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58명 사망자와 함께 묻어버린 진실
삼성, 58명 사망자와 함께 묻어버린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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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첫 희생자 그 후 5년

2007년 3월 6일 스물 한살의 꽃다운 소녀가 백혈병으로 죽었습니다. 소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속초의 택시가사였던 소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병마와 싸울 때 그저 운이 나빠서라고, 대학을 보내지 못한 자신 탓이라고 자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식이 들렸습니다. 소녀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동료언니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딸의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반도체 공장과 딸의 죽음이 어떠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딸이 더 이상 백혈병을 버티지 못하고 죽던 날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약속합니다. 반드시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겠다고 말입니다. -영화 또하나의 가족 중

 

2012년 8월 19일

84년생인 고 박효순씨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2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그 뒤 건강이 나빠져 2006년까지 근무하다 퇴사한 박씨는 간호조무자격증을 취득하고 2010년 초 취업, 몇 달 뒤인 2010년 11월 백혈병과 함께 대표적인 혈액암으로 꼽히는 악성림프종 4기 진단을 받았다. 박 씨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대변하는 반올림 홈페이지 익명게시판에 자신의 상태를 직접 문의하기했지만 건강이 급격히 악화, 결국 올해 8월19일에 숨을 거두었다. 꽃다운 29살, 백혈병 관련 58명째 사망자였다.

72년생인 고 이경희씨는 94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16년 동안 반도체 건식식각공정 설비엔지니어로 일했다. 2010년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뒤 올해 5월16일 사망했다. 박효순씨와 이경희씨가 사망하면서 삼성 백혈병 사태로 죽은 노동자는 이로서 58명, 고인이 된 두 사람과 함께 삼성전자 하청업체 노동자 3명도 산재신청을 했다.

이틀 뒤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최우수 삼성전자 부사장은 “피해자 가족들과 대화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라는 심상정 의원의 질의에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삼성은 그 동안 백혈병 관련 행정소송에서 자신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요청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해 왔으나 2011년 4월7일 2차 소송부터는 공단에서 소송고지를 하지 않았는데도 삼성전자 스스로 피고보조참가인을 자처하며 적극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이에 심 의원이 “소송보조참가인은 빠지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자 "대화를 통해서 검토해 보겠다"고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심공판일 11월 1일, 불과 보름을 앞둔 시점이었다. 결국 대화도 없었고 5차 변론에서 삼성은 서울대 조사결과 벤젠이 검출된 것에 대해 "그럴리 없다. 조사가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서울대 측에 분석데이터를 요구했다.  

 

2012년 2월 6일

올해 2월6일,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산보연)이 “지난 2009년부터 2011까지 3년간 반도체 제조사업장들을 대상으로 연구조사한 결과 1급 발암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산보연이 조사한 기업은 삼성전자, 하이닉스, 페어차일드코리아 세 곳이다.

산보연에 따르면 웨이퍼 가공라인과 반도체 조립라인의 일부 공정에서 백혈병 유발인자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이 부산물로 발생했으며 특히 피부암이나 폐암 등을 일으키는 비소는 노출기준을 초과해 발생하기도 했다. 이날의 발표로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과의 연관성이 입증되었다.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물질이 아닌, 생산과정의 ‘부산물’로 발암물질이 발견됐다. 부산물은 조립과정에서 사용하는 수지가 공정온도에서 분해되면서 발생된다. 그동안 삼성은 공장에서 사용하는 물질에만 초점이 맞춰,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 등은 1급 발암물질이므로 사용하지 않는다’며 산재를 인정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외침에도 백혈병 등 노동자들의 질병과 작업환경사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삼성은 “측정된 부산물의 양은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종업원의 건강과 관련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관리해나가겠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산보연이 발암물질 검출 발표에 관련해 “노출기준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다”라는 발표에 보조를 맞춰 사실상 언급검출량이 극미량으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발언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의 안전보건 컨설팅회사 ‘인바이런’에 작업환경 조사의뢰, 조사결과를 근거로 백혈병과 업무와의 관련성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바이런은 환경오염을 일으킨 기업들이 규제나 소송에 맞서기 위해 고용하는 대표적 컨설팅 회사였다. 연구결과 보고서는 결국 공개되지 않았다.

 

2011년 6월 23일

2010년 1월 11일, 김옥이, 송창호, 고 이숙영, 고 황민웅, 고 황유미의 유족은 법원에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소송을 신청했다. 소송 당사자인 근로복지공단은 “소송 결과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임을 감안하여... 소송 수행에 만전을 기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는 공문을 삼성에 보낸다. 삼성은 근로복지공단측 보조참가인 자격으로 대형로펌을 통해 재판에 개입했다. 그러나 2011년 6월 23일, 법원은 고 황유미, 고 이숙영 씨의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그간 삼성측의 주장과는 다르게 발병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백혈병이 발병하였거나 적어도 그 발병이 촉진되었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4년 만에 첫 희생자 2명의 산업재해가 인정된 것이며 세계적으로 반도체산업에 있어 직업병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IBM 등 세계 각국의 노동자들이 반도체 회사를 상대로 법정싸움을 했지만, 공식적인 직업병 인정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에 불복한 근로복지공단 그리고 삼성전자는 다시금 변론을 지원하는 ‘보조참가자’로서 재판에 참여했다.

지금까지 피해자와 가족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직업병 신청을 했지만 모두 불승인 처리됐다. 암과 같은 질병은 사람들이 흔히 걸리는 것이기 때문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것 자체가 병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정부와 삼성측의 주장과 달리, 미국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ACGIH)는 ‘노출기준’에 대해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반복적으로 노출돼도 건강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믿는 농도”일 뿐이며, “안전농도와 위험농도의 경계치가 아니”라고 밝혔다.

산업재해를 인정한 첫 판결이 나온 이후 8월, 삼성전자는 인도적 차원의 ‘퇴직 임직원 암 발병자 지원 제도’ 세부 방안을 발표했다. 반도체, LCD 공정에서 1년 이상 일하다 2000년 1월 1일 이후 퇴직한 임직원 가운데 백혈병, 림프종 등 14가지 암으로 투병하는 퇴직자에게 10년간 1억원까지 치료비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암 치료 도중 사망자에게는 사망 위로금 1억원을 따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내놓은 ‘지원 제도’에는 세가지 조건이 붙었다. 첫째, 90년대 퇴사한 근로자와 암 이외 희귀병에 걸린 퇴직자들은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둘째, 특수건강검진 대상자에게만 해당되며 셋째, 산업재해 인정과는 별개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라는 것이다. 산재 소송에 끼어들어 직업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삼성은 그 모순된 인도적 차원의 결정에 조차 산업재해 인정을 바라는 피해자들을 거부한 것이다. 또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에 붙은 조건들은 인도적 차원이라는 명분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당시 본지와의 통화에서 “회사 입장에서 직원들을 배려하는 입장에서 복지를 마련한 것이다. 누락된 부분이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지만 연관성이 없는 부분까지 회사가 책임질 순 없다. 직원들이 불평을 표하는 부분을 충분히 섭렵하고 협의를 통해 제도를 마련했다. 직원들을 위한 복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재직 직원의 경우에도 회사에서 따로 치료비와 위로금 등 복지를 해주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입사 2년 7개월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고 사망한 김 모씨의 부모는 당시 “삼성전자 측으로 부터 산재신청을 취소하고 소송을 취하하라는 조건으로 억대의 치료비용을 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반올림’ A 회원은 “삼성전자가 환자나 유가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한 적은 있다. 하지만 산업재해 신청은 취소해 달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심지어 제안을 받아들인 직원 유가족은 ‘반올림’과 연락을 끊은 사람도 있었다”고 밝히며 삼성의 이중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백혈병 사망자라는 명찰을 단 삼성의 또하나의 가족 58명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의 관계 입증된지 벌써 10개월
세계 최악의 기업 3위, 삼성전자

 

2012년 11월6일

지난 11월 1일, 유족 황상기외 4인(유족 이선원, 유족 정애정, 송창호, 김은경)의 항소심 제5차 변론에서 삼성은 서울대 조사결과 벤젠이 검출된 것을 인정하지 않아 결국 선고일자를 잡지 못하고 6차 변론을 앞두게 되었다.   

5차 변론이 있는 지 5일 후, 삼성은 지난 11월 6일에 있었던 진보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와의 백혈병 등 직업병으로 인한 사망과 관련 간담회에서 적절한 사과를 포함한 입장표명과 행정소송 등 법률적인 절차에 개입하지 말 것을 촉구한 심 후보의 발언에 대해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겠다 약속했다.

김종중 사장은 “그간 백혈병, 직업병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 대해 성찰하고, 전향적인 생각으로 사태해결에 나서겠다”며 “너무 논리적으로 따지다 보니 서로 간 불신, 감정 악화로 치달았고 그러다보니 정치적 사건으로까지 비화되는 계기가 되었다”며 그 간 이 사안에 대해 잘못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토로, 또 “삼성 위상이 있기 때문에 좀 더 배려, 역지사지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라며 방침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종중 사장은 “접점을 찾아 전향적으로 대화할 생각 가지고 있다”며 피해자와 가족들께 오해를 낳지 않는 방식으로 피해자와 가족들을 만나고 가족들과의 대화하는 과정에서 그간 일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대선이 끝난 후인 12월 27일, 무려 6번째 변론이다. 서울대 조사결과 벤젠이 검출된 것에 대해 "그럴리 없다. 조사가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서울대 측에 분석데이터를 요구했던 삼성이 과연 다음 변론에서 “대화로 풀겠다”던 약속을 지킬지는 미지수이다. 겉으로는 대화 시도를 말하며 정치인과 퍼포먼스를 보여주더니 정작 법정에서는 단 한치의 양보도 없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삼성의 태도는 올해 산재 승인을 받아낸 삼성반도체 재생불량성빈혈 피해사례 때도 똑같이 반복된 바 있다.

올해 1월 삼성은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등이 전세계 연인원 8만8천여 명이 참여해 선정하는 ‘세계 최악의 기업’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 지난 7월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삼성 백혈병 산재소위 구성안이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지난 1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근로자들이 질병의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지 못해 산업재해보상급여를 받지 못한 데 따른 조치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업무상 질병과 관련,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 책임을 근로자와 공단이 나누도록한 권고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거부의사를 밝혔다.

 

얼마 전 산업·환경 보건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직업환경보건국제저널 ‘IJOEH’에 한국인을 표지모델로 실렸다. 바로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2007년 23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한 황유미씨다. 한국 반도체산업의 작업장 안전 문제를 죽음으로 공론화했고, 유족들의 질긴 법정투쟁 끝에 지난해 법원에서 반도체공장 노동자로는 처음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당사자, 세손가락에 꼽는 세계 최악의 기업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한 또하나의 가족, 투자난항을 겪고 있는 영화 ‘또하나의가족’의 주인공  그리고 산업재해를 인정한 1심이 있던 지난 2011년 6월 23일로부터 지금까지 이름만이 재판장에 있는 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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