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골목상권 파고드는 편법 '드럭스토어'
대기업이 골목상권 파고드는 편법 '드럭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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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올리브영, GS, 신세계의 노림수인가…약상점 간판 걸고 생필품·화장품 팔아

편의점보다는 취급하는 물품의 종류가 많고, 백화점보다는 지점들의 접근성이 좋아 편리한. 소비자들의 각종 니즈가 결합된 소매업계의 끝판왕이 있다. 바로 다소 낯선 이름 ‘드럭스토어’.

드럭스토어는 의약품을 중심으로 판매업을 하는 소매점으로 국내의 업체로는 CJ올리브영(CJ그룹 계열)이 대표적이다. 기존 시장에 진출해 있는 업체의 행보가 활발해짐에 따라 대기업이 연이어 드럭스토어 형태의 매장을 선보이고 있어 골목상권 침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드럭스토어'를 유통업계로 보지 않는 정뷰 규제 헛점 이용해 깃발 꽂기식 경쟁을 하고 있는 것.

드럭스토어 상륙 후 독버섯처럼 확산

국내 드럭스토어 시장은 1999년 CJ가 ‘올리브영’이라는 브랜드로 한국형 드럭스토어를 표방하며 시작되었다. 이어 지난 2000년 대 중반 GS왓슨스(GS·왓슨스 합작)와 W스토어(코오롱 계열)가 새롭게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에는 이마트가  ‘분스’라는 브랜드로 드럭스토어에 진출, 카페베네도‘디셈버24’ 2호점을 개설하며 드럭스토어 시장의 과열 경쟁이 예상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아직은 CJ 올리브영이 드럭스토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으나 대형 유통업체인 이마트가 뛰어든 이상 피 튀기는 시장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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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홍일표 의원(새누리당)에 따르면 2007년 전국 점포수가 80여개에 불과하던 3대 드럭스토어(CJ올리브영, W스토어, GS왓슨스)는 현재 384개로 4.8배 늘었다. 여기에 이마트‘분스’4개, 카페베네의‘디셈버투애니포’2개 매장이 출점해 국내 총 매장수는 390개로 급증했다.
 
이중 드럭스토어의 대표주자인 CJ올리브영은 점포수가 2009년 71개에서 현재 223개로 증가했고, W스토어는 26개에서 68개, GS왓슨스는 63개에서 93개 등으로 집계됐다. 매출 규모도 역시 급속하게 늘었다. 4년 전 매출 규모가 860억원에 불과하던 드럭스토어는 작년 기준 3.7배나 올라 3300억원에 육박했다.
 
이들 회사는 목표치도 점차 확대돼 CJ올리브영은 올 연말까지 점포수를 400개로 늘리기로 했고, GS왓슨스 역시 80개 매장과 10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잡고 공격적인 확장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의약품을 파는 곳?
 
드럭스토어(Drugstore)란 어원 그대로 의약품을 중심으로 판매업을 하는 소매점으로, 대중화 된 나라로는 미국·일본·홍콩·영국 등을 꼽을 수 있다. 완전한 의약분업이 시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의 드럭스토어는 기본적으로 처방전의 조제에 초점을 맞춰, 조제약과 건강 상품을 주력으로 하고 일용잡화·화장품·담배·책·음료 등을 판매한다.
 
반면에 국내 대부분의 드럭스토어의 판매 형태는 의약품 보다는 생필품·화장품에 치중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홍일표 의원은“국내 드럭스토어는 매장의 구성이 점점 생필품이나 식음료 구성을 늘리며 편의점과 슈퍼의 모습과 비슷해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CJ 올리브영의 경우 제품 구색의 60% 정도가 화장품 등 뷰티제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1년 말 기준으로 뷰티제품이 전체 수익의 48%을 차지하는 반면 헬스제품의 경우 겨우 7%만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CJ 올리브영의 구조는 드럭스토어, 그리고 Health& Beauty store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뷰티제품에만 치중된 국내 업체의 현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드럭스토어를 표방한 국내의 매장들은 왜 본연의 목적인 의약품 판매에 소홀한 것일까?
CJ 올리브영 관계자는“그 답은 국가별로 상이한 의약분업 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며“외국에서는 의약품을 주로 판매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약사가 아니면 약국을 개설할 수 없다’고 규정한 약사법 제16조 1항 때문에 판매가 제한된 의약품보다 화장품과 식료품을 주로 판매한다”고 말했다. 의약품은 병·의원에서 직접 조제를 하고 있어 일반 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종류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것.
 
CJ 올리브영 관계자는“드럭스토어란 정형화된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나라의 특성에 맞게 탄력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업태다”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러한 드럭스토어들이‘특성에 맞게 탄력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다. 대기업들이 운 좋게(?) 법의 굴레를 피해가며 골목상권을 침해 하고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뷰 규제 헛점 이용해 깃발 꽂기식 경쟁

작년 11월 SSM(대형슈퍼마켓) 규제법이 통과 됨으로써 대기업들의 상권침해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다. 하지만 최근 CJ, GS, 이마트 등이 앞 다퉈 드럭스토어 사업에 뛰어들면서 골목상권은 다시 떨고 있다.

드럭스토어는 대형 마트나 편의점과 같은 전통적인 유통업체의 분류에 들지 않아 사실상 SSM(대형슈퍼마켓) 규제법의 무풍지대에 놓여있다. 어떤 제품들로 매장을 구성하든지 간에 법적 규제를 받지 않으니 대기업으로서는 숨통이 트이는 격이다. 정부가 동네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오랜 고찰 끝에 SSM(대형슈퍼마켓) 규제법이라는 그물을 쳤지만 드럭스토어는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전국 142개 점포를 운영하며 강력한 유통망을 갖춘 신세계이마트마져 드럭스토어 시장에 뛰어든 것만 보더라도 대기업의 유통업계의 진로가 변경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대형슈퍼마켓이나 빵집, 커피숍 등에 몰두하던 대기업들은 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드럭스토어가 꽤 매력적인 아이템인것은 당연지사.

실제로 강남역에 있는 분스(신세계이마트)매장은 대기업의 작품답게 2개 층, 825㎡의 압도적 규모로 공을 들인 태가 난다. 매장 안에는 드럭스토어라는 말이 무색하게 주력으로 판매하는 화장품을 비롯, 냉동식품과 과일까지 갖춘 식음료 코너도 마련돼 있다.

드럭스토어에 튕겨 나간 골목상권들

지난달 22일 마포역에 CJ 올리브영 지점이 오픈했다. 이 매장은 그랜드 오픈 기념 세일 행사라는 글귀로 소비자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듯 분주하게 돌아갔다. 올리브영 맞은편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최모씨(41)는 올리브영 같은 대기업 상권이 들어선 후 가게의 매출이 떨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한다.

그는“음료나 스낵 등 간식거리 같은 단품을 찾는 손님의 수가 줄었지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익숙하다”고 체념한 듯 대답했다. 이어‘드럭스토어’에 대해 아냐고 묻자“(올리브영 매장을 가리키며) 제게 그거냐? 난 그런 거 모른다. 내 눈에는 대형슈퍼나 백화점 매장 같다”면서 매장 외관이 화려해 많은 소비자들이 저곳으로 향하는 거 같다고 답했다. 골목상권 자리가 나는 곳마다 대기업들이 파고드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저 사람들도 다 먹고살려고 하는 건데 어쩌겠냐. 우리 같은 영세업자들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라며 말끝을 흐렸다.

올리브영 매장 주변의 상권을 지켜본 결과 '돈으로 돈을 번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었다. 손님이 줄을 서 계산을 기다리는 CJ 올리브영과 기타 프렌차이즈 매장과는 대조적으로 최씨의 작은 점포를 찾는 손님은 없었다.

유통업계 전문가는“드럭스토어의 성장으로 업종 간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여러 부분의 영세업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약품·생필품·미용품을 죄다 판매하는 대형 드럭스토어가 등장하면 주변의 약국도, 슈퍼도, 화장품 가게도 우후죽순 격으로 폐업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드럭스토어는 각종 포인트 카드 적립·할인이나, 정기적인 자체 할인 행사를 함으로써 골목상권들은 가격 적인 부분에서 조차 경쟁 할 수 없다. 양과 질로 보아도 드럭스토어의 완승인 셈이다.

정체성과 책임감 필요할 때

본래 해외의 드럭스토어는 의약품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나 국내의 경우는 화장품이나 식료품 등을 중심으로 취급하는 성격이 강해졌다. 이로 인한 애매한 포지션은 필히 해결 되야 할 부분일 것이다.

평소 드럭스토어를 이용하는 박모씨(33세)는“솔직히 드럭스토어는 편의점과 크게 바를 바 없는데 SSM(대형슈퍼마켓) 규제법이 적용되지 않는 게 의외”라며“드럭스토어가 특별히 유용하다고 느낄 때는 한여름 활짝 연 매장의 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에어컨 공기를 접할 때 뿐”이라고 말하며 다른 업체와의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골목상권과의 상생과 협력을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 또한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지난달 31일 마감된 국감에서 홍일표 의원은“드럭스토어를 운영하는 대기업들은 자발적으로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신규출점 거리제한이나, 편의점이나 마트, 슈퍼마켓과 겹치는 상품군이 몇% 이상 들어오면 안 된다는 규정을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통업계 전문가는“정부는 중소상인이 피해를 입으면 그때서야‘소 잃고 외양간’고치듯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유통산업에 대한 면밀한 관심과 실태파악을 통해 피해예방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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