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손학규. 예정된 아웃사이더의 반란
이재오-손학규. 예정된 아웃사이더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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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의 포커스는 대선 주자 아닌 킹메이커

정치개혁이 관통하고 있는 이번 대선 판도에 있어 유일한 마침표는 각 후보의 공략이 아닌 ‘연대’에 핵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특정정당의 대선 후보로 나온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통합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각자 기치로 내선 ‘국민대통’과 ‘용광로 선대위’는 대선 기간 중에 실천해 국민들 앞에 증명해야하는 첫 공약의 성격이 강하다. 정당에 몸담고 있는 두 후보의 이러한 ‘정치 시험’이 무소속 안철수 후보라는 저울에 의해 가름되는 가운데 이른바 마지막 퍼즐이라는 이재오와 손학규는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대선정국 구도 흔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텃밭인 부산, 울산, 경남(PK)과 호남의 정치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PK에서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50% 벽이 깨졌다. 지난 16~17일 서울신문과 여론조사전문기관인 엠브레인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는 문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49.9%의 지지율을 얻는데 그쳤고 무소속 안철수 후보를 포함한 3자 대결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43.1%,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21.1%, 무소속 안철수 후보 19.1%로 야권 후보들의 지지율 합이 40%를 상회했다. 리서치앤리서치의 23~25일 조사 결과에서도 박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의 대결에서 49.4%, 안철수 후보와의 대결에서는 50.1%로 집계돼 이전까지 PK에서 여야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7:3 구도가 깨져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반대로 민주당은 호남에서 지지율 70%의 벽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역대 선거에서 여야 지지 구도가 9:1이었다는 점에서 비상사태인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사정은 박근혜 후보 쪽이 나은 편이다. 지난 15일 이윤수, 안동선 등 20여명의 상도동계와 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인사를 영입한 박 후보는 호남의 한 자릿수 대의 지지율을 말끔히 끊어내었다. 한국갤럽 조사결과 지난 26일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에서 박 후보는 지지율을 20%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또한 지난 25일 선진당과 합당한 이후에는 충청권에서 박 후보가 50% 안팎의 지지율로 우위를 보이고 있으며 28일에는 국민행복당이 박 후보를 지지 선언하면서 보수대연합이 막바지에 이르러 ‘국민대통합’에 근접해가는 형국이다.

반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의 ‘용광로 선대위’는 참모 9인 등 친노인사들을 대거 퇴진시킨데 이어 ‘이해찬-박지원’ 정리라는 인적쇄신 과제를 최우선으로 종용받고 있어 좌초 위기에 놓여있다. 이는 안 후보 측의 정치쇄신 요구와 함께 최근 당 안팎에서도 문 후보가 ‘이해찬을 넘지 않고서는 대선은 힘들다’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어 이해찬과 박지원의 담합이 애초에 잘못된 한 수가 아닌가 하는 위기론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당파적 이해관계도 무용지물

이처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의 위기감은 ‘단일화 촉구’로 표출되고 있다. 문 후보는 지난 28일에도 김기식 미래캠프 기획단장을 통해 단일화에 대한 구체적인 단일화 원칙과 방법론을 내놓으면서 무소속 안 철수 후보의 답변을 촉구했지만 안 후보는 "지금은 정치 혁신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한 때"라며 즉답을 피했다. 단일화에 대한 두 후보 간의 줄다리기를 놓고 일각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가운데, 단일화에 원칙적으로 공감하는 두 후보가 단일화 시의 주도권을 놓고 연대의 모습보다는 공약에 걸친 전방위적인 신경전을 이어가면서 단일화에 대한 기대감이 상실되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며 민주당이 단일화에 목을 매며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이는 호남지역에서의 안철수 후보 우세 현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광주 MBC의 지난 6~7 일 조사 결과 안 후보가 55.3%로 31.0%인 문 후보보다 24.3%나 앞섰다. 여기에 지난 13~14일 민주당 산하 민주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서의 무소속 대통령의 선호도가 정당후보 대통령의 36.3%보다 앞선 44.5%로 나와 도리어 민주당이 주장하던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이 역풍을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는 물론 체감으로 나타나는 지역 내 여론 역시 안 후보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YMCA 전국연맹 윤장현 이사장은 물론 현재 시민사회진영은 문 후보측의 계속적인 접촉에도 불구하고 명목상 중립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난 총선에서 최인기 전 의원을 지지했던 나주시 민주당 탈당파 무소속 의원 대다수가 안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결정해 지역 정가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처럼 당파적 이해관계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재인 캠프는 민주당 아성인 호남지역에서는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에 밀리고 충청권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에게 몰리는 판세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르면 이번 주부터 이해찬 당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를 각각 충청과 호남에 상주시켜 지역 민심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재활용설이 거론될 정도로 위기감에 내몰린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안 후보 측은 다소 느긋한 분위기에서 민심을 포용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지역 내 노동계가 민주당과 문재인 캠프, 한국노총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와중에 안철수 후보는 지난 22일 자신의 캠프에서 노동계 지지선언을 발표함으로서 소외되어 있는 노동계를 끌어안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손학규는 문재인과 함께 하지 않는다.

‘국민대통합’과 ‘용광로 선대위’는 각각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의 합류와 손학규 상임고문의 합류를 마지막 퍼즐로 보고 있다. 이 의원이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게 되면 ‘국민대통합’과 비박, 친박이 어우러지는 ‘보수대연합’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반면에 애초 ‘이해찬-박지원-손학규’의 연대를 정점으로 보았던 문재인 캠프에서는 ‘이해찬-박지원’ 무용론에 시달리면서 애초의 ‘용광로 선대위’ 취지는 물 건너간 형국이다. 그만큼 문재인 후보 측에서는 손학규 후보가 절실하다.

그러나 손학규 상임고문은 지난 9월 22일 문 후보와 조찬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민주당 후보로서 자부심을 갖고 꼭 이겨 달라"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지 돕겠다”고 발언한 후부터 대외적인 활동을 중단한 채 외부와 접촉을 자제하고 있다. 실제로 손학규는 지난 23일에 가진 정세균 상임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와의 회동에서도 불참했다. 당초 이 자리는 친노 인사들의 선대위직 사퇴 이후, 문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비문주자 3인이 전부 모여 민주통합당의 화합을 상징하는 자리었던 만큼 이날 회동은 안하는 것만 못한 자리가 되었다.

문 후보 측은 “당초에 오늘 함께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연락에 차질이 생겼다. 곧바로 만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당내 관계자는 “손 고문이 연락이 닿지 않는 곳에 계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항간에서는 손 고문은 현재 전국의 산을 돌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민주당 관계자는 "손 후보가 문 후보와 손을 맞잡은 사진을 찍기 전에 충분한 선물과 명분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지난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모바일 투표 무효표 논란, 당 지도부 및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성 문제에 대한 앙금이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도 풀이했지만 일각에서는 손학규가 이미 ‘선택’을 했고 ‘첩거정치’를 통해 대선 막판 몸값 부풀리기에 들어간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손학규 정도 되는 정치거물이 이런 상징적인 자리에 불참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의사표시”라는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손학규는 문재인 캠프에 명단이 올라가 있지만 실질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것 역시 마찬가지로 맥락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손 고문을 도왔던 인사들이 속속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동안 손학규 캠프에 있었던 강석진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허영재 전 보좌관, 김경록 전 민주당 부대변인 등이 안철수 캠프로 이동한데 이어 최근에는 손학규의 선거본부 조직특보를 맡았던 이태흥 특보가 안철수 캠프의 정책팀장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정가와 시민사회단체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지난 민주당 경선 때 손학규 후보를 지지했던 한 광주시의원은 “당원으로서 불가피하게 캠프에 몸은 담았지만 마음은 안철수”라고 전하기도 해 손학규 자신은 물론 지지세력 역시 문재인에게 등을 돌리고 있음이 확인 되었다.

 

이재오는 박근혜에게 가지 않는다.

이재오의 행보는 보다 또렷하다. 지난달 22일 분권형 개헌추진 국민연합 창립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이재오는 확실한 독자노선을 밟아가고 있다. 여야 정치원로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촉구 성명에 탄력을 받은 이재오는 “전국적으로 분권형 개헌에 대한 300만 서명운동을 벌여 이달 말까지 청와대와 국회에 청원을 하고 각 대선 후보들에게도 청원서를 전달하겠다” 직접 밝히며 대선판에 뛰어들 것을 명확히 했다.

이날 행사에서 유신시절 분권형 대통령제가 시행됐었더라면 운을 뗐을 만큼 이 후보와 박근혜 후보는 골이 깊다.

장수장학회 관련 기자 회견 직후 이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한데 이어 “투표연장을 당파적 시작에서 볼 것이 아니다”라며 연이어 박 후보 측에 찬물을 끼얹었다.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후보를 도와주실 겁니까?"란 기자의 질문에는 "정권재창출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라의 미래"라며 박 후보와의 연대에 대해 사실상 ‘거절’했다. 실제로 이상일 대변인은 “이 의원에 대해서는 그간 박 후보 측이 백방으로 접촉하려고 했으나 현재까지는 잘 안 됐다”고 말해 박 후보와의 연대가 불투명함을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만약 이재오가 박근혜와 함께 하려 했다면 당 차원에서 진행했을 것이라며 그 동안 둘 사이의 관계를 비추어봤을 때 박근혜와의 연대는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연일 박근혜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보수층을 해체시키는 의도있는 행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탈박근혜 보수층은 안철수에 대해 호의적이다는 의미에서 이재오는 보수층에게 과거사에 연연하는 박근혜 후보를 정확히 판단하고 무조건적인 당파적 시각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손학규 두 아웃사이더의 같은 행보

대선을 앞두고 판을 뒤흔들 킹메이커로 꼽히는 이재오와 손학규는 그동안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행보를 보여 왔다. 운동권 출신의 60대 남성, 감옥생활과 교직에서 정계진출,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사로운 것부터 각각 5선의 4선 의원에 대선 후보 지지율 5% 이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 둘은 모두 ‘한일협정 반대투쟁’으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이재오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30년간 5번 투옥되었고, 10년가량 수감생활을 했으며 손학규도 청계천에서 빈민들과 같이 생활하는 등 10년 이상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와 빈민의 인권문제에 삶을 바쳤다.

또한 정치인이 되기 전 이재오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손학규는 정치외교학 교수로 각자 교육계에 몸담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 둘은 진보당과 보수당이라는 ‘철새’ 꼬리표를 달고 있는 점도 닮았다. 이재오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장기표 전태일재단 이사장과 1990년 당시 진보당인 민중당 창당에 참여해 6년간 진보당에 몸을 담았으며 손학규도 1993년에 보수집권당인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해 14년간 보수당과 함께 했다. 이 둘은 시대의 암흑기에는 개혁을 외쳤고 각자 교사로서 계몽을 실천했다. 그리고 현재 한쪽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으로 또 한쪽은 ‘첩거정치’로 대선 판을 내려다보고 있다.

삶에 궤적에 따라 이 둘의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의지’와 훼손되지 않은 '시대정신'으로 정당논리와 이해득실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재오 손학규 그리고 안철수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판도가 바뀌고 있다. 이른바 정치적 텃세는 경계를 잃고 있으며 온갖 데이터가 이상신호를 발산하고 있다. MB정권을 기폭제로 정치개혁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두 거물 이재오와 손학규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이재오는 박근혜에게 가지 않는다. 손학규는 문재인에게 가지 않는다. 그러나 둘 다 안철수에게는 갈 수 있다. 배신자의 낙인이 아니라 정치개혁의 기수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당으로 돌아가면 둘은 문재인의 손학규, 박근혜의 이재오가 된다. 애초에 당적을 초월한 인물들이며 둘 다 정당에 한계를 직시한 만큼 구태한 정당싸움이 아닌 새로운 흐름에 몸을 던진 선각자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선 막판까지 힘을 키운 두 킹메이커가 ‘각자의 정당에 손을 들어주는 정치적 퍼포먼스로 극적 드라마를 만들 것이냐?’, ‘시대정신에 따라 홀로서기 할 것이냐?’의 의미에서 본다면 이재오-손학규 갈 곳은 이미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조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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