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만석-엄기준
올봄 트랜스젠더 여가수 '헤드윅'이 되어 치렁치렁한 가발과 진한 화장, 화려한 의상 차림으로 살았던 오만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우울한 청년 베르테르, '사랑은 비를 타고'의 동생 동현 역으로 서정적인 연기를 펼쳤던 엄기준.
공연계의 두 '꽃미남' 배우가 이번엔 대통령을 쏘는 냉혹한 '암살자'로 변신한다. 다음달 9-31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암살자들'에서다.
21일 공연 연습이 한창인 역삼동 오디뮤지컬컴퍼니 연습실에서 두 배우를 만났다. 두 배우는 이미 '그리스' '사랑은 비를 타고' 등 이전 작품에 함께 출연했던 사이다.
"형이 요즘 너무 바빠 따라다닐 수가 없을 정도"라며 엄기준이 먼저 부러운듯 시샘(?)을 했다. 그러자 오만석은 "'젊은 베르테르…'를 보고 반했다. 노래 잘하고 무대 장악력 뛰어나고 센스 있고 깊이 있고, 정말 배울게 많은 배우"라며 후배 칭찬을 늘어놓았다.
역대 미국 대통령 암살자들을 다룬 이 독특한 작품에서 오만석은 1974년 항공기를 납치해 닉슨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새뮤얼 비크, 엄기준은 훨씬 더 이전인 1865년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존 윌크스 부스로 등장한다.
두 배우를 포함해 극중 등장하는 암살자, 혹은 암살을 시도했던 자는 모두 아홉 명. 엄기준이 맡은 존 윌크스 부스는 아홉 명 중 두목과 같은 인물이다. 극은 이들 암살자의 눈과 입을 통해 '대통령을 쏘아야만 했던' 저마다의 이유를 들려준다.
"사람을 죽여본 적은 당연히 없지만(웃음),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땐 있어요. 우리 주변에서도 말도 안되는 끔찍한 사건들이 너무 많잖아요. 이런 사건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심리는 과연 어떤지,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작품이에요."(오만석)
"대통령을 죽인다는 건 자기의 모든 걸 포기하는 극단적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꼭 누굴 죽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한 가지를 위해 모든 걸 버린다는 것…. 어때요, 멋있지 않나요(웃음)?"(엄기준)
오만석은 "그렇다고 범죄자의 편을 드는 건 절대 아니다"며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냉철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전에 다뤄지지 않았던 독특한 소재도 그렇고, 극의 구성이나 음악도 기존의 작품들과 많이 달라 연습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손드하임의 작품을 기다려온 마니아들이 많지만, 일반 관객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관심거리다.
"손드하임 작품이 국내 무대에 오른다는 것 만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떻게 보면 지독한 냄새가 나는 작품일 수도 있는데 관객 반응은, 글쎄요. 아주 흥미롭거나 아니면 아주 지루한,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요."(오만석)
오만석은 요즘 공연계에서 가장 바쁜 배우 임에 틀림없다. 2000년 극단 연우무대의 '이'로 연극협회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뮤지컬 '고고비치', 예술의전당 연극 '갈매기' '보이체크',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헤드윅' 등에 내리 출연하면서 주가를 높이고 있다.
'헤드윅' 공연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암살자들' 연습에 투입됐고, 올해 두 작품가량 더 출연이 예정돼 있다. 영화 쪽도 얘기가 오가는 중이다.
지나친 강행군이 걱정스럽다고 조심스레 묻자 "이러면 안된다는 걸 잘 안다"며 "솔직히 이번 작품에서는 욕 먹을까봐 너무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바쁜 와중에 얼마 전엔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가극 '금강'으로 평양에 다녀왔다. 그는 "그곳 공식일정이 빠듯하고 공연준비도 짧아 걱정했지만 다행이 반응이 좋았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이동선 연출의 '암살자들'에는 오만석 엄기준과 함께 최민철 송영규 홍윤희 오세준 한혜숙 김무열 박정환 최재웅 등 모두 15명의 배우들이 등장한다. 오만석을 대신해 김현국이 새뮤얼 비크 역으로 8회 정도 출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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