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작은 대선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후보자 등록이 지난 26일 마감되었다. 후보자는 총 다섯, 2010년 곽노현 교육감이 당선될 당시와 같은 진보 단일 후보 1명, 보수 4명 구도로 형성되었다. 이 때문에 보수 진영이 65% 넘게 득표하고도 후보 6명이 난립, 진보 진영 곽노현 단일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준 2010년 선거가 재연될 수 있단 예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 후보 등록이 완료되었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추천이 없기 때문에 추첨을 통해 각 이상면, 문용린, 최명복, 이수호, 남승희 후보 순으로 투표지에 이름이 게재된다. 서울교육감은 7조3천억 원의 예산과 교원 7만3천 명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으며 서울시의 유치원과 초중고교 2천여 곳을 포함 사설 학원도 관리ㆍ감독하는 막중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진보 측은 전교조 위원장 출신 이수호 후보가 단일 후보로 나선 반면, 보수 측은 단일 후보로 추대된 교육부 장관 출신 문용린 후보를 포함해 남승희 서울시 전 교육기획관, 최명복 서울시 교육위원, 이상면 전 서울대 교수 등 4명이 등록했다.
진보 단일후보 이수호
국어교사 출신인 이수호(63세) 후보는 1989년 전교조 결성을 주도했으며 해직된 뒤에는 10여년 간 전교조 사무처장과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1998년에는 서울 선린인터넷고로 복직, 2001~2002년에는 전교조 위원장을, 2004~2005년에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이 후보는 ‘혁신학교 확대와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도입’을 골자로 하는 ‘혁신교육’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다. “혁신교육을 이어가고 학교 구성원들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겠다”고 밝힌 이 후보는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의 핵심 정책인 서울혁신학교 사업을 발전시키고 확산해 나가는 일에 중점을 둘 것이며 곽 전 교육감 시절보다 예산 등과 관련한 혁신학교 재량의 폭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곽 전 교육감이 추진한 학생인권조례도 시행 과정에서 학교 당사자들과의 소통이 다소 부족했지만, 내용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이 후보는 “교사들은 처벌을 통해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낡은 생각을 버리고, 눈높이를 학생들에게 맞춰야 한다”며 “학교에 권위적인 문화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자칫 과거 곽노현 서울교육감 시절 학생 인권 보장에 따라 생긴 ‘교사 무능력, 교사 무역활’ 현상을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학생 인권은 나날이 향상되고 반면 이를 지도하는 교사들의 ‘지도수단’이 마련되지 않아 그간 인권에 대한 의식이 부족한 학생들 사이에서 인권보장이 ‘방종’과 ‘저항’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온 것이 사실인 만큼 보수층에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한 학생인권신장 만큼이나 이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할 제도적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이 공약의 가장 큰 허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 후보는 일제고사, 자율형사립고, 고교선택제는 교육 서열화를 조장한다며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으며 교육감이 되면 우선 학교 현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학생, 교사, 학부모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겠다고 밝혔다.
보수 단일후보 문용린
‘보수 교육ㆍ시민단체가 추대한 교육학자’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는 문용린(65세)은 이번 선거에 후보등록한 보수 후보들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대에서 교육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문 후보는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8월 정년퇴임 했으며 교육부 장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한국교육학회 회장,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상임대표 등을 역임했다.
“아이들이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초중등 교육의 핵심”이라고 밝힌 문 후보는 현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아이가 18세가 지나면 자립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초중등 교육인데 우리 교육은 본질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말했으며 곽노현 전 교육감의 핵심사업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문 후보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는 “헌법이 이미 인권 보장을 규정했는데 불필요하게 조례를 제정해 교권만 추락시켰다”고 비판했으며 특히 곽노현 전 교육감의 핵심사업인 혁신학교에 대해서는 ‘일반화하기 어려운 모델’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특히 현재 시행되는 자율형사립고 정책이나 고교선택제, 일제고사형 학업성취도평가에는 긍정적인 입장이어서 ‘폐지’를 주장한 진보 단일 후보인 이 후보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중학교 1학년의 중간ㆍ기말고사를 단계적으로 폐지해 '진로탐색 학년'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건 것도 이런 인식과 맥락을 같이한다. 성적 경쟁 대신 특기ㆍ적성 체험활동 중심의 교육을 통해 진로를 고민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학생 간 무분별한 경쟁을 유발하는 교육은 지양해야 하지만 학교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은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학업성취도평가는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을 파악하고 지원책을 마련해 주기 위해 해야 할 국가의 책무라고 밝혔다.
교육학자이며 국민의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문 후보는 출마 전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에서 교육공약 수립에 관여하기도 하는 등 교육정책에 잔뼈가 굵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2일 보수 성향의 교육ㆍ종교ㆍ시민단체들이 연합해 추진한 교육감 후보 단일화에서 다른 주자들을 제치고 단일 후보로 추대됐다.
그 밖 보수 후보들
홍대부속고교 교사를 지냈으며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의원으로 당선돼 현재 시의회 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명복(64세) 후보는 “진보ㆍ보수의 정치 논리가 횡행하는 현실에서 교육의 탈이념화를 이뤄야 한다”며 “정치 논리가 아닌 교육 논리로 교육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로 평가되는 최 후보는 진실성, 공평성, 선의ㆍ우정, 유익성 등 네 가치를 교육정책의 기본으로 삼겠다고 밝혔으며 ‘친환경 무상급식’을 ‘안전한 무상급식’으로 바꾸고 교사 국외 연수를 현행보다 두 배로 늘리며, 서울시교육청 청사의 협소한 장소 문제를 거론, 동작구 수도여고 자리로 청사이전을 추진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특히 최 후보는 “문용린 후보가 보수진영 단일화 후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20명이 밀실에서 추대한 꼼수에 불과하다”며 “교육을 진보와 보수로 나눠서는 안 된다” 비판을 가했으며 문 후보의 ‘중1 시험 폐지’ 공약에 대해서도 “교육감 권한이 아니라 교과부 훈령을 고쳐야 하는 사항”이라며 “임기 1년 반 안에 자신이 이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최명복 후보와 마찬가지로 이상면(66) 후보 역시 문 후보를 견제하고 나섰다. 이 후보는 “문용린 후보는 당적을 보유한 적이 없더라도 단순한 당적 이상의 의미가 있는 요직을 지내며 특정 후보를 위해 상당 기간 복무했다”고 지적하며 문 후보가 출마 선언 직전까지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헌법과 교육자치법이 규정한 교육 중립의 원칙을 위반한 사항에 대해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 후보는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모교인 서울대 법대에서 교수를 지냈으며 외무고시(8회)에 합격해 1974년부터 3년간 외무부(현 외교통상부)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무너진 교육을 바로 세워 병들어가는 학교를 건강한 학교로 바꾸겠다”라고 밝히며 학생들이 교사와의 문답을 통해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수업에 ‘소크라테스 문답법’을 도입, 학교 안전을 위해 무술 유단자를 학교 지킴이로 채용, 그 밖에도 교육의 중립성 확보, 교권과 학생인권 동시 보장, 특정 과목에 치우치지 않는 전인교육 시행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중도ㆍ보수 성향의 유일한 여성 후보 남승희
교육부 여성교육정책담당관과 서울시 교육기획관을 지냈으며 서울지역사회교육협의회 회장, 한국여성평생교육회 회장 등을 맡고 있는 남승희 후보(59세)는 현 명지전문대 교수로 중도ㆍ보수 성향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른 보수 성향의 후보와 달리 일제고사형 학업성취도평가나 자율형사립고, 고교선택제 등에 부정적으로 진보 노선을 따르면서도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 곽노현 전 교육감의 주요 정책에도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 후보는 ‘자율형사립고’에 대해 교육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흔드는 퇴행적 정책으로 평가했다. “특목고, 자율고를 보면 좋은 교육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입시 위주 교육만 하고 있다”며 “이를 완화하는 구도로 가야 하는 데 지금은 오히려 교육이 퇴보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조항에 대해서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 인권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부족한데 논란이 되는 이슈를 너무 빠르고 강하게 추진했다”며 “학교 현장은 혼란에 빠지고 이 과정에서 정작 인권은 실종됐다”고 말했다. 또한 혁신학교에 대해서는 “명분 없는 재정지원으로 오히려 주변 학교와의 차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기초학력이 낮은 지역의 교육환경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이 되도록 행정ㆍ재정적 투입을 늘이는 정책이 더 정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교육행정 경험과 정치적 중립성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는 남 후보는 “진보ㆍ보수 어느 한 쪽에 편향되지 않은 사람만이 교육현장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수월성 교육보다는 보편 교육의 가치를 우선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남 후보는 교육의 병폐가 ‘점수 중심의 교육’에 있다며 일제고사형 학업성취도평가에 대해서 “싼값으로 교육성과를 높여야만 했던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라고 평했다. 또한 ‘하나의 평가’가 이뤄지면 교육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교사는 학원강사나 다름없어진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힌 남 후보는 성적을 매겨 아이에게 낙인을 찍는 일에 급급해 특성과 자질을 기를 가능성을 줄인다고 보았다.
급선무로 추진할 정책으로는 교사와 학생이 수업에만 집중해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며 ‘교원업무 정상화’를 꼽았다.
보수 단일 후보 문용린, 진보 단일 후보 이수호로 판세가 굳어지는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2010년 곽노현 전 교육감 당선 때와 같은 보수 난립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보수 단일 후보로 추대된 문용린 후보에 대한 나머지 보수 후보들의 공격하는 모양새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어 보수는 이대로 공멸하고 2010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당선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남승희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아이들 미래를 저당잡히는 일이기 때문에 보수니 진보니 타이틀로 표를 주지 말 것”을 부탁했고 최명복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서울시 교육위원 8명 중 자신 혼자 나왔다며 스스로 보수 단일후보를 자처하기도 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대선과 마찬가지로 문용린-이수호라는 보수 대 진보구도로 잡혀있어 군소 후보들이 이를 깨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는 가운데 서울 시민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