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부가 지난 20일 ‘자동차 연비 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으면서 2011년과 2012년 사후 점검 내용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그동안 업계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지식경제부는 연비를 공개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지식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업계의 양해를 얻어 점검내용을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지식경제부의 ‘2012년 양산 차 공인연비 사후관리 결과’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의 싼타페 2.2디젤2WD(DM)의 연비가 발표된 공인연비보다 오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심층 있게 살펴봤다.
국내 21개 차종 중 50%넘는 차량이 연비 오차
정부, 내년부터 전체 시판모델의 10%까지 연비검사
현대·기아차, 미국에서 7억7500만 달러 규모로 피소(被訴)
국토해양부·지식경제부, 새로운 연비 계산식 마련 계획
고쳐지지 않은 자동차 연비 부풀리기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판매량이 높은 21개 차종에 대해 사후 연비를 측정한 결과 무려 50%가 넘는 차량이 오차를 보인 것으로 나타나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지난 20일 국내에 출시돼 있는 총 748개 차종 중 21개 차종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이중 절반이 넘는 12개 차종의 공인연비(도심주행 기준)가 사후 측정연비보다 낮게 측정됐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현대자동차의 싼타페 2.2디젤2WD(DM)의 연비가 -4.38%의 오차율로 측정 연비가 공인연비보다 가장 낮게 나타났는데, 싼타페DM의 공인연비는 16.1km/ℓ 지만 사후 측정 연비는 15.4km/ℓ로 조사됐다. 다음으로 휘발유 모델인 BMW528i가 그 뒤를 이었는데 이 차량의 공인연비는 13.3km/ℓ이지만 사후 측정 연비는 12.7km/ℓ로 -4.34%의 오차율을 나타냈다.
그리고 르노삼성자동차의 QM5 2WD가 공인연비와 측정연비와의 오차가 -4.13%를 기록했고, 한국GM의 알페온2.0이 -4.04%, 중형 세단의 베스트셀링 모델인 기아자동차의 K5 2.0T GDI가 -3.57%, 르노삼성자동차의 뉴SM5가 -3.12%의 오차율의 순이었다.

이 같은 사후 연비 측정의 문제점에 대해 관련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 제작사들이 자체 측정 자료를 그대로 인정하기 때문에 연비검증이 적을 수 밖에 없다”며 “더구나 연비 5%이내의 오차는 아예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 검증대상이 더 늘어나면 지금보다 훨씬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내년부터 '연비 사후관리'를 강화하기로 한 정부
정부는 이 같은 사후 측정 연비의 오차율을 줄이기 위해 내년부터 ‘연비 사후관리’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이에 전체 시판모델의 10%까지 연비검사를 실시하고, 연비 오차도 현행 5%에서 3%로 축소시키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70개 이상의 차종에 대한 연비가 관리되게 되고, 또한 오차율을 3%로 낮추면 자동차 제작사들은 연비를 더욱 철저하게 관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자동차전문가들은 소위 말하는 ‘뻥연비’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지식경제부 에너지절약협력과의 한 관계자도 “출시된 차종 중 단 3~4%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것은 너무 적다는 지적이 많아 앞으로는 10%까지 조사 대상을 늘릴 것”이라며 “다만 인기 차종들 위주로 모델을 선정하기 때문에 조사 차량의 시장점유율로는 상당히 많은 차를 조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 연말까지 업계 의견 등을 충분히 반영하여 규제 강화로 인한 혼란을 최대한 줄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연비 과장’ 후폭풍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승인한 연비측정 과정에서 현대·기아자동차 모델의 평균 연비가 실제보다 높게 산출된 것으로 조사됐고, 이에 현대·기아자동차는 즉각 이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자동차는 곧바로 고객 보상 계획을 발표하는 등 신속한 대응으로 진화에 나섰지만, 미국 소비자단체인 ‘컨슈머 워치독’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지도부에 서신을 보내 최근 발생한 현대·기아자동차의 연비 과장 논란과 관련한 청문회를 열 것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즉각 오류를 시인했지만 그 후폭풍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소송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집단 소송 문제’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문제가 불거지자마자 사과의 의미로 800억원대의 보상안을 제시했지만, 이미 현대·기아자동차 차량 소유주 23명으로 구성된 원고인단이 현대·기아자동차의 보상안을 즉각 거부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 지방법원에 7억7500만 달러(약8435억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자동차는 평균 공인연비가 27MPG(리터당 11.4km)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6MPG(11km)로 약 3.8%의 오차율을 보였는데, 이에 대해 현대·기아자동차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연신 내비치고 있다.
1리터로 400m를 더 가느냐 마느냐의 차이지만 EPA의 주장대로 고의적으로 연비 과장을 한 게 아니라, 연비는 운전자의 운전 습관이나 연비측정방식 등 주관적 변수에 따라 오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미국에서 발생한 연비과장 사건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그동안 굳건하게 쌓아왔던 신뢰를 잃어버린 만큼 연말 정기인사에서 폭 넓게 ‘쇄신성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7년 전 연비계산 방법도 연비오차율 원인?
지난 23일 정부조사 결과에 따르면 SK에너지·GS칼텍스 등 국내 정유사들이 판매하는 연료 특성을 반영했을 경우 현재보다 자동차 연비가 평균 3~4%가 더 떨어진다고 나와 혼란이 일고 있다.
이는 정유사들이 세계적으로도 깐깐한 국내 환경 규제에 맞추려고 ‘연료 내 탄소 함량’을 줄이고 밀도를 낮췄지만, 국내의 연비 계산 방법은 17년 전 미국 기준에 맞춰져 있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연비를 측정할 때는 단순히 기름을 넣고 달릴 수 있는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차의 배기가스를 포집해 탄소량을 잰 뒤 다시 이 데이터를 복잡한 ‘연료소비율 산출식’에 대입해 최종 도출하는 방식으로 측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부조사결과에 의하면 이때 ‘연료소비율 산출식’에 포함되는 연료 성질 계수가 잘못되어 있다고 밝혔는데, 이와 관련 국토해양부 산하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지난 2년간 국내 정유 4사(社)의 휘발유·경유·LPG(액화석유가스)등의 시료 250가지를 분석한 결과 연료의 화학 조성이 정부의 현재 ‘연료 소비율 계산식’에 반영된 기준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 연료들 속의 탄소 함량이 95년 미국 측정치 기준보다 낮다”며 “미국은 연비를 측정할 때마다 새로 연비 특성을 적용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그렇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엄격하기 때문에 국내 정유사들이 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 탄소를 적게 포함되게 정제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번 정부조사결과에 의하면 종전에 알고 있던 국내 휘발유 화학 조성은 탄소 1개당 수소가 1.85개, 연료 1L당 탄소 함량이 640g이었지만, 이번에 새로 조사했을 땐 탄소 1개당 수소 2.06개, 1L당 탄소 함량도 613g으로 낮은 것으로 집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연비를 측정·관리하는 국토해양부와 지식경제부는 이 같은 연료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연비 계산식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정부도 이런 결과를 반영해 앞으로는 연비 계산식이 명시된 ‘자동차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과 ‘에너지이용합리화법 제17조’의 세부 규정을 개정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봉윤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