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의 단골 비리인 담합비리가 또 도마 위에 올랐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의혹과 관련 징계가 도마에 오르내리는 담합비리에 이젠 그러려니 할 정도로 무감각해진 것은 소식을 접하는 국민들 뿐 만이 아니다. 최근 대림과 금호, 코오롱과 현대 등 대형 건설사들이 9백 20억 원짜리 대형 공사에 경쟁 입찰에 들어가 스마트폰 사다리타기 어플을 이용해 입찰권을 따내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정도면 장난하나? 소리가 나올 만하다.
입찰경쟁 우리 귀찮은데 사다리 타기 하자?
최근 준공된 광주광역시 하수처리장 내 총인처리시설, 입찰대상은 하수에서 녹조 현상을 일으키는 ‘인’ 화합물질의 총량인 총인을 제거하는 시설로 9백 20억원짜리 대형공사였다. 건설사 비리하면 빠지지 않는 대림과 금호, 코오롱과 현대 등 대형 건설사들이 경쟁 입찰에 나섰다.
입찰서 제출 마감 보름을 앞두고, 4개 건설사 영업 담당자들은 종로의 한 카페에 모여 가격을 논의했다. 보통 공공입찰은 예상 공사비의 80% 정도를 써내는 업체가 낙찰을 받지만 이들은 이보다 훨씬 높은 94-95% 범위에서 입찰가격을 써내기로 일단 입을 맞췄다. 1천억 원에 육박하는 대형공사에 각사가 써낸 금액이 5천만 원 정도씩만 차이 나게 정한 것이다.
그 뒤 같은 자리에서 스마트폰 사다리타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입찰사를 정했다. 94%에서 95%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금액으로 네 개의 입찰금액을 만든 뒤 사다리를 타서 회사를 정했는데 1등과 4등의 점수 차가 0.07점 밖에 되지 않게해 누가 낙찰되든지 공사비를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끔 직장에서 점심내기 할때나 하는 사타리타기, 대형건설사들은 이 사다리 타기를 입찰 담합에 이용한 것이다. 첨단시대에 발맞춘 센스는 인정해도 행태는 여전히 구태였다.
낙찰 받은 건설사는 대림산업. 대림산업의 낙찰율(공사추정금액 대비 낙찰가 비율)은 94.44%, 지난해 평균 턴키방식 관급공사의 평균 낙찰률인 88%를 감안하면, 약 60억 원(공사추정금액의 6.44%)에 달하는 광주시민의 세금이 건설사 주머니를 채우는데 사용된 셈이다. 건설업체들은 담합사실을 인정했다. 물론 뇌물에 접대도 빠지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림산업과 금호산업, 코오롱글로벌, 현대건설 등 4개 업체에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68억 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또한 광주 총인 처리 시설 입찰 공사와 관련해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로 업체 관계자와 시공무원, 평가 심사위원 등 28명도 기소되었다. 또한 이 건설사들은 담합과는 별도로 광주시 공무원과 평가 위원들에게 많게는 억대 뇌물과 해외여행, 골프 접대 등을 벌인 것으로 드러나 임직원 14명이 기소되기도 했다.
건설사는 사다리타기로 입찰하고
공정위는 담합 건설사에 과징금 할인 해주고
그러나 공정위는 담합 건설사 봐주기에 급급
그러나 공정위는 입찰 담합을 한 대형 건설사들을 제재하면서 단지 건설 경기가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과징금을 수십억 원씩 깎아줬다.
공정위는 애초 대림산업의 과징금으로 공정거래법상 최대한도인 담합 관련 매출액(낙찰금액에서 부가세를 뺀 금액)의 10%를 적용해 78억 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조사 협조를 이유로 1차로 과징금의 20%를 깎아주고, 다시 2차로 건설경기 불황, 단독공사가 아닌 컨소시엄 공사, 200억 원어치의 관급자재 사용을 이유로 45%를 깎아줘, 최종적으로는 34억8천500만원만 부과했다. 이는 애초 과징금의 불과 44.4%밖에 되지 않는 금액이다.
공정위는 또 담합에 동참한 현대건설·금호산업·코오롱글로벌의 과징금은 애초 각각 39억 원씩 책정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의 경우 조사협조, 경기불황, 관급자재 사용 등의 이유를 붙여 애초 책정액의 52.5%인 20억5천900만 원만 부과했다. 또 워크아웃 중인 금호산업과 적자상태인 코오롱글로벌은 경영사정이 안 좋다는 이유를 곁들여 각각 1억5천800만원, 11억800만 원만 부과했다. 이는 각각 과징금의 4%, 28%에 불과한 금액이다.
공정위는 공공입찰 담합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 제재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림산업의 과징금인 약 35억 원이 담합으로 인한 부당이득 약 60억 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제재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현대건설과 대림산업의 연평균 순이익이 최근 3년간 각각 5천600억 원과 3천600억 원에 달하는데도 건설 불황이라는 논리로 과징금의 30%씩 깍아 준다는 것은 일종의 특혜가 아니냐는 시비가 일고 있다. 해마다 수천억 원씩 이익을 내고 있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현대건설과 대림산업은 현재 건설업계 각각 1위와 6위이다.
공정위 사무 전반을 관장하는 고위 관계자는 “현행 과징금 부과 절차가 너무 복잡한데다 제재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관련 고시를 개정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지만 건설사 담합에 무덤덤한 것은 공정위도 마찬가지이다. 담합 비리를 저질러 놓고 현행법을 교묘히 이용해 과징금 폭탄 세일을 받은 것은 이미 익숙한 장면이다. 재미로 하는 사다리타기를 이용해 비리를 저지르는 건설사의 오만함에도 현행법상 과징금을 깍아 줄 수밖에 없다며 난색을 표명하는 공정위, 보다 강력한 대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