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박근혜 ‘지지’…득일까? 실일까?
이인제 박근혜 ‘지지’…득일까? 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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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표심 꽉 잡은 이인제, 대권의 향방 가를까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합당했다. 제3후보를 지원할 것처럼 보였던 이인제 선진통일당 대표는 새누리당과의 통합을 통해 박근혜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이인제의 행보는 과히 ‘광폭적’이라고 할 만하다. 이인제는 박 후보에게 비판적이었던 김영삼(YS)전 대통령을 11월 1일에 찾아가‘박근혜에게 호의적 발언’을 이끌어냈다. 때문에 박 후보 측은 이인제의 박근혜 지지가 ‘보수대연합’의 시발이 될 것이라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인제 지지가 오히려 박근혜에게 불리할 것이란 얘기도 돌고 있다. 당적을 무려 12번이나 바꾼 정치인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인제의 박근혜 지지가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시사포커스>가 추적해 봤다.

박근혜 후보는 대선 출마 이후, 과거사 문제로 시달려왔다. 5·16유신,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모두 역사에 맡기겠다’고 한 발언으로 박 후보는 곤혹을 치렀다.
그러다가 지지율이 하락하자 박 후보는 태도를 바꿔,“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정치발전을 지연시켰다”면서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위기에 부딪힌 박근혜에 다가선 이인제

그래도 과거사 문제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급기야 정수장학회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러자 지난달 21일 박 후보는 또다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의 전신 부일장학회의 실질 소유자였던 고(故) 김지태 씨 유가족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파문이 일었다.
박 후보는 김지태 씨를 부패인물로 규정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있었던 '정수장학회 강탈'을 부정했다. 박 후보의 기자회견에 대해 새누리당 내에서조차도 쓴소리가 흘러나왔다.
박근혜 남자로 분류되는 이상돈 정치쇄신특위 위원은 "박근혜 후보의 기자회견은 의외였다"면서 "과거를 털고 간다는 기대와 어긋났다"고 평가했다.
이재오 의원은 "5·16쿠데타와 유신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하면서 그 때 강탈한 남의 재산은 합법이라고 한다면 자질을 의심받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대선전은 ‘민주 대 반민주’, ‘유신 대 반유신’세력간의 싸움으로 변질됐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이인제 선진통일당 대표가 새누리당과의 합당을 발표하면서, 박 후보의 과거사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대선전이 보수 대 진보 대결로 급격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이인제의 박근혜 지지가 현실화 되자, ‘보수 세력’들이 박 후보를 중심으로 뭉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인제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

한편에서는 이인제 지지가 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유는 여러 번의 당적변경 때문이다. 철새정치인의 표본인 이인제 지지가 구태 정치인들의 결합으로 비춰져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것.
이런 여러 갈래의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은 이인제의 ‘정치이력’ 때문이다.
이인제는 6선의 중진 의원이고 최연소 노동부장관과 성공적인 경기도 지사를 거쳤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40%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결국 이인제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단기필마로 대선에 도전했다. 그가 대선에서 받은 표는 500만표였다. 
첫 번째 감행한 이인제의 정치실험은 실패도 성공도 아니었다.
보수우파 진영에선,'이인제의 출마로 인해 DJ정권이 탄생했다'며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차기대권’과 ‘당권’이라는 기득권을 내던진 소신 있는 결단으로 받아들였다.
이유는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전에서 2등을 차지한 이인제에게 차기대권과 당권을 잡을 기회가 주어졌으나 국민지지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대선전에 나선 것을 높이 산 것이다.
새누리당 내 한 노정치인은 이와 관련, “당시 이인제의 탈당을 철새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당시 경선은 불공정 경선이었고, 이회창 후보의 지지가 10%대로 떨어진 상태에서 국민지지도가 40%를 넘나드는데 무조건 경선에서 졌다고 출마를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후, 이인제는 대선을 통해 인지도를 넓히며 충청도의 대표정치인으로 커왔다. 한국정치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인제는 자민련행을 선택할 것으로 봤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차기 당권’과 ‘대권 후보’를 전제로 ‘러브콜’을 보냈지만 이인제는 호남당이라 불리는 민주당에 입당해 차기 대권을 노렸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전에 나섰지만 패배했다.
사람들은 이인제가 탈당하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 ‘경선불복’이란 꼬리표를 또 다시 달 경우 ‘정치생명’이 끝장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인제는 또다시 탈당했다. 가치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를 놓고도 이인제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갔다. 이인제를 비판했던 진영은 전형적인 ‘철새’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정치생명’이란 기득권을 담보로 한 소신 있는 선택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당선됨으로써 무려 6선 의원이 됐다.

안철수, 이인제 러브콜 외면

이인제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제3후보, 즉 안철수를 지지하는 발언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안철수 지지’로 갈 것이라는 예측들이 나왔다.
이인제는 7월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앙당에서 대선후보 기획단을 발족시킬 것이고, 박근혜 문재인 등 양대 세력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엘리트집단과 연대해서 이제 국민과 함께 제3의 리그를 만들어서 제3의 후보를 만들겠다”며 안철수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의 구상대로였다면 현재 이인제는 유력한 제3세력의 킹메이커로서 대선 정국을 주도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안철수는 이인제의 ‘러브콜’에 대해 외면으로 일관했다. 안철수는 문재인과의 단일화를 통한 야권후보가 더 승산있다고 판단, 이인제를 외면한 듯하다.
결국 갈팡질팡하던 이인제는 박근혜 지지를 선언했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선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점이다. 대선결과를 좌지우지했던 충청권 표심이 박근혜 지지로 쏠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선 결과를 보면 충청권에서 승리한 후보가 대권을 쟁취한다는 일종의 '법칙'이 존재한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이번 18대 대선에서 이인제가 가진 충청권 영향력을 볼 때, 박근혜가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실제로 선진통일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5석밖에 못 얻었지만 충남 22만5299표, 충북 14만1275표, 대전 2만3582표를 득표했다. 충청권에서는 만만치 않은 지지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인제 지지가 박근혜에게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인제의 현재 지지율은 미약하기 짝이 없고, 국민들은 그를 ‘철새’로 본다. 이인제의 박근혜 지지는 대선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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