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인 스위스 인증기관 SGS의 매출은 5조2000억원이다. 이에 비해 국내 1위 산업기술시험원(KTL)의 2011년 매출은 890억원이며 KTL과 국내 4대 시험인증기관인 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을 다 합쳐도 3000억원을 넘지 않는다. 여기에 수천개 민간인증기관의 매출을 다 더해야 1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까지도 대부분 KS(산업표준), Q(품질), HS(위생안전) 등의 국내용 인증마크보다는 해외 수출에 유리한 다국적사 인증을 선호하고 있다. 특히 세계시장 점유율 30%가 넘는 스마트폰도 전자파ㆍ안전ㆍ통신규격 인증을 외국기업으로부터 찾고 있는 실정이다.
인증기관 인력의 질 향상 시급
우리나라에는 각 부처별 산하기관을 비롯해 민간시험기관 등 2000곳이 넘는 인증기관이 무분별한 상태로 난립해 있다. 현재 12개 부처에서 110개의 법정 시험인증제도를 운영한다.
임의인증은 민간인증기관이 맡고 있는데, 담당기관만도 2100개가 넘고 정부가 관리하는 43개의 의무인증과 67개의 임의인증으로 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국내 인증기관들은 다국적사의 대리점으로서 만족하고 있는 곳도 많아 국내 시험인증산업의 경쟁력은 더욱더 약화되고만 있다.
이로 인해 국내 인증은 국제적 효력이 없고 공신력마저 약해 국내기업들마저도 SGS를 비롯해 미국의 UL, 독일 TUV, 영국 인터텍, 프랑스 BV, 노르웨이 DNV 등 글로벌기업의 시험인증을 찾고 있다.
게다가 국내 시험인증기관은 너무 난립해 있어 다국적기업들과 경쟁 상대가 되질 못하고 있다.
인증기관의 평가위원을 맡고 있는 김영민 씨는 “국내 인증이 해외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것은 인증기관들 스스로 실력을 키우지 않는 탓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인증기관이 인정받으려면 합병해서 규모를 확대하고 관련인력의 질을 향상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분야 해외인증제도 조사분석연구를 수행했던 용인송담대학교 구제길 교수는 “행정 편의적 발상에 의한 무조건적 통폐합은 오히려 세부 분야의 전문적 특성을 전달하지 못해 역으로 분야별 국내 시험ㆍ인증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심각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며 “세심한 검토가 추가적으로 더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시험인증제도로 해마다 2조원 해외로 유출
요즘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세계 교역량이 증가하고 중국ㆍ인도ㆍ브라질 등 신흥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험인증 시장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한 선진국들은 관세장벽이 사라진 후 시험인증을 하나의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까닭에 그 중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험인증은 농산물, 광물, 산업, 생명과학, 석유가스화학, 소비자시험, 자동차, 환경, 교역확인 등 교역 가능한 전 분야에 걸쳐 요구되고 있다. 세계적인 대형 시험인증 및 컨설팅 기관 육성이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제품과 서비스의 안전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규제 및 표준이 강화되고, 제품의 품질 및 성능에 대한 중요성이 증대되는 것은 자연스런 추세”라며 “국내 시험인증기관의 내수 점유율을 50% 이상으로 높이고, 해외 진출을 서둘러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순수 시장 측면에서 계산해도 해마다 2조원 정도가 해외로 유출된다. 또한 국내 기업이 해외 수출을 위한 표준ㆍ인증 획득에 들이는 절차와 시간 등의 간접적 영향까지 따지면 그 이상의 손실도 낼 수 있을 만큼 국가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엔 EUㆍ미국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국, 동남아국가 등도 신규 시험인증제도를 도입해 국내 수출업계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국내 중소ㆍ중견기업은 복잡하고 다양한 해외 시험인증규제현황 정보를 입수ㆍ분석하고 이에 적절히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수출지연이나 계약취소 사태까지 발생되고 있다.
국내 표준ㆍ인증산업의 문제점은 돈뿐만이 아닌 공신력의 실추로 존재가치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자칫하면 미래에 미국, 유럽의 다국적 표준ㆍ인증 기업들의 대리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다.
지금 기업은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기 위하여 의무인증을 받아야 하고, 공공기관 우선 구매 등의 인센티브를 받기 위하여 임의인증 받아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해외인증에 비해 국내인증은 국제적 경쟁력이 절대적으로 열세해서 수출뿐만 아니라 국내 판매를 위해 국제인증도 획득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두 가지 본원적 측면 외에도 인력이나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의 문제점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기술력 부족 및 인증기관의 신뢰성 부족은 국내 시험 인증기관의 규모에 있어서 영세성, 전문 인력의 부족에 따른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2012년 7월 정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시험 인증기관은 1,600여개이고 종사자수는 4만 명 정도다. 기관 당 평균 종사자 수가 24명, 평균 매출액이 8억 2천만 원 정도로 다국적 시험인증 기관에 비해 규모 및 전문 인력 측면에서 너무나 열악하다 할 수 있다.
한편 올해 7월 13일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은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9차 국가경쟁력표준화 위원회에서 표준ㆍ인증 중복규제를 개선하고 기업부담을 가중시키는 제도로 인식되는 국가 대표인증인 KS 인증을 대대적으로 손질할 방침임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