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임진년의 끝에서 임진왜란의 기억을 찾았다
2012년 임진년의 끝에서 임진왜란의 기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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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성낙준)는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전남 진도군 오류리 해역에 대한 수중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임진왜란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 3점과 최상급 고려청자 등을 발굴했다.

진도 오류리 수중문화재는 지난해 11월 이 해역에서 고려청자를 도굴한 일당을 붙잡으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이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 9월부터 탐사를 시작해 고려청자 파편과 닻돌을 확인했고, 본격적인 수중발굴조사는 104일부터 1125일까지 수행한 결과, 임진왜란(1592)이 일어난 지 420(7周甲)이 되는 올해 임진왜란 때 사용한 총통 3점과 석제(石製) 포환을 발굴했다.

3점의 총통은 모양과 크기(길이 58, 지름 3)가 거의 같고, 모두 다음과 같은 명문이 있다.

萬曆戊子/四月日左營/造小小勝字/重三斤九//匠尹

(만력무자/사월일좌영/조소소승자/중삼근구//장윤: “만력 무자년 4월에 전라좌수영에서 만든 소소승자총통 무게는 세 근 아홉 냥임. 만든 사람은 장인 윤”)

세 점의 명문은 제작월과 무게를 적은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내용은 똑같다. 만력 무자년 즉 1588년에 전라좌수영에서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총통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명칭으로, 3점 모두 ()()자 사이에 각각 , ˝, 가 새겨져 있는데, 한자에서 같은 글자를 표시하는 부호로 소소승자(小小勝字)’ 총통이라고 적은 것이다. 승자총통류는 조선 중기의 개인용 화기로 승자(勝字), 차승자(次勝字), 별승자[別樣字], 소승자총통(小勝字銃筒)이 문헌 기록으로 전하고 유물이 발견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굴된 소소승자총통은 전하는 기록이 없는데 유물이 확인된 최초의 사례다.

총통을 발굴한 지점 주변에서 석환(石丸, 돌로 만든 포환)도 나왔다. 지름 8.6cm, 무게 715g의 석환 역시 임진왜란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도 오류리 해역은 명량대첩(鳴梁大捷, 1597)이 일어났던 울돌목[鳴梁]에 인접해 있는 곳으로 이번 수중발굴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 해역에서 임진왜란 관련 유물이 발굴되어 임진왜란과 우리나라 무기 발달사, 해전유적지인 전라우수영의 역사적 성격을 밝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진도 오류리 해역에서는 양질의 순청자(純靑磁)와 상감청자(象嵌靑磁), 조질(粗質) 청자가 기종별로 다양하게 발굴되었다. 특히 양질의 청자로는 향로나 붓꽂이 등 특수기형도 있으며, 맑은 비색(翡色)을 띠고 규석을 받쳐 구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전반까지 강진에서 왕실이나 귀족층이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외에도 12세기 전반부터 14세기 대에 이르는 시기의 도자기도 발굴됐다.

문화재청은 수중발굴조사 해역을 중요문화재(사적)로 가지정해 보호하고 2차 수중발굴 조사는 수온이 상승하는 내년 5월부터 다시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진도 오류리 해역은 고려시대에는 주요 청자운반 항로이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연관되어 중요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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