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16주년을 맞은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 두산이 4세 시대에 다다르고 있다. 국내 대기업 중 드물게 모범적인 ‘형제경영’을 보여준 두산이 ‘사촌경영’ 시대를 도래하며 4세들의 왕성한 활동 속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재계에서 ‘형제경영’으로 알려진 두산그룹은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을 모델로 한 ‘비즈니스 패밀리’를 정립해 나가고 있다.
그룹 총수를 물려받은 이가 단독 경영을 하는 것이 아닌 오너일가가 경영에 공동 참여하되 총수를 맡은 대표가 ‘오너십을 가진 전문경영인’ 역할을 하는 지배형태다.
박정원 회장 차기 회장으로 유력
두산그룹은 4세 중 가장 맏형인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50ㆍ사진)이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가 3세의 맏이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장남으로서 삼촌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에 이어 차기 회장으로 유력하게 지목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이 장자우선 원칙에 따라 가장 먼저 회장직을 다는 등 활발한 경영참여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두산그룹은 나이 순서대로 형제들이 돌아가며 그룹의 회장자리를 맡는 형제경영을 해왔다. 하지만 4세 때에는 사촌경영일 수밖에 없어 상황이 복잡하다. 재벌가에서는 형제간에도 경영권 및 유산 상속으로 다툼이 빈번하다. 이에 두산그룹은 향후 경영권 분쟁으로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확실한 정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형제보다 사촌이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지금까지는 형제경영으로 박용만 회장까지 수장자리가 이어져 왔지만 4세에는 사촌경영으로 바뀌는 만큼 지금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선 미리 경영권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이 지난 5월 22일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으로 선임된 것을 4세 경영의 신호탄으로 해석, 두산그룹이 4세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그룹이 4세 경영승계 준비를 본격화했다는 소문은 지난 3월 인사부터 무성했다. 당시 박정원 회장은 4세 가운데 유일하게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박 회장은 4세의 장자다. 게다가 오너 일가 중 지주사인 ㈜두산의 지분이 가장 많아 두산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두산그룹, 4세 경영시대에 돌입
두산가(家) 4세들은 거의 그룹 내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차남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은 지난 5월 정기 임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입지가 더욱 넓어졌다. 그리고 장녀 박혜원 두산매거진 전무는 오너 일가 중 유일한 여성으로 출판사업과 광고, 마케팅 등을 주도하고 있다.
박용성 회장의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과 차남 박석원 두산엔진 상무 또한 회사의 위기를 잘 넘겨가며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박용현 회장의 장남 박태원 두산건설 부사장은 지난해 승진을 통해 전략혁신부문장을 맡으며 두산건설의 사업전략을 총괄하게 됐다. 박용현 회장의 차남은 박형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이며, 삼남은 박인원 두산중공업 상무다.
지주사인 (주)두산의 지분은 3세대에서 4세대로의 지분 승계가 거의 완료단계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향후 3세대들이 보유하고 있는 나머지 지분도 4세들에게 증여나 상속 등의 방식으로 승계될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또 4세 경영, 즉 사촌경영으로 넘어가도 그 동안 3세들이 지켜왔던 ‘공동경영’의 원칙을 유지할 것으로 보여진다.
박정원 회장 다음으로 (주)두산의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4세는 박정원 회장의 동생,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이다. 박지원 부회장은 직함도 박정원 회장 다음으로 높다.
(주)두산의 보유지분으로 따지면 박진원 부사장도 3.04%로 많이 확보하고 있는 편으로서 박지원 부회장 다음 순위다. 어차피 나이도 1965년생인 박지원 부회장보다 적고 ‘형제경영’ 전통에 따라야 하는 만큼 박정원 회장과 박지원 부회장 다음으로 경영권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두산이 ‘사촌경영’ 체제이고 박진원 부사장이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장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영권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다만 10명이 넘는 4세들 사이에서 언제든지 내분과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형제보다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사촌지간이고 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숫자가 많아 경쟁이나 분쟁이 심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