중-김종필 단일화 논의 후 김대중 후보로 성사되면서 승리했다. 또 지난 16대 02대선(노무현-이회창) 경우 역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논의 후 노 후보로 결정되면서 대선에서 승리했다.
반면 직전 17대 07대선(이명박-정동영-이회창)에선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이인제 민주당 후보와의 범여권 후보단일화를 노렸으나 이명박 후보 독주 속에 제대로 진전되지 않았다. 결국 그해 12월 초 세 사람이 각기 출마하는 쪽으로 정리됐고, 이회창 후보도 무소속으로 나섰으나 이명박 후보가 대선 사상 가장 큰 표차로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