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유통업계 장악으로부터 소상인과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에 뜻을 모은 대기업 유통업체와 중소상인단체가 상생에 대한 논의를 위해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발족했다. 또 그 동안 상생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행태를 보이며 엇나가던 홈플러스가 중소상인과 합의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함에 따라 유통업계에 훈훈함이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합정점은 대형마트가 들어설 때 주변상권에 대한 매출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소상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제기된 탓에 함부로 개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중소 상인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 즉각 철회하라"
2010년 11월 ‘대형마트는 전통시장과 1㎞ 이상 떨어진 곳에 들어설 수 있다’는 내용의 유통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투는 어느 정도 제한됐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이 유통법이 제정되기 전에 입점 신청을 해서 영업허가를 받아 현재 합정점 개점을 추진 중이다.
주변 상인들이 뒤늦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반대의견을 전달했지만 이미 홈플러스는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한 터라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을 꺾지 않고 있다.
홈플러스 합정점은 전통시장인 망원시장과 670m 가량 떨어져 있고 망원동월드컵시장과는 890m 떨어져 있다. 이밖에도 합정시장 등 규모가 작은 일부 재래시장과는 불과 15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에 중소상인들은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예정지는 합정시장과 100m, 영진시장과는 15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며 “이는 유통산업발전법상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부터 1km 반경 내에 대형마트와 SSM 입점을 제한하는 법개정의 취지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홈플러스가 개점 예정인 합정동 주변지역은 2.3Km 내 홈플러스 월드컵점이 이미 영업을 하고 있다. 인근 망원역에는 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까지 영업을 하고 있어 같은 홈플러스 계열끼리도 이미 상권이 겹칠 때로 겹쳐지면서 출혈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중소상인 및 시민단체는 합정동 홈플러스가 입점할 예정지인 서울 마포구 합정역 앞에서 집회를 열고 “대형마트 주변의 영세상인과 재래시장은 엄청난 매출하락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경제민주화와 재벌 대기업 체제개혁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상태에서 재벌 유통기업들은 중소상인들과 상생을 거부하고 지역경제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며 “유통재벌들의 탐욕과 무분별한 진출을 전면적으로 막아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지키겠다” 밝혔다.
이들은 이 같은 요구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삭발하기도 했었다.
당시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홈플러스 측이 합정점 입점 계획을 철회할 때까지 지역 중소상인과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종교계ㆍ학계와도 연대해 입점 저지운동을 계속해서 펼쳐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홈플러스는 대기업 유통업체와 중소상인단체가 참여해 상생 방안을 논의할 ‘유통산업발전협의회’ 출범을 앞두고도 상생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행태를 보여 구설수에 올랐었다.
홈플러스 합정점 개점이 난국에 처해지자 중소기업청에 공문을 보내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고 전달한 것이다.
홈플러스는 유통업체들과의 상생을 위한 합의에 응했으면서도 골목상권과 중소상인들의 반발로 연기됐던 합정점 개점 추진 계획을 접지 않고 있다.
유통업계와 중소기업청 관계자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지난 10월 31일 중기청에 ‘합정점 오픈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홈플러스는 공문에서 “수차례 협상을 진행하는 등 상생 방안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상인들은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고 천막농성을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더는 중기청의 사업 일시정지 권고에 의한 손실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며 “어쩔 수 없이 영업을 개시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이에 중기청은 홈플러스 측에 “합정점 영업개시 계획은 사회 전반의 상생협력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답변공문을 통해 권고를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상인들과 시민단체들은 “정부기관의 권고까지 무시하는 태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하며 홈플러스 합정점이 출점을 강행할 경우 철회 촉구 집회를 열 예정이다.
홈플러스 측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상생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합정점 개점이 늦어지면서 손실이 계속 불어나고 있는 사실을 호소하고 정부 당국과 상인들의 적극적인 문제 해결 노력을 촉구하는 취지에서 공문을 보냈다”면서 “상인들과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유통업체-상인, 상생방안에 대해 합의
이런 가운데 체인스토어협회,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기업 유통업체 대표들과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대표들은 15일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발족하고 1차 회의를 열었다. 양쪽은 이날 회의에서 인구 30만명 미만과 20만명 미만의 시·군 지역에 대해서는 2015년까지 각각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출점을 자제하고, 대형 유통업체가 매달 이틀 휴무를 하되, 휴무일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사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정한다는 내용의 상생 방안에 대해 합의했다.
대형유통업체와 중소상인들이 출점자제·자율휴무를 합의했지만 그동안 양측이 극한 대립을 벌여온 홈플러스 합정점의 출점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다.
15일 지식경제부와 유통업계는 “대·중소 유통업체들은 현재 입점계약이나 점포 등록 등 이미 투자가 이뤄진 점포는 출점자제 대상에서 제외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해당지역 주민과 중소상인, 지자체 등 이해관계자와 협의를 거친 점포 역시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으며 이에 따른 구체적인 기준은 향후 협상에서 보완해 나가기로 했다.
따라서 합정점은 이미 투자가 이뤄진 점포에 해당되므로 출점 자제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정부는 그러나 홈플러스가 개점을 억지로 강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합의를 통해 현재 상생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리한 점포 개점보다는 합의를 통한 개점을 선택할 것이란 의미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지자체 및 상인들과 협의해서 결정할 것”이라며 “협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개점하지 않을 수 있고 강행 오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역시 지역상인들과의 원만한 협의릍 통해 개점 문제를 풀어나갈 방침임을 밝혔다. 지역상인들과 사업조정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합리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홈플러스의 고위 관계자는 “이미 공식적으로 4차례, 실무차원에서 10여차례 이상 상인들을 만나 협의를 진행해왔다”며 “조만간 협의점을 찾아 점포를 개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